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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고후 1:1~11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고후 1:1~11

세계적인 여성잡지 엘르(Elle)의 편집장이며 준수한 외모와 화술로 사교계를 풍미하던 프랑스의 장 도미니크 보비(Jean Dominique Bauby) 43세에 뇌졸증으로 쓰러졌습니다. 3주 후 의식을 회복했지만 전신마비가 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눈 깜빡이는 신호로 알파벳을 지정하여 글을 썼습니다. 한 문장을 쓰는데 꼬박 하룻밤을 새웠습니다. 그런 식으로 대필자 클로드 망디빌에게 20만번 이상 눈을 깜박이며 15개월만에 쓴 책이 바로 잠수복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입니다. 출간 8일 후, 그는 심장마비로 평소에 꿈꾸던 나비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연스런 들숨과 날숨을 가진 것만으로도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면서 불평과 원망은 행복에 겨운 자의 사치스런 신음이라고 지적합니다. 어느 날, 그는 50 센티미터 거리에 있는 아들을 보고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없어 눈물을 쏟았습니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와 목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에 오히려 아들이 놀란 표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건강의 복도 모르고 툴툴거리며 일어났던 지난날의 아침들을 생각하며 죄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마치 잠수복을 입은 것처럼 갇힌 신세가 되었지만 마음은 훨훨 나는 나비를 상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혼수상태에서 벗어난 직후 휠체어에 앉아 산책에 나섰을 무렵, 우연히 등대를 발견한 것은 길을 잃은 덕분이었습니다.” 길을 잃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등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기회는 위기 덕분이고, 일류는 이류 덕분이고, 고귀함은 고생함 덕분입니다. 가장 절망적인 때가 가장 희망적인 때이고, 어두움에 질식할 것 같을 때가 바로 샛별이 나타날 때입니다. 소망은 영혼의 날개입니다. 내일의 소망이 있으면 오늘의 절망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시편 62 5절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본서는 바울 사도가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변호함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의 화목을 도모하면서 교회의 질서를 확립하고자 기록한 서신입니다. 바울은 끊임없는 전도 사역 가운데 닥치는 환난과 역경 가운데도 은혜로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에 참여한 성도들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위로에 참예할 것을 확실히 믿고 소망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로 앎이라.” 여기의 소망으로 번역된 엘피스 기대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의 견고한 소망은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확실한 지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참여한 바 있는 하나님의 위로에 고린도 성도들 역시 참여하리라는 기대로 결코 소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있어서 소망이 견고한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위로하시니

미국에 뷸라(Bula)라는 간호사에게 어느 날 급성 관절염이 찾아왔습니다. 손쓸 새도 없이 몸은 빠르게 굳어졌고 단지 오른쪽 손가락만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야속한 운명만 원망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에게 심경의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오른쪽 손가락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생각보다 오른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으며, 특히 그녀는 오른손으로 전화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병실에 전화를 설치하고 병상의 환자들과 가족, 친구를 잃고 슬픔에 젖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변화된 모습을 보였으며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새로운 삶을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위로의 전화'의 시작이었습니다. 현대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위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주시는 위로를 받을 뿐 아니라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 흘러 보내어야 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여기의 위로하사의 원어는 파라칼론인데 곁에서 부르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위로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그 위로가 어떻게 현실화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이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환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여 주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환난 가운데서 위로 받았을 뿐만 아니라 환난으로부터 건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위로의 대상을 라는 개인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라는 복수형으로 표현하면서 사역에 동참했던 동역자들도 위로의 대상이라고 강조합니다. 고난이 큰 만큼 하나님의 위로 역시 커서 고난 받는 자를 덮어 고난을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가 소망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하는 고난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장차 나타날 영광이 있기에 소망이 더욱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만 의지하오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은 독일 출신의 영국 작곡가입니다. 그는 1711년 영국 여왕의 비호를 받으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런데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작곡한 곡들이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육신은 반신불수가 되어 건강을 잃어버렸습니다. 병을 고쳐보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고치기는커녕 가지고 있던 돈마저 다 떨어지고 빚만 잔뜩 지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빚쟁이들이 헨델을 감옥에 처넣었습니다. 그러나 절망에 빠진 헨델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감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소망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비록 육체와 주위를 둘러싼 환경은 절망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평안과 기쁨을 채워 주셨습니다. 그 이후 헨델은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 즈음 불후의 명곡 메시야도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헨델은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소망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에게 소망이 더욱 넘치게 하십니다.

본문 9절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본문은 힘에 지나도록 고생을 받아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 죽음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신 목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고 인간적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까지 처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소망의 방향 즉 소망을 향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과거의 구원을 경험한 바울은 미래에도 역사하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현재 고난 가운데 처해 있습니까? 인내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살 소망이 없는 상황일지라도 참고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가올 일에 대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소망이 더욱 더 견고해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간구하리니

실로암 안과 병원장 김선태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열 살 때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부모님을 동시에 잃고 폭탄에 두 눈마저 잃어버린 그는 거지생활을 하였습니다. 견딜 수 없는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세 가지 박사 학위를 소지하여 아시아의 남자 헬렌 켈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함께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실로암 안과병원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시각장애인 복지관, 실로암 요양원, 설리번 학습지원 센터까지 세워 운영하였습니다. 김선태 목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구나 인생의 어두운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어디에선가 어떤 모양으로든 비추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빛이 있기에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악의 인생 최고의 인생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려움 가운데서도 예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을 때 절망에서 건지시고 소망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함이라.” 여기의 간구함으로 데에세이 인데 개인적으로 곤궁함을 느낌으로써 탄원하고 간구하는 중보기도를 의미합니다. 비록 남을 위한 기도라고 할지라도 상대의 필요를 마치 자신의 필요처럼 여기고 간절히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 기도의 능력을 몰라 기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기도는 장소와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힘이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함으로 얻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 어둠과 사망의 환경에서 건짐을 받음으로 소망이 더욱 견고해지시기 바랍니다.

2010 10월 칠레의 산호세 광산에서 매몰사건이 일어났습니다. 69일 동안 갱도가 무너져 매몰 최장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매몰된 광부 33명 전원이 구조되었습니다. 처음 갱도가 매몰되었을 때 광부들에게는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팀장 루이스 우르수아(Luis Urzua) 절망은 절망일 뿐입니다. 우리는 33명이 아니라 34명입니다. 우리 외의 하나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말하며 광부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인간이 생명을 잃기 전에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 소망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은 더 나은 환경이 아니라 더 많은 소망인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소망은 현재를 이기게 하는 힘입니다. 무수한 환난이 죽음에 이르게 하고 살 여망이 없도록 다가오더라도 소망에 대한 확신이 분명하여야 합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소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미래에 일어날 환난 중에도 소망의 확신이 분명하였기에 환난 가운데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위로하시니 더욱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여 소망을 견고히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날마다 소망이 견고해지는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