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 24:25~35 (부활주일)
스웨덴의 레나 마리아(Lena Maria)는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고 왼쪽 다리가 짧은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의사가 3일 동안 아이를 보여주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레나는 모든 고통을 이기고 가스펠 가수로 세계인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언론은 그녀의 목소리를 천상의 노래라고 격찬했습니다. 그녀의 인생을 담은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Foot-Notes)’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레나는 중증 장애인이였지만 세계 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부활의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육체에 대해 불평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일본 공연을 할 때 방송에 출연하였습니다. 사회자가 “레나, 당신은 어찌 그렇게 밝을 수 있습니까?” 물었더니 그녀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 삶을 움직이고 계시며, 내가 필요한 것을 채우시며 또 내 곁에서 나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합니다. “누군가 내게 ‘주님이 살아 계시고 부활하셨다는 증거’를 대라면 나는 나의 약한 육신과 날마다 찬송하는 내 입술을 당당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날 가르치던 음악선생님이 책망하며 말했습니다. “노래는 목이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거야, 그렇지 않은 노래는 생명력이 없어. 오늘은 이만하자.” 레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다문 입사이로 신음소리와 더불어 눈물이 계속해서 흘렀습니다. 외롭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발로 수화기를 들었는데 “여보세요” 하는 따뜻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습니다. “레나양이지요? 저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당신에게 전화하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레나는 전화를 받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나의 눈물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닦아 주실 것이다.” 레나는 약한 육신은 그대로였지만 그럼에도 위대한 삶을 살게 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레나 마리아, 그녀는 마음에 부활을 더디 믿는 자가 아니라 부활을 확실히 믿고 사는 부활의 사람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동행하심을 믿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부활의 주님이 안 보이시더라도 그를 믿으라. 그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가까이 계신다. 그리고 항상 계신다”라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동행하심을 깨닫는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여기의 ‘더디’는 ‘브라이데스’인데 ‘우둔하고 이해나 행동이 느린 것’을 나타냅니다.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 신속하지 못함으로 주님은 두 사람의 영적 무지를 책망하셨습니다. 더딘 믿음은 불신앙의 형태이기에. 믿음이 아닙니다.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관망하며 언제든지 세상으로 달려 가려는 모습입니다.
더딘 믿음을 고침 받아야 합니다. 이제 머뭇거릴 때가 아닙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경성해야 합니다. 믿음의 현주소가 어디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가 그의 말씀을 믿고, 그의 능력을 믿을 뿐 아니라 그의 부활까지 믿는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더디 믿는 믿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활을 확고히 믿는 자가 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눈이 밝아져야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더욱 사랑하라(Finding Calcutta)’의 저자 메리 포플린(Mary Poplin) 교수는 40대 초반에 예수를 만났습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가 일하는 현장으로 떠납니다. 테레사의 사랑 선교회가 사회사업 센터가 아니라 복음으로 살아가는 곳이라 도전받은 것입니다. 86세의 마더 데레사는 캘커타에서 2개월간 봉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떠나는 메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세요” 그리고 이어 말합니다. “우리는 먼 곳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기가 훨씬 쉽지요. 내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신의 자리인 가정과 일터에 예수님의 사랑을 가져 오세요. 그곳이 바로 예수님을 위한 사랑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당신에게 보고자 하는 눈이 있다면 세계 도처에서 캘커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캘커타를 찾아보세요.” 메리는 자신의 고향 텍사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세속적 가치관으로 가득 찬 자신의 일터인 대학 캠퍼스가 캘커타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처받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씻어주고 그들의 손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잡아 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녀의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기다리는 영혼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31절입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여기의 ‘눈이 밝아져’는 ‘디아노이고’ 로서 ‘눈이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떠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의 눈이 열린 것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과 떡을 받는 중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앞에 계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임을 깨닫게 됩니다. 영적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를 보게 된 것입니다.
마음에 부활을 더디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적 눈이 세상의 욕망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욕과 이생의 자랑 비늘에 눈이 가리어지면 눈에 보이는 것만 좇아가며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므로 눈이 밝아져야 정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약함 속에서 강함을 보게 됩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고, 패배 속에서 승리를 봅니다. 승리와 성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눈이 열려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마음이 뜨거워야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John Wesley)가 미국 조지아 주 선교의 실패로 영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죄의 용서를 받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회의와 낙심 가운데 올더스케이트 거리의 작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듣다가 마음의 뜨거움을 체험하였습니다. 이후 웨슬리는 ‘예수께서 나의 죄를 지셨고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뜨거워짐의 은혜가 웨슬리를 변화시켰습니다. 그의 설교는 생명력 있는 설교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충만했습니다. '전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선언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음악가 헨델은 56세에 병이 들어 모든 영광이 떠나갔습니다. 어느 눈 오는 날 밤, 교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 만든 작품이 '메시아'입니다. 베토벤 역시 실의에 빠졌을 때 마음이 뜨거워짐을 체험하고 '심포니 9'을 작곡하였습니다. '심포니 9'과 '메시아'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뜨거운 마음에서 나온 작품이었습니다.
본문 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여기의 ‘뜨겁지’는 ‘카이오메네’로서 ‘불을 붙이다’는 뜻입니다. 큰 감동으로 인해 마음이 크게 뜨거워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특히 현재 수동태 분사로 사용된 것은 감동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을 나타내며 뜨거운 감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주님으로 뜨거워져야 합니다. 뜨거움을 가지면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으면 매사를 억지로 하니 피곤하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뜨거워져 기도하면 지치지 않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져서 봉사하면 오히려 기쁩니다. 마음이 뜨거워져 복음을 전하면 아무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비록 두 제자는 근심과 슬픔 가운데 있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셋째로 입으로 전하여야
영국 에딘버러(Edinburgh) 골동품 거리에서 노신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그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지나가던 구두닦이 소년이 말했습니다. “어르신, 구두 닦으세요” 노신사는 말없이 그림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소년이 “저기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갑자기 노신사는 신음하듯 중얼거렸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구?” 지나온 삶을 회고하는 듯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걷고 있는데 소년이 뒤좇아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어요!” 그 순간 노신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나셨다구?” 노신사는 오랜 세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왔지만 그의 마음에 기쁨과 소망이 없었습니다. 삶의 무거운 짐에 눌려 피곤하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의 삶 속의 예수는 죽어 계셨습니다. 그래서 무기력하며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구두닦이 소년의 외침을 들으면서 마치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듯 그는 갑자기 외쳤습니다. “오 주님, 당신은 살아나셨군요!” 그리고 노신사의 얼굴이 밝아지고 입가에 미소가 돌았습니다. 소년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가 영적 잠에서 깨어나게 하였으며 또한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한 것입니다.
본문 35절입니다.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여기의 ‘말하더라’는 ‘엑세군토’인데 ‘상세히 설명하다’를 뜻합니다. 두 제자가 모여 있던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경험한 모든 것을 상세히 그리고 계속해서 설명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제자는 즉각적인 행동을 합니다.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일어난 시간은 날이 어두워 여관에서 유숙하려는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시 일어난 것은 주님을 만난 감격 때문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기쁜 소식을 낙심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전하려 한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절망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참된 소망과 위로를 주는 복된 소식입니다. 부활에 대한 참된 신앙을 가져야 비로소 주님을 담대하게 전파할 수 있습니다.
링컨(Abraham Lincoln)의 젊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변호사 시절 주의회 의원에 출마했으나 낙방했습니다. 다시 하원의원에 출마했으나 역시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몇 번 낙방을 거듭하자 링컨은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링컨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은 링컨이 자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낙선하던 날 링컨은 머리를 깎고 목욕을 했습니다. 좋은 일이 있는 것처럼 좋은 식당에 가서 밝은 모습으로 식사했습니다. 링컨의 자서전을 보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재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심정이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고 절망하던 중 성경을 읽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 이 일 후 링컨은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 뒤의 일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믿고 용기를 가졌다. 그래서 공화당에 입당하고 열심히 뛰어 대통령후보 지명을 받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주께서 부활하셨음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부활의 능력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두 제자처럼 눈이 열리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즉시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보이십니까? 마음이 뜨거우십니까?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사람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들은 대로, 본 대로, 체험한대로 부활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더디 믿는 모습도 버렸습니다. 부디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그 부활의 은혜를 마음껏 전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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