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심장으로-빌 1:3~11
1967년 12월 3일, 인류사상 최초의 심장이식수술이 남아공의 수도 케이프타운병원에서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25세 여성의 심장을 55세 남성에게 이식하는 수술이었습니다. 집도의는 크리스티안 버나드 (Christiaan Barnard)교수와 수술팀이었습니다. 이식 수혜자는 심장병을 선고 받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루이스 워쉬칸스키(Louis Washkansky)였습니다. 심장을 이식하는 데 걸린 시간은 5시간, 봉합까지 마쳤지만 심장이 뛰질 않았습니다. 심장박동을 촉진하기 위해 전기충격을 주고서야 새 심장이 꿈틀거리며 혈액을 펌프질하기 시작했고 수술팀은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워쉬칸스키는 12일 후 병상에서 일어나 걸을 정도로 회복했지만 6일 뒤 12월 21일 아침, 이식거부반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 후 의학기술의 발달로 현재는 심장이식 후 1년 이상 생존율이 84%이상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심장을 이식 받고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미국 아리조나 피닉스의 빌 홀(Bill Hall)은 심장이식 후 그의 삶이 변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본래 사업에 몰두하던 사업가였는데 심장을 이식한 후에 스포츠광이 되었습니다. 철인 3종 경기를 비롯하여 각종 대회에 출전하여 여러 개의 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재즈 음악에 심취하여 샤데이의 음악에 빠졌습니다. 빌 홀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어 심장을 기증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았습니다. 심장을 제공한 사람은 헐리우드의 스턴트맨이었고, 재즈 가수 샤데이의 열광적인 팬이었다는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결국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은 심장이식해 준 사람의 성격, 취향, 취미도 같이 전수받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입증된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은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복음 안에서 자신과 빌립보 성도들이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고 있음에 감사드렸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성도들을 사모하고 있다는 사랑을 표현하였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여기의 ‘심장’은 원어로 ‘스플랑크노이스’인데 심장, 간, 허파등 체내의 소중한 부분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는 마음인 ‘카르디아’보다 훨씬 더 강한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는 말은,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최고의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라는 말은 예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그 마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안에 성령이 역사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바울이 가진 사랑의 중심이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맥박과 함께 맥박이 뛰고 그리스도의 심장과 함께 심장이 고동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라는 표현을 한 것은 바울이 예수를 본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처럼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예수를 닮는 제자의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어떻게 행하여야 합니까?
첫째로 나는 감사하노라
어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다가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사회가 썩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저주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썩어빠진 세상! 그냥 다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때 누가 대문으로 신문을 던져 넣습니다. “누가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나? 저 사람이 죽으면 내가 신문을 보지 못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신문 배달하는 사람은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우유가 배달되었습니다. “우유 넣는 아주머니도 살아야지, 내가 우유를 마시겠지?” 그래서 우유 배달부도 살려 주었습니다. 출근을 기다리는데 버스가 오지 않습니다. 버스가 사고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버스 운전기사도 살려주었습니다. 네거리에서 교통 정리하는 순경을 보았습니다. “저 교통순경도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서 생각해보니 살려준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 세상에 죽어야 할 사람은 나 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주변 사람들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이 되살아났습니다. 그 순간 세상을 밝게 보는 눈이 열리고 서서히 행복감이 밀려들기 시작하더랍니다. 감사는 은혜를 인식하는 마음에 싹트고 행복은 내가 받은 모든 것이 과분함을 알 때 찾아옵니다. 과분하게 받았음을 깨닫고 감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3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기의 ‘내가...감사하며’의 ‘유카리스토’는 1인칭 단수 현재 능동태입니다.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쓰인 까닭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실제 빌립보 교회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 부족한 점이나 나쁜 면을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좋은 점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보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속상하고 언짢은 일은 생각할 때마다 불평이 나옵니다. 그러나 좋은 일만 생각하면 누구를 떠올리든지, 무엇을 생각하든지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받은 은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자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감사를 표현하면 서로 행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으면 은혜를 베푼 쪽도 섭섭하고 은혜를 입은 편도 마음이 황폐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생각하여 항상 감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는 기뻐하노라
1930년 미국에 대공황이 찾아왔을 당시, 법률가 출신이자 무정부주의자 클래런스 대로(Clarence Darrow)라는 무신론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경제 공황이 시작되자 무신론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할 때마다 “여러분, 이 사태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주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만 보아도 분명히 하나님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부를 비판하면서 무정부주의적인 자신의 신념을 전했습니다. 하루는 흑인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무신론 강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꿈과 재산을 잃었고 노래까지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손을 들면서 “저는 노래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니, 이 지경이 됐는데도 노래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할머니는 큰소리로 “예수님 때문에 노래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녀가 외치는 순간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맞습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라고 동조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던 분위기가 갑자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이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사십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본문 4절입니다.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여기의 ‘기쁨’은 원어로 ‘카라’인데 빌립보서에서 9회나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쁨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하였습니다. 비록 그의 몸은 옥에 매여 있었지만,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한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매여 있는 자신을 위해 간구한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의 기쁨은 환경을 초월한 기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가능한 기쁨입니다. 바울은 주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기도할 때마다 기쁨이 넘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기쁨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힘들 때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나는 확신하노라
영국의 지휘자 래클(Rackle)경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메시아를 연주하였습니다. 연주 중에 ‘내 주는 살아 계시고’라는 아리아를 부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소프라노 가수가 정확한 음정과 박자, 감정 표현 그리고 호흡을 조절해가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청중들이 심취해 있을 때 래클이 갑자기 노래를 중단시켰습니다. 가수는 말할 것도 없고 오케스트라 단원과 청중들까지 당황하였습니다. 이 때 래클이 가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주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습니까?” 뜻밖의 질문에 그녀는 얼떨떨하며 ‘예’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으로 다시 부르세요.” 래클은 다시 지휘를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소프라노 가수는 음정, 박자, 호흡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을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청중들은 조금 전과 다르게 들리는 노래에 감격하여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노래를 불러도 확신을 갖고 부를 때는 큰 감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확신에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여기의 ‘확신하노라’의 ‘페포이도스’는 ‘설득하다, 확신케하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의 확신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그 일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신실하심에 근거를 두고 종말의 날까지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시작하신 일을 중도에 포기하는 법이 결코 없으십니다.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행하십니다. 무엇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바라노라. 우리는 기대하노라”가 아닌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빌립보 교회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현재의 모습을 보며 낙심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영화롭게 하실 미래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임스 패트릭 키니(James Patrick Kinney)의 ‘마음의 추위(The Cold within)’라는 시입니다. 여섯 사람이 춥고 어두운 곳에 갇혀 모닥불을 쬐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모닥불이 꺼져 가면서 추위가 엄습합니다. 그런데 그들 의 손에 지팡이가 하나씩 들려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여자입니다. 그녀는 다른 남자들이 지팡이를 내 놓아야 한다며 꼭 움켜쥐었고, 특히 흑인을 위해 지팡이를 장작으로 내 놓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이웃을 위해 자신을 헌신해야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곳은 교회가 아니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옷이 남루한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는 속으로 ‘부자를 위해 왜 내가 희생해야해? 그건 어림없는 일이지’라며 중얼 거렸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부자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재산에 골몰하느라 지금 이 위기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은 흑인입니다. 이 기회에 자신을 무시한 백인들에게 단단히 앙갚음을 하리라 다짐하며 두 눈을 질끈 감고 모른 체 하였습니다. 마지막 사람,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만히 있는데 왜 나만 지팡이를 내 놓아야 하냐’라며 침묵합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밤이 깊어 갈수록 추위도 무섭게 엄습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지팡이를 내어 놓지 않습니다. 모두 나무 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쥔 채 불이 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고, 결국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추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추위 때문에 얼어 죽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희생할 줄 모릅니다. 그들의 심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은 크기가 어느 정도입니까? 세상의 모든 죄를 품은 그리스도의 심장처럼 사랑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계속 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항상 보혈로 새롭게 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달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것처럼,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하게 해달라고 구해야 할 것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처럼 겸손하게 낮은 자의 자리에 위치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할 때 부족한 부분을 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기도할 때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시작할 때 마지막에 이루어짐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부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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