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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에베소서 4:11-16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에베소서 4:11-16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교회에는 비정상적인 교인들이 많습니다. 비정상적인 교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교회는 나오는데 영적으로 출생도 못한, 거듭나지 못한 교인들입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거듭나야 합니다. 교회만 나와서는 안 되고 반드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도 되고 영생도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거듭났지만 성장이 멈춘 신자도 비정상적인 교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육체적으로 자라야 하고 정신적으로 자라야 하듯이 영적으로도 자라야 합니다.

교회 고양이가 새끼 5마리를 낳았습니다. 지난 14일에 태어났으니 이제 출생한지 10일째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아직 고양이인지 쥐새끼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고양이의 모습을 갖출 것입니다. 그리고 쥐도 잡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몇 달이 지나면 짝을 찾아서 새끼를 낳을 것입니다. 고양이건 사람이건 태어났으면 자라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이치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육체도 자라야 하고 정신도 자라야 합니다. 육체는 성인이 되었는데 정신이 5살 어린이 수준이라면 참 곤란한 일입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성장해야 하고 또 정신적으로 성장해야 하듯이 영적으로도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알려진 여자집사님 있었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는 분입니다. 하루는 그 집사가 목사님에게 맹랑한 소리를 하더랍니다. 그 집사는 장사를 하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지방 여행을 자주합니다. 그런데 목사님께 목사님 저는 기차를 공짜로 타고 다녀요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이 철도청에 아는 사람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집사님이 철도청에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기차를 공짜로 탑니까?” 그 집사의 대답이 기가 막혔습니다. “울타리 넘어 들어가서 기차를 타고요. 차장이 기차표 검사를 할 때에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지나가면 나오고 그럽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다음 말입니다. “목사님. 그렇다고 제가 기차 삯을 공짜로 먹는 줄 아세요? 그것을 모아두었다가 선교비로 내요.” 목사님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집사님 그런 이야기는 나한테만 하고 다른데 가서는 절대 하지 말아요. 그리고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세요. 모든 사람이 집사님처럼 기차를 공짜로 타면 철도청은 어떻게 운영이 됩니까. 그리고 집사님의 행동은 결국 도적질해서 선교하는 것인데 그게 말이 됩니까.”라고 책망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생활은 건강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목적도 선해야 하고 방법도 선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집사는 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 집사는 거듭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거듭났지만 영적으로 자라지 못해서 육신 중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의 목적과 목표를 잘 모릅니다. 신앙생활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신앙생활은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 목표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성장 성숙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사명을 이루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발견하고 하루를 살아도 사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심판 날에 잘했다 칭찬 듣는 것입니다. 천국이 목표입니다. 모든 것을 잘했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영원한 절망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위하여 이 땅에서 절제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교회를 보면 비정상적인 목사들과 비정상적인 교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앙생활의 본질을 모르고 목회를 하고 본질을 모르고 교회를 다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뭐고 목표가 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축복을 목적과 목표로 삼고 교회에 다닙니다. 축복이 목적과 목표가 되니 자신의 성공에는 힘을 쓰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신앙인격이 성숙하여 예수님을 닮는 일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 설교는 성숙한 신앙에 대한 내용을 다루겠습니다. 12절과 13절에 보면 온전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12절에 나오는 온전은 준비, 갖추기, 회복이라는 뜻입니다. 12절 전체를 놓고 보면 온전해진다는 말은 봉사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울 준비가 되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13절에서 사용된 온전한 이라는 말은 완성한, 완전한의 뜻입니다. 이 상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상태를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닮은 상태가 온전한 상태입니다.

14절에 보면 온전하게 된 상태는 어린아이의 상태를 벗어난 상태로 비유를 합니다.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는 사람의 특징은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기 쉽고,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기 쉬운 상태입니다.

우리는 시험에 들었다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 시험이라는 것이 성경적으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들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시험에 든 것이 아니라 삐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한국교회에 강력하게 역사하는 귀신이 있는데 그 귀신의 이름이 섭섭귀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마음에 섭섭함이 생깁니다. 그리고 시험에 듭니다. 왜 그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게 그 사람의 영적인 수준입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시험에 들고 영적으로 해매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사탕 하나에도 유혹을 받아서 유괴범에게 넘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어린아이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마귀의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자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다 채울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신앙인으로 자라려면, 성숙한 신자가 되려면,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려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영적인 지도를 잘 받아야 한다(11-12).

11절에 보면 그 당시 교회에 존재했던 5가지 직분을 소개합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역자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지금은 사도와 선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여기서 복음 전하는 자는 개인적으로 전도에 열심을 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 전도의 은사를 받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빌리그래함 목사 같은 사역자나 복음의 불모지에 들어가서 선교를 하는 선교사들을 말합니다. 목사와 교사는 개교회에서 말씀의 사역을 하는 목회자를 말합니다. 11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주의 종이며 주의 종은 그가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10절을 보면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의 종은 주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을 세우신 이유를 말씀합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세 가지이유입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함입니다.

목회자를 세우신 첫 번째 이유가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목회자의 가르침을 통해서 온전한 성도로 자라가야 합니다. 목회자 때문에 신앙이 성숙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건강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영적인 질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당연히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이었으면서 동시에 목회자 중심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영적인 지도를 잘 받았습니다. 2:42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서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고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주님은 성도를 위하여 목회자를 세워주셨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온전하게 한다는 말은 잘못된 뼈를 맞춰서 바로 잡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뼈를 교정해보셨습니까? 저는 어릴 때 운동선수였습니다. 태권도를 하다보면 발목을 삘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사범님이나 의사에게 교정을 받았습니다. 그때 뼈를 교정해주시는 분은 제 발목을 살살 만져주지 않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발목을 잡고 비틀어 제자리로 집어넣어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아팠습니다. 뼈를 교정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참고나면 발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온전한 성도가 되려면 부드러운 설교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목사의 설교가 여러분에게 고통을 줘야 합니다. 여러분은 기분 좋은 설교만 기대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심장을 찌르는 설교도 들어야 합니다. 늘 달콤한 사탕만 먹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때로는 쓴 약도 먹어야 합니다. 늘 위로만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책망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교정되고 온전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바른 자세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17:11입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를 들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5:6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여기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간절함을 표현한 말입니다. ‘주리고는 먹지 못해서 죽어가기 직전에 음식을 간절히 사모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목마른은 물이 없어서 목이 말라서 죽어가지 직전에 물을 간절히 사모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진리 안에서 분별하며 들어야 한다.

17:11입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를 들을 때 듣는 설교가 진리인지 아닌지 성경으로 분별했습니다.

요즘은 거짓 선지자들도 많습니다. 요즘은 누구든지 맘만 먹으면 방송과 인터넷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많은 사역자들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반드시 성경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무조건 받아먹다가는 큰일 납니다. 진리 안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아멘으로 들어야 한다.

고후 1:20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선포되는 말씀이 진리라면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입으로 아멘하고 마음으로 아멘해야 합니다.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힘써 아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축복의 말씀도 아멘했고 저주의 말씀도 아멘했습니다. 우리도 내 입맛에 맞는 말씀만 아멘 하면 안 됩니다. 나랑 맞지 않아도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아멘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들어야 한다.

4:2입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4:1에 보면 같은 복음을 받았으나 안식에 들어가는 자들이 있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듣지만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복음을 믿음으로 받았기 때문이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들은 복음을 믿음으로 결부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 믿음으로 결부시켜서 자신에게 복이 되게 해야 합니다.

 

순종하려고 들어야 한다.

목회자를 통해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적 충족을 위해서 듣거나, 위로를 받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듣다보면 지적인 충족이 되는 경우도 있고 위로를 받는 경우도 있겠으나 더 중요한 것은 순종하려고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적으로 충족된다고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고 복을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할 때 복이 됩니다.

 

2.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 한다(13).

13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 없는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10:17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다르면 안 됩니다. 아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를 알기 때문에 그 아는 것으로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정확한 교리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믿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구원은 없습니다. 지식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알지 못하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덮어놓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에 근거 없이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문제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올바른 지식에 근거한 신앙입니다. 올바른 지식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경건한 지식입니다.

알지 못하고 믿기 때문에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처럼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는 많이 알아도 인격적으로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반드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믿음입니다. 그러나 체험이 중요하지만 체험만으로는 안 됩니다.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 없는 체험은 아주 위험한 것이다. 말씀이 없이 체험만 중요하게 여기면 신비주의자입니다.

신앙생활은 균형이 중요합니다. 은혜와 진리가 함께 가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이 함께 가야 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 되어야 하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자전거가 두 바퀴로 달리는 것처럼 신앙도 두 바퀴로 달리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 되어야 건강한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이 온전한 신앙이고 성숙한 신앙입니다.

 

3.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해야 한다(15).

참된 것을 행하지만 사랑 없이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행하는데 의무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사랑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범사를 사랑 안에서 행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범사를 사랑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특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먼저 하는 사랑이다.

내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먼저 나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먼저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요일 4:19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우리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먼저 손 내밀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갔더니 인사도 안 하더라고 말합니다. 인사를 안했다면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내가 먼저 해야 합니다. 남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먼저 하면 됩니다. 7:12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주님의 사랑은 먼저 찾아오신 사랑이이고, 먼저 섬겨주신 사랑입니다. 우리도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주는 사랑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숨까지도 주시는 희생적인 사랑을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목숨을 주셨다면 못 주실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면 하나님은 더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6:38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한국교회가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목회자들은 교회를 개척하고 자기 생활비도 못 받으면서 선교합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제 생활비도 못 줄 때에도 북한선교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모퉁이돌 선교회에 매달 10만원인가를 보내면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필리핀 선교사님에게 매달 10만원씩 보냈습니다.

우리가 주다보면 때로는 빼앗긴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빼앗긴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주는 나와 받는 그 사람만 놓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고받는 관계에 하나님을 개입시켜야 합니다. 제가 자주 생각하는 말씀입니다. 19:17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 하는 사랑이다.

13:1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다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고 다른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되 끝가지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들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4. 건강한 교회 생활을 해야 한다(15-16).

15-16절에 보면 주님은 머리이십니다. 우리는 몸에 붙어 있는 지체입니다. 몸과 머리의 관계, 지체와 지체의 관계를 통해서 건강한 공동체 생활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체는 머리에게 순종해야 한다.

몸의 모든 지체는 머리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온 몸이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머리의 명령에 몸이 순종하지 않는다면 장애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목사도 머리이신 주님에게 순종해야 하고 모든 성도들도 머리이신 주님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이고 건강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 따로 몸 따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머리가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제가 몇 년 전 총회 체육대회에 가서 축구시합을 했습니다. 공이 오는데 몸이 말을 안 들었습니다. 발로 찼는데 공이 지난 간 후였습니다. 헛발질을 하고 만 것입니다. 친구 목사가 마 목사,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되었냐?”라고 하더군요. 머리 따로 몸 따로 논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머리 되시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입니다.

 

서로 도와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지체끼리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바닥에 있는 물건 하나를 줍는 일도 지체가 서로 협력해야 가능합니다. 눈은 보고 발은 물건 가까이 가야하고 손은 물건을 집어야 합니다. 이때 허리도 목도 그 외의 지체들도 협력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 모든 지체가 서로 협력해야 하나님의 뜻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나 한 사람 정도 없어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서로 힘을 모아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도 서로 도와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가 됩니다.

 

자기의 역할을 잘 해야 한다.

자기 포지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역사는 일을 말합니다. 각 지체가 자기의 일을 해야 육체가 건강하듯이 교회도 모든 성도가 자기 역할을 감당해야 건강한 교회가 되고, 건강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눈은 눈의 일이 있고, 발은 발의 일이 있습니다. 모든 지체는 자기의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감당하면 건강한 육체가 되듯이 교회도 각 지체가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성숙한 신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닮은 신자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영적인 지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2.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 합니다. 3.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해야 합니다. 4. 건강한 교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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