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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강용규목사

무엇을 남길 것인가? 2009.05.08강용규목사

무엇을 남길 것인가? 2009.05.08강용규목사▒▒▒ 창세기 1:26~31


일본 명치유신의 주역 중에 한 사람인 이노우에 가우로에 관한 일화입니다. 그가 일을 끝내고 밤늦게 귀가하다 괴한을 만났습니다. 괴한들이 그를 무차별적으로 때리고 칼로 이곳저곳을 찔렀습니다. 거의 죽어가는 채로 집에 도착했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살아날 가망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님 이 고통을 없게 해 주십시오. 나를 좀 죽여주십시오.”라며 형에게 부탁합니다. 어떻게 형이 동생을 죽일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형은 동생의 고통을 그저 볼 수 없어 동생의 부탁을 들어주십니다. 그 때 노모가 동생을 죽이지 못하도록 덮쳤습니다. 늙은 어머니는 형이 동생을 죽이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노모 덕분에 동생은 죽임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의사들의 정성어린 치료와 어머니의 희생적인 간호로 이노우에 가우로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후 그는 “나는 죽었던 사람인데 신이 나에게 생명을 더 주셔서 살게 되었다. 하여 내가 이 생명을 선한 일에 써야 되겠다.”고 다짐하며 온 몸을 다해 일본의 근대화를 이루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본문 창세기 1장 26~31절의 말씀은 창조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자녀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심은 자녀들을 축복하시기 위함입니다. 창세기 12장 1~2절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도 축복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녀를 축복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들은 자녀를 축복할 때 두 가지를 행했습니다. 하나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든지 포옹을 하든지 자녀와의 접촉 즉 터치를 통해 축복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이 자녀와 함께 하기를 원하나이다.”는 말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빌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축복하기 위해서이고 자녀를 세상에 보내신 것도 축복하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평소에 말수도 없으신 무뚝뚝한 아버지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장례식 때 제 동생이 추모의 글을 낭독했는데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남긴 가장 귀한 한 마디가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말을 하며 눈물을 쏟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제 동생에게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제게도 “너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목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한마디는 늘 제 마음에 남아있어 저를 일으켜 세우게 합니다.

마태복음 1장 족보를 보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고 야곱은 요셉을 낳고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더라.” 고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족보에는 이처럼 ‘낳고 낳고 낳고’라고 쓰여 있습니다. 반면 창세기 5장의 족보에는 “아담은 930세를 향수하고 죽었고 셋은 902세를 향수하고 죽었고 에노스는 905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생명을 말하는 반면 창세기 족보는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카이로와 이스라엘을 비교해 보면 카이로는 죽음의 도시를 연상케 합니다. 이집트의 상징인 피라밋도 무덤이니 죽음을 나타냅니다. 반면 이스라엘에는 예루살렘 안에 다윗 왕의 무덤이 있지만 가짜입니다. 그곳에는 어떤 훌륭한 왕의 무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생명의 도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에게 죽음과 생명 중에 무엇을 남기시겠습니까? 

1980년대 제가 미국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라이언 와이트라는 아이가 에이즈로 죽었습니다. 이 아이는 13세에 에이즈에 감염된 수혈을 받아 5년을 살다 죽었는데 이 아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TV에 방영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내가 아버지로서 너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 고 묻자 아이가 대답합니다. “아빠 엄마 너무 감사합니다. 아빠 엄마가 생명을 주셔서 저는 이 땅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빠 엄마는 저에게 예수님을 가르쳐주셨고 저는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빠 엄마는 저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늘나라 생명록에 우리의 이름이 없는 것처럼 서글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의 이름이 생명록에 기록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에녹은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에 간 사람입니다. 에녹의 조상 중에 ‘셋’이 있습니다. 셋은 아담과 하와의 셋째 아들입니다. 셋의 후손은 모두 경건한 후손입니다. 반면 여호수아에 나오는 아간은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최초로 범죄한 자입니다. 그는 세라의 증손이요 삼갈의 손자입니다. 세라는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낳은 아이입니다. 유다는 시아버지이고 다말은 며느리입니다. 둘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나온 아이가 바로 세라입니다. 그 세라의 후손이 바로 아간입니다. 출애굽기 20장 제 2계명에서 “나를 경외하는 자의 자손은 천 대에 이르도록 축복하고 범죄한 자의 자식은 삼 사대에 이르도록 심판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들어 잘 아는 이야기인데 같은 시대의 두 가문 즉 맥스 쥬크와 조나단 에드워드의 가문을 조사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후손은 873명 맥스 쥬크의 후손은 1292명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미국의 영적 대각성을 일으킨 유명한 목회자요 프린스톤의 총장이었습니다. 그 자손들 중에는 부통령 상원 의원 하원 의원 성직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반면 맥스 쥬크의 자손들은 낳자마자 죽은 아이가 302명 직업적인 거지가 320명 그밖에 범죄자도 많습니다.

부모의 삶이 자녀에게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재물을 유산으로 남겨주지 않아도 아들 딸에게 손을 얹고 축복할 때 우리의 아들 딸은 축복받는 아들 딸이 됩니다. 우리가 재물을 자손에게 남겨주지 않아도 경건한 삶을 살 때 우리의 아들 딸이 이 땅에서 존귀한 자가 되며 우리가 재물을 자손에게 남겨주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자녀에게 전할 때 자녀들은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