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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통로 창세기 12:1~3

축복의 통로 2009.06.07강용규목사
▒▒ 창세기 12:1~3


찬송가 405장을 작시한 존 뉴턴은 영국에서 선장이신 아버지와 믿음의 어머니 밑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7세까지 믿음의 어머니 밑에서 경건한 신앙을 훈련받았습니다. 그런데 뉴턴이 7세 때 그의 어머니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 후 그는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보다 못한 그의 아버지는 그를 해군에 입대시킵니다. 그는 군대에서도 탈영했다가 붙잡혀 약 15개월 동안 노예선에서 죄수로 일하게 됩니다. 그는 노예선에서 선원으로 노예로 포로로 죄수로 일을 했습니다. 형을 마친 후에도 특별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그는 다시 노예선을 탔고 선주의 마음에 들어 선장이 됩니다.

하나님은 성서에서 생명에 관해 엄격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후린 자 즉 사람을 유괴한 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존 뉴턴은 흑인들을 유괴해 다른 나라에 파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하면서도 때때로 어렸을 때 어머니께로부터 들은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나같이 사람을 후린 자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 어느날 그는 노예무역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청난 폭풍을 만나 배가 거의 파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 저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하나님 저에게도 긍휼을 베풀어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를 살려주셨고 후에 그는 목회자가 되고 405장 찬송가를 작시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존 뉴턴을 부르셨습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을 통해 하늘의 복을 이곳저곳에 전함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회심한 사도 바울도 하늘 생명의 복음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전하는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자리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그것은 한번 밖에 없는 인생에 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 사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너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복을 받을 것이니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서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느냐? 그러면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어받을 자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이라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우리를 통해 하늘의 복이 흘러가는 통로로 사용하심을 믿습니다.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놓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계속해서 당신들을 축복하실 텐데 여러분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우상숭배자들 죄악을 행하는 자들을 내쫓아 이 땅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도록 하시오.”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서 축복받는 백성으로 만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거침돌을 제거해서 하늘의 축복이 이 가나안 땅에 그리고 모든 족속에 흘러가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축복이 흘러갈 수 있는 통로를 먼저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통로가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모든 더러운 오염 물질인 근심 걱정 염려들을 모두 내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생명의 복음이 뭇사람들에게 흘러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한 번 사는 우리 인생을 마감할 때 우리가 들어야 하는 소리는 “저 사람이야말로 축복의 통로로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투자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말을 종종 하기도 하고 투자해서 돈을 많이 벌라고 권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많은 돈을 빌딩을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기고 가야 하는 것은 “저 사람을 통해 내가 예수 믿게 되었고 저 사람을 통해 내 인생이 바뀌었고 저 사람을 통해서 축복받는 자리에 내가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축복의 통로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열왕기상 3장 10절에 솔로몬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기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부와 명예를 구한 것이 아니라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 아니한 부와 명예까지도 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를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당시 갈릴리 지역은 천대받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갈릴리 바다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생명의 젓줄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큰 바다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예루살렘 근처의 사해이고 다른 하나는 갈릴리 바다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단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물을 갈릴리 바다가 받아 그 생명의 물을 다시 밑으로 흘려보내 생명을 살리는 바다가 됩니다. 그러나 사해는 시원한 물을 받지만 그 물을 흘러 보내지 않아 죽은 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도 받은 은혜를 우리만 간직한다면 사해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이고 받은 은혜를 아래로 아래로 흘러 보낸다면 갈릴리 바다처럼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할 때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는 때로 순서를 지키느라고 순종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자기 철학을 앞세우느라 순종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날 베드로는 환상 중에 “바구니 안에 들어있는 짐승을 먹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비늘 없는 짐승을 먹어본 적이 없는 베드로는 먹지 않겠다고 거부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내가 거룩하다 한 것을 네가 더럽다고 하지 말고 먹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습관과 순서를 깨뜨리고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성령 충만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할 때 축복의 통로가 되고 순종할 때 기적과 생명을 살리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