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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강용규목사

기적2009.08.16한신교회▒▒▒▒ 사도행전 3:1~10

기적2009.08.16한신교회▒▒▒▒ 사도행전 3:1~10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사랑하시던 제자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그중에서 베드로는 그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드로만이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고백을 한 것도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제자도 베드로입니다.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순교를 당한 반면 요한은 자신의 수명까지 살았고 요한복음과 요한12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저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공통점을 지닙니다. 그들은 모두 부르받기 전 어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준비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시키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덤으로 달려간 제자도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신 후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시는 그 자리에 요한도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차이점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다혈질이고 충동적이고 모험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반면 요한은 신중한 성격으로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둘은 이처럼 성격이 서로 달랐지만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갔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갑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만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에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고 말하자 일으켜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삶을 뒤돌아보면 여기에 있는 어느 한 분도 평탄한 삶을 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죽을 고비도 넘기며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기적입니다. 기적으로 우리는 살아왔고 기적으로 앞으로도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날에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본문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즉 새벽 6시 낮 12시 오후 3시에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도에 철저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기 위해 이스라엘 비행기를 탄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을 비행기 안에서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셨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동이 틀 때 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옷을 가다듬고 예루살렘을 향해 조용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에 있던지 시간이 되면 기도했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입니다. 반면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유대교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유대인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에 대하 100프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곳에 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100프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한신교회도 100프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전에 와서 성실히 그리고 꾸준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우리가 전혀 힘쓰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서 사도 베드로가 설교하자 하루에 삼천 명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삼천 명이 회개하기 전 베드로는 먼저 열흘 동안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을 병행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늘 하는 일 속에서 기적은 일어납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어느 날 호렙산 기슭에서 떨기나무에 나타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린 다윗도 늘 아버지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버지 말씀에 순종해서 형들이 있는 전장으로 갔고 그곳에서 골리앗을 보았고 골리앗과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이사야도 늘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봅니다. 그리고 “거룩 거룩하다.”는 천사의 찬양를 듣습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는 결단을 내립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그러자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모습을 본 회당 안 사람들은 놀라며 이 일을 누가 행했느냐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지목합니다.모든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주목하자 그들이 말합니다. “여러분 왜 나를 주목합니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 그리고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철두철미하게 예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될 줄을 믿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부자 청년의 말씀이 나옵니다. 부자 청년은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잘 지킨 모자람이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영생에 관한 물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네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돌아갔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제자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늘 원하는 것은 버리고 난 후 무엇을 얻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들은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얻으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앉은뱅이에게 자신의 것을 주고 있습니다. 얻고자만 하던 사람이 주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오병이어를 내놓았기에 일어났고 사렙다 과부의 기적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것까지 내어놓았기에 넘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바쳐보십시오. 내어놓을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미래의 삶에 기적이 풍성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