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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누가복음 4:16-21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누가복음 4:16-21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읽으시고 설교하신 내용입니다.

우리 주님은 평일에는 들판에서 혹은 자신을 영접하는 사람들의 집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들과 약한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은 기록된 말씀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진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말씀이 허공에서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제로 이루어지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도 그냥 기록된 채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된 내용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을 실수하시거나 공수표를 남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됩니다. 55:11입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주님이 읽으신 말씀의 내용은 성령님이 예수님에게 임하셔서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고 그 복음의 능력으로 희년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19절에 보면 주님이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다고 했는데 여기서 주의 은혜의 해희년을 말합니다. 희년은 일곱 번의 안식년이 지난 다음 해를 말합니다. 희년에는 나팔을 길고 크게 불어 빚진 자, 노예들, 압제 받는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희년은 기쁨과 즐거움과 해방의 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해방의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시는 희년 즉 자유와 해방은 성령이 임하시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신 후에 가시는 곳마다 자유와 해방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자유의 영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후 3:17을 보겠습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참된 자유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십니다. 8:1-2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것은 예수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준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 이미 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읽으신 이사야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식으로 끝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응했기 때문입니다.

에어컨이 앞으로 설치 될 것이 아니라 이미 설치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더워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리모컨으로 에어컨을 작동시키면 됩니다. 주님이 읽으신 말씀은 앞으로 응할 것이 아니라 이미 응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믿음과 기도 그리고 선포로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누립니다.

그럼 우리가 믿고 누려야 할 복음의 능력은 무엇이며 복음의 능력을 주시는 주님은 어떤 분입니까?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주시는 주님입니다.

가난이란 부족과 결핍의 상태를 말하는데 성경에서는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복음으로 그 세 가지 부족과 결핍의 상태를 부요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1) 영적인 가난입니다.

영적인 가난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단된 상태, 말씀이 고갈된 상태, 성령을 소멸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의 인생은 공허하고 갈증이 나고 허무할 뿐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영적으로 부요해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영혼을 채우시면 영적으로 부요해집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부요해도 정신적으로 핍절하게 되면 마음이 공허해지는 것처럼 영적인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영혼에는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영적인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이 비어져 있으면 영적으로 가난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이 공간이 텅 비어있는 상태입니다. 이 영적인 공간은 돈이나 권력 혹은 인기나 쾌락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 심했던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에 우울증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난 후에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의 텅 비어있던 영적인 공간이 하나님으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텅 빈 영적인 공간을 하나님으로 채우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14:6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이론으로 아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였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며 그분의 공로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자신의 인생의 구세주로 마음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의 중심에 오셔서 비어있는 영적인 공간을 채워주셔서 영적으로 부요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2) 환경적인 가난입니다.

환경적인 가난은 쉽게 말해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경적인 가난도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이 가능합니다. 복음은 환경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풍년과 흉년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엘리야 시대에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36개월간 비가 오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다시 기도하자 하늘 문이 열리고 비가 내렸습니다. 그 결과 3년간 열매를 맺지 못했던 땅이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유대의 역사를 보면 국가 경제가 어려웠던 때도 있고 풍성했던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확실한 사실 하나는 왕과 백성이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겼을 때는 환경이 점점 좋아져서 풍성함을 누렸습니다. 반면에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에 빠질 때는 졸지에 망하게 되어 경제적인 어려움이 극심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기복주의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가장 악한 병에 걸리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기복주의입니다. 기독교를 믿으면 복을 받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기복주의는 복을 받는 것이 우선이고 복이 목적이 된 신앙입니다.

기복주의는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말이 마차보다 앞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이 마차를 끌고 갑니다. 마차가 앞에 있고 말이 뒤에 있으면 말이 마차를 끌고 갈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복은 하나님이 주시면 감사한 것이고 주시지 않아도 영혼의 구원으로 감사하며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복주의는 세상적인 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축복을 받았으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고 세상적인 축복을 받지 못했으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기복주의는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기복주의는 위험하지만 기복주의를 경계하다가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마저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부요하게도 하시는 분입니다. 저는 성경의 모든 내용을 믿듯이 고후 8:9의 말씀도 믿습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주님은 부요하신 분인데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온 우주 만물이 주인이신 주님이 가난하게 되신 이유는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부요하게 하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살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면 주님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십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는 특별한 사명이 있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나눔으로 인하여 스스로 가난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실 것입니다.

 

3) 심령의 가난입니다.

이 상태는 영적인 가난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단되었거나 말씀이 고갈되었거나 성령을 소멸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며 말씀도 고갈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5:3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이 가난은 나쁜 가난이 아닙니다. 주님은 오히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상태는 하나님에 대하여 목마른 상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배고픈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만 더 깊은 사랑을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 더 풍성한 사랑을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 더 풍성하게 알고 싶습니다. 성령충만한데 더욱 더 충만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사모하는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에게 더 큰 은혜를 채워주고, 하나님의 임재를 더 강하게 느끼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풍성하게 느끼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영적인 만족을 주시고 영적인 배부름을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영적으로 가난한 자, 환경이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2.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포로는 무엇엔가 사로잡힌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을 살다가 어떤 아픔을 당했는데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는 아픔에 포로된 것입니다. 악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습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은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면 그는 악한 습관에 포로 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 속박하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사람은 그것이 포로입니다. 도박, , 음란에 중독되어 스스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그것에 포로 된 것입니다.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포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죄와 중독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만약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죄와 중독이 있다면 주님을 받아드리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그 결박을 풀어주시고 포로된 것에서 자유를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이성에 중독 된 한 여인이 나옵니다. 그 여인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고 주님을 만날 때에는 또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그 여자는 이성에 중독되어 성적으로 엄청나게 문란한 생활을 했던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그녀를 포로 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습니다.

[추룡]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재키 플린저라는 여자 선교사의 사역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선교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홍콩의 월드시티라는 악명 높은 암흑가에 들어가서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녀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을 때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 홍콩의 암흑가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마약 중독자들이 아무런 고통 없이 마약을 끊고, 난폭한 갱단 두목이 회심을 하고, 창녀들이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만나므로 포로된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사역 중에 특이한 것은 방언기도의 사역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방언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중독자들이 며칠 혹은 몇 주씩 방언기도를 하게 합니다. 그러면 마약 중독자들까지도 금단현상이 없이 중독에서 해방이 됩니다. 그리고 암흑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마귀나 어떤 것에 포로 외었거나 눌린 사람이 있다면 방언기도를 많이 해보기를 권면합니다. 제키 플린저의 사역을 받았던 사람들처럼 며칠이든 몇 주든 방언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아보십시오. 홍콩 암흑가에서 중독자들에게 역사하셨던 주님이 여러분을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포로 된 자를 해방시키신다는 말은 마귀의 손에 포로 된 사람들을 되 찾아오신다는 말입니다. 못된 깡패에 잡혀서 앵벌이를 하던 아이는 깡패의 포로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깡패를 잡고 아이를 풀어준다면 아이는 포로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예수 믿기 전에는 마귀의 포로였고, 마귀가 주인이었고, 마귀가 원하는 대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예수님의 은혜로 마귀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구속이 아니라 해방과 자유입니다.

 

3.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1) 육신의 눈이 고장 난 것인데 육체의 질병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님은 육체의 질병을 고쳐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에는 육신의 눈이 고장 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은 원인이 무엇이든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고쳐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서에도 보면 소경 거지 바디매오 같은 사람도 주님을 만나서 그의 눈이 떠지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주님은 먼 눈만 고쳐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육체의 모든 부분을 건강하게 해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고당하신 고난 중에 채찍에 맞으신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채찍에 맞으시며 고난 당하셨습니까? 벧전 2:24을 보겠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이 말씀에서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이 채찍에 맞으셨으므로 이미 우리의 질병에 대한 계산이 끝났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며칠 전에 몇몇 분과 대화를 한 후에 우리 교우들을 위하여 세 가지 기도를 드렸습니다. 첫째, 우리 교우들이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사모하고, 주님께 예배드리기를 더 사모하고, 주님의 사역을 더 사모하는 마음을 갖도록 기도했습니다. 둘째, 우리 성도들이 어떤 것을 의지하는 것보다 주님을 더 의지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셋째, 우리에게 더 강력한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분이요. 병든 자를 치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에게는 못 고칠 질병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2) 분별력과 판단력입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하면 분별력과 판단력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눈 먼 자를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 말은 분별력을 잃은 사람에게 분별력을 회복시켜주시고, 판단력을 잃은 사람에게 뛰어난 판단력을 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과 명철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으로 충만하면 분별력과 판단력이 생기게 됩니다.

솔로몬 왕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는 백성들을 다스릴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1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가 1천 번제를 드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후에 첫 번째 만났던 문제가 두 창기의 재판이었습니다. 두 여자가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두 여자가 해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해산한지 사흘 만에 한 여자가 잠을 자다가 아들을 죽였습니다. 두 여자는 서로 죽은 아이가 상대의 아이고 살아있는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솔로몬은 칼로 두 아이를 나눠서 공평하게 두 여자에게 나눠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살아있는 아이의 진짜 엄마는 아이를 죽이지 말고 상대 여자에게 주라고 했고 죽은 아이의 엄마는 솔로몬의 말대로 산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나누자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두 여인의 반응을 통해서 살아있는 아이의 엄마가 누구이고 죽은 아이의 엄마가 누구인지를 가려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셔서 뛰어난 재판을 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자신은 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지혜가 부족하여 지헤를 구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5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하나님은 분별력과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지혜의 눈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3) 영적인 면에서 소경입니다.

영적인 소경들은 영적인 세계를 알 수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소경들은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부정합니다. 우리 주님은 영적 소경의 눈도 뜨게 하시는 분입니다.

십자가상의 우편 강도는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생 육체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십자가 위에서 영적인 눈이 떠졌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보니 자기 옆에 달리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증거가 눅 23:42입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영적인 눈이 떠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가슴은 뜨거워졌으나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식탁에서 주님이 축사하시자 그들의 영의 눈이 열려서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영적인 소경들의 눈도 뜨게 하시는 분입니다.

 

4.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눌렸다는 것은 억압받는 상태입니다. 눌리는 것이 있으면 인생이 힘들고 피곤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계속해서 누른다고 생각해봅시다. 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힘이 약한 여자가 나를 계속해서 눌러도 힘들 텐데 강호동처럼 힘이 장사인 사람이 계속 누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눌리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100m9초에 달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거운 짐이 그를 누르면 어떨까요? 누르는 무게만큼 달리기가 느려집니다. 눌리는 상태에 놓이게 되면 말을 잘하던 사람도 말이 어눌해 집니다. 똑똑하던 사람이 어벙해집니다.

포로 된 사람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합니다. 마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눌린 사람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됩니다. 마귀가 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사람에게 하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밖에서 시험을 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서 칠 수 있습니다. 붙어서 누를 수 있습니다. 사람 안에 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누르는 일을 합니다. 10:38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이 말씀에 보면 마귀는 누르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마귀가 마음을 누르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비관적이 되고 매사가 부정적이 됩니다. 제가 아는 사람은 마귀에게 눌려있습니다. 그는 매사가 부정적입니다. 그리고 공격적입니다. 마귀가 육체를 누르면 병이 듭니다. 마귀가 생업을 누르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집니다. 마귀가 가정을 누르면 가정에 행복이 사라지고 심하면 가정이 깨집니다. 마귀가 대인관계를 누르면 사람들과 불화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마귀가 대인관계를 누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늘 전투적입니다. 사람들의 호의도 공격으로 받습니다. 그의 눈에는 주변 사람들의 잘못만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싫어합니다.

우리 주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분입니다. 병에 눌린 자가 주님을 강하게 체험하면 건강하게 됩니다. 불행에 눌린 자가 주님을 만나면 행복해집니다. 불화하던 자가 주님을 만나면 화목하게 됩니다. 늘 실패하던 사람이 주님의 도움을 받으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늘 불만이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면 만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복음서에 보면 마귀에게 눌린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능력으로 마귀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8:16입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만약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눌린 분이 있다면 주님을 찾으십시오. 주님 앞에 나아와 부르짖으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눌린 것으로부터 자유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회당에서 주님이 읽으신 이미 응한 이사야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인지 살펴봤습니다. 우리 주님은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주시는 주님입니다. 2.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3.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4.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