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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이 만들어낸 것들 누가복음 7:2-10

백부장의 믿음이 만들어낸 것들 누가복음 7:2-10

(설교자: 비전교회 마경훈 목사)

 

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났는데 그 가운데 특별한 칭찬을 받은 몇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을 칭찬하신 내용을 몇 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올바른 중심을 칭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성전에 가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하고 있었습니다. 헌금하는 모습을 보시고 그 중에 한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헌금을 드린 것은 아닙니다. 그녀가 드린 헌금의 액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아주 적은 액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녀를 칭찬하셨습니다. 그 과부는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비록 적은 액수이지만 최선을 다하여 올바른 중심으로 드렸기 때문에 칭찬 받은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올바른 고백을 칭찬하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신 주님은 베드로가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셋째로 주님은 올바른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아무도 모르게 주님에게 기도하던 나다나엘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로 인하여 탄식하며 기도하는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넷째로 주님은 올바른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은 병든 종을 사랑하여 사람들을 주님에게 보내며 치유를 비는 백부장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돈을 드려 유대인을 위한 회당을 지어주었던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만한 사람을 이스라엘 중에서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칭찬은 표현은 다르게 되었으나 뿌리는 같습니다. 그 뿌리는 올바른 믿음입니다. 올바른 믿음은 올바른 중심을 갖게 만듭니다. 올바른 믿음은 올바른 고백을 하게 만들고, 올바른 기도를 하게 합니다. 올바른 믿음이 있을 때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기보다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올바른 행동을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올바른 행동은 올바른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시대에 대한민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믿음이 잘못된 것입니다. 올바른 믿음이 있을 때 올바른 행동을 만들어내는데 믿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고 그 결과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는 것입니다.

올바른 믿음이 있을 때 올바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주님은 백부장의 사랑이나 기도를 칭찬하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믿음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가 열립니다. 10절에 보면 병들어 죽어가던 종이 고침을 받아서 강건해졌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의 믿음을 보신 주님이 고쳐주신 것으로 믿음의 열매입니다. 한 나무에서 많은 열매가 열리듯이 올바른 믿음도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관계의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균형 잡힌 관계를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올바른 믿음은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만들어냈고, 또 사람들하고도 올바른 관계를 맺게 만들었으며, 재물에 대해서도 올바른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균형 있게 만드셨습니다. 균형을 잃어버리는 것은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비정상입니다. 예를 들어 몸을 보십시오. , 우 균형이 중요합니다. 한 눈은 자두만큼 크고 한 눈은 단추 구멍만큼 작다면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잖아요. 한 팔은 농구선수처럼 길고 한 팔이 어린아이처럼 짧으면 사람이 이상하잖아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균형 잡힌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균형 잡힌 신앙은 하나님하고만 좋은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관계가 좋은 사람은 대인관계도 좋습니다. 16:7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올바른 신앙을 가지면 사람하고도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신관계가 좋은 사람은 대물관계도 좋습니다.

그럼 백부장의 올바른 믿음은 어떤 관계를 만들어 냈는지 살펴봅시다.

 

1. 그의 믿음은 올바른 대인관계를 만들었습니다(2-3).

2절에 보면 그는 종을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 당시의 종의 개념은 인격적인 대상이 아니라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종은 노동하는 기계와 같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노예를 사고 팔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그런 하찮은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 종은 병들어 있습니다. 일해야 할 종이 병들어 있다면 그 종은 쓸모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백부장은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가치를 자신에게 돌아오는 유익으로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백부장은 종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보다 좀 더 번거러운 기도였습니다. 어떤 사정 때문에 자신이 주님 앞에 나갈 수 없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대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불러서 그들에게 부탁을 하고 유대인의 장로들이 그를 대신해서 주님 앞에 나갔습니다. 그 후에 다시 자신의 벗들을 보내서 주님에게 말씀만 하셔도 되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는 하찮은 종, 이미 종으로서는 쓸모없어진 사람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주님에게 기도했습니다.

백부장이 가진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은 우리에게 사랑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하찮은 사람까지 사랑하고 종으로써 이미 쓸모가 없어진 사람까지도 사랑했던 백부장처럼 우리 자신이 하는 일에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주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의 대인관계는 유대인의 장로들이 주님에게 그에 대하여 소개하는 내용에서 돋보입니다. 그는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점령군이며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원수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를 위하여 주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하여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합당하다고 청합니다. 그는 원수와 같은 유대인들을 사랑했고 유대인들에게 사랑 받은 사람입니다.

5절에 보면 백부장은 자신의 벗들을 예수님에게 보냈습니다. 그에게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로마 군인들은 점령군으로 포악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점령군임에도 불구하고 벗들이 있을 만큼 대인관계가 아름다웠습니다. 그가 가진 믿음이 이런 대인관계를 만든 것입니다.

 

2. 그의 믿음은 올바른 물질관계를 만들었습니다(4-5)

그는 유대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위하여 회당을 지어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자신들을 위하여 회당을 지어준 것이 다른 목적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느꼈다는 것은 그가 물질을 그만큼 순수한 동기에서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에 순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필요한 몇 가지 물질관을 소개하겠습니다.

 

1) 우리는 물질의 청지기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우선순위는 물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선순위입니다. 물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입니다. 돈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돈이 사람을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돈을 다스려야 합니다.

사람이 돈에 지배를 당하는가 그 사람이 돈을 다스리는가를 보려면 돈이 목적인지 수단인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이 목적인 사람은 사람이 수단이 됩니다. 사랑도 돈을 위한 수단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돈은 이웃 사랑의 수단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수단입니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이 존재하듯이 하나님과 인간을 위하여 돈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사용할 때 필요에 따라서 결정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십시오. 우리는 청지기이기 때문에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돈을 사용할 때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묻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2) 우리의 소망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물질관계를 갖고 있느냐를 점검하려면 자신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6:17을 보겠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돈이 있으면 힘이 나고 소망도 있는데 돈이 없으면 힘도 없고 소망도 사라진다면 그 사람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둔 사람입니다. 돈이 있으나 없으나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면, 비록 사는 것은 힘들어도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재물관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재물로 봉사하십시오.

고후 9:12을 보겠습니다.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여기 보면 봉사의 직무가 나옵니다. 이 직무는 목사직, 선교사직, 장로직, 집사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 절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고후 9:11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9:12에 나오는 봉사의 직무는 11절을 보면 넉넉한 연보, 너그러운 연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이 있는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이 봉사의 직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돈을 가지고 교회에 헌금하며 봉사할 수 있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십시오.

바울의 말입니다. 4:11-12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습니다. 그는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족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며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하든 가난하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쉬운 것도 정답이고 어려운 것도 정답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쉽고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어렵습니다. 바울은 빌 4:11-12에서 자신은 자족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한 후에 곧 바로 빌 4:13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바울은 자신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인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어떤 형편에 처해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자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밖에 있으면 그게 불가능한 것입니다.

 

3. 그의 믿음은 올바른 대신관계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반드시 믿음으로 연결됩니다. 왜냐하면 첫째,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11:6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을 다 죄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14:23입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아무리 인간적으로 보기에 고상하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일이라도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믿음으로만 연결되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믿음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백부장을 연결시켜준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신유의 믿음입니다(2-3)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자 사람들을 주님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주님에게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영혼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병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 가운데 병을 치료하는 기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신유라고 합니다. 15:26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시는데 뭐라고 소개하셨습니까?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하나님은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치료하는 여호와이십니다.

백부장은 신유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유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유보다는 병원을 더 믿는 것 같습니다. 신유보다 의료기기를 더 믿습니다. 신유보다는 보험을 더 믿습니다. 제가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합니다만 더 믿고 의지할 분이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박부장 같은 신유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기도 응답의 믿음입니다(3).

그가 사람들을 주님에게 보내면서 먼저는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자신의 종을 구원하여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또 다시 사람들을 보내서 오시지 말고 말씀만 하시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부탁을 드렸던 것은 자신의 기도가 응답 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믿지 못했다면 그렇게 부탁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가 구하는 대로 해주셨습니다. 오시라고 하니 가셨습니다. 오시지 말고 말씀만 하시라고 하니 가시지 않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기도로 유지됩니다. 기도가 없으면 경건도 없습니다. 딤전 4:5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기독교인들의 영적 능력은 기도로 오는 것입니다. 9:29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같은 일을 해도 자신의 능력으로만 하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야 인정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는 일은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영적 충전시간입니다. 핸드폰의 밧데리를 밤새 충전시켜서 다음 날 사용하듯이 그리스도인은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을 공급받아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위대하심을 아는 믿음입니다(6)

그가 두 번째 벗들을 보내서 주님에게 오시지 말고 말씀만 하시라고 부탁드립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자신의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주님과 자신을 비교할 때 그분이 자신의 집에 오신다는 것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요일 5:20입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예수님은 참된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참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십니다.

백부장은 주님의 위대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주님이 자신의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백부장이 감당할 수 없었던 주님이 저와 여러분 속에, 우리 믿는 자 속에 오셔서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4) 말씀의 능력을 아는 믿음입니다(7).

백부장은 주님이 친히 오시지 않으셔도 말씀만으로 충분히 종이 고쳐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말씀만 하시라고 부탁드린 것입니다.

1장을 보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그대로 이룹니다. 이사야55:11을 보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말씀의 믿음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환경에 흔들리고, 감정에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 우리의 감정이 어떠하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고, 말씀만 믿고, 말씀만 주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백부장의 하인이 치료된 것처럼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5) 영적 질서를 아는 믿음입니다(8).

그는 군인입니다. 군대는 조직입니다. 질서가 중요합니다. 군대에서 조직을 깨고 질서를 흐트러뜨리면 그는 사형입니다. 그만큼 질서가 중요합니다.

상급자가 부하에게 하라하면 하고 오라하면 옵고 가라하면 가는 것이 군대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질서가 있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가장 높으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라고 하면 거부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 것도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군사가 되어 군대에 소속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과 광야와 가나안 생활은 영적인 여정을 보여줍니다. 애굽에 있는 상태는 거듭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통과하고 출애굽 하는 것은 우리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훈련과 연단을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현세천국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자마자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보셨습니다. 12:41입니다.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만에 나왔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날에 그들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영적 질서를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영적인 권위에 순복해야 합니다. 목회자를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사자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종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언제나 영적인 질서를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