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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강용규목사

자식을 향한 사랑 2009.05.19강용규목사▒

자식을 향한 사랑 2009.05.19강용규목사▒▒ 사무엘하 18:24~33


실존주의 철학자 죄렌 키에르케고르는 “사람은 고슴도치와 비슷한 존재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먼저 보호하고 위하는 행동을 취합니다. 이러한 자신을 위하는 이기적인 행동은 고슴도치의 털처럼 날카로운 가시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붙어 있으면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므로 추워도 붙지 못하고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것이 고슴도치입니다. 이러한 고슴도치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자신을 희생하며 피를 흘린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십니다. 어떤 여인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니며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은 못 들은 척 여인의 말을 무시합니다. 여인이 다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외치자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곳에 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은 이방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계속해서 예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주인의 자녀들에게 줄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말하며 여인의 간청을 거절합니다. 여인이 예수님으로부터 무시를 당하면서도 계속 간청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 귀신들린 자신의 딸을 고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희생당하고 자존심이 무너지고 감정이 상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예수님께 매달린 것은 귀신 들린 딸을 고치실 분이 예수님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절한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 사무엘하 18장에는 압살롬이 나옵니다. 압살롬은 자기 형 암논을 죽입니다. 압살롬은 화가 난 아버지의 낯을 피해 그술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칩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아버지의 마음이 누그러지자 압살롬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재판관이 됩니다.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버지 다윗에게 향해 있는 마음을 빼앗기 위해서 앞장서서 아버지를 비난하는 말과 행동을 할 뿐만 아니라 악한 자들에게 형벌을 낮추는 방법으로 마음을 삽니다. 그래서 성경은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 했다.”고 말씀합니다. 압살롬을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고 힘이 커지자 그는 아버지를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압살롬이 아버지를 쫓아 맨발로 왕궁을 나와 기드론 골짜기와 감람산을 올라갔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쫓는 패역한 아들을 다윗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본문은 말씀합니다. 다윗은 전쟁에 나가기 전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 장군을 불러 “장군들이여 오늘 전쟁에 나가 싸울 때 내 아들 압살롬을 만나거든 너그럽게 대하시오.” 모든 사람들이 들릴 정도로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집에 있지 못하고 성문 앞에 나가 패역한 아들이지만 압살롬이 건강하게 돌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 모습은 흡사 누가복음 15장에 집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그러나 패역한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을 자신의 후궁으로 거느리는 행태를 부립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무서운 죄는 첫째는 우상숭배요. 둘째는 살인하는 것이요 셋째는 부모를 해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죄는 모두 죽이라고 말할 정도로 엄한 죄입니다. 이러한 법에 따르면 압살롬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용서한 아버지를 대적하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거느리고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겠다는 아들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은 이런 아들 압살롬을 용서해 줍니다. 다윗이 패역한 아들 압살롬을 용서하는 사랑의 모습에서 우리도 부모님으로부터 이러한 용서와 사랑을 받으며 오늘 이 자리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 압살롬이 죽자 다윗은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죽지 네가 죽냐” 며 통곡합니다. 패역한 아들이 죽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로부터 은혜를 받고도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칠 때 주님은 그러한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죽이면서까지 죽을 목숨인 우리를 살리는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듯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사랑합니다. 이러한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어느 아들이 어머니를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보따리 하나를 남긴 채 양로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보따리 안에는 봉투가 들어있었는데 그 봉투 안에는 5백만원과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종이에는 “이 돈을 내 아들에게 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자신을 버린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어머니의 사랑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듯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효도하면 자식도 그대로 따라 배웁니다. 반대로 우리가 효도하지 않으면서 자식에게 효도하라고 말하면 자식은 속으로 코웃음을 칩니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들이 어머니를 고려장시키기 위해 지게에 어머니를 태우고 갑니다. 그 뒤를 아들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깊은 산속에 어머니를 두고 가는데 아들이 지게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야 이놈아 지게는 왜 지고 가냐?”고 묻자 아들이 하는 말이 “이 다음에 아버지 여기에 모시려고.” 했다고 합니다. 

홀어머니가 혼자 온갖 험한 일을 하면서 아들을 대학에 입학시켰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며 열심히 공부해 대학 4년 내내 1등을 했고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식 날 총장은 아들의 목에 금메달을 달아주었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아들은 귀퉁이에 허름한 옷을 입은 어머니에게 걸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목에 걸려있는 금메달을 어머니 목에 걸어 드리며 “이 금메달을 받을 분은 바로 어머니입니다.” 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하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려 내렸습니다. 이 아들은 미국의 윌슨 대통령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는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 이러한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