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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3:1~5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3:1~5

1797년 영국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모트 (Edward Mote)의 이야기입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그는 사춘기를 방황 가운데 지냈습니다. 가구 만드는 공장 목공으로 일을 하였던 모트는 심한 열등의식으로 매사에 모든 사람에게 반항적으로 살았습니다. 어느 날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가 교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마침 부흥 집회가 열리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강사 존 하이야트 (John Hiatt) 목사가 요한복음 3장을 주제로 거듭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모트는 말씀을 듣는 동안 자신이 거듭나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날 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 예수를 영접할 수 있도록 도우셨고 그 결과 모트는 거듭났습니다. 그 날의 체험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이 거듭나자마자 내 눈동자는 내 생애 처음으로 생기를 되찾았고, 내 마음에 생수가 솟아 올랐다. 그리고 목공소에서 내가 들고 있는 망치는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행복한 목공이 되어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남겼습니다. 37살 때 사업가가 되어 커다란 목공소를 차리게 되었으며, 55살이 되었을 때 거듭나게 하신 주님을 위해 생애를 바치고 싶은 열망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께 드려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거듭남의 체험을 하였던 그 교회 옆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절망 중에 방황하다가 거듭난 그 순간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모트는 하나님이 주셨던 소망을 생각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 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전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바로 서리라.” 에드워드 모트, 그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노래한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43, 본 시는 원수로부터 조롱당하는 처지에 빠진 시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호소하며 예배하기를 바라는 시온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사모하며 노래한 시인데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열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시인은 시온을 떠나 있는 가운데 대적들에게 압제당하고 있는 비통한 심정을 드러내면서 속히 시온에 있는 하나님의 장막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은 소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여기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원어로 호힐리 엘로힘입니다. 이것은 기다리다, 바라다라는 뜻을 가진 야할의 사역 명령형입니다. 시인은 현재 하나님이 자신에게 얼굴을 가리고 계신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문제 해결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하고 낙망과 불안 속에 고개 숙인 자신의 영혼을 향해 하나님을 소망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의 마음이 불안합니까? 왜 알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이 속으로부터 올라옵니까?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낙심과 불안이 밀려올 때 우리는 시인과 같이 행동하여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다른 이가 아닌 바로 자신에게 명령해야 합니다. 자신을 엄히 일깨우고 믿음을 강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나를 인도하시니

1990년대 재즈 피아니스트이면서 시카고 필그림 교회 찬양대 지휘자 토미 도시(Tommy Dorsey)의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임신 9개월을 지나 출산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약속된 집회를 인도하던 도중에 부인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서둘러 귀가했지만 죽은 아내와 사산된 아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배와 찬양을 위한 집회를 섬기는 중에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 회의를 느끼며 괴로워하다가 신앙적 침체에 깊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교회사역을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재즈 피아니스트로 세상에 돌아갈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초등학교 교사 친구를 따라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눈 내린 학교 교정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습니다. ‘주님이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Take My Hand, Precious Lord)’ 그 순간 토미 도시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풍금에 앉아 곡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곡이 바로 복음성가 '주님여 이손을' 입니다. 다같이 부릅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그는 그 날 이후 다시 삶의 평정을 회복하고 사역으로 복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여기의 나를 인도하시고는 원어로 야느후니입니다. 시인은 대적들의 압제로 인한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시온의 장막으로 인도해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바램은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빛과 진리를 보내어 인도하여 달라고 강력하게 원하였습니다.

누구의 인도를 받으십니까? 시인은 자기가 삶의 인도자가 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주의 빛과 진리에 인도 받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자기가 삶의 주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에 이끌려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인도를 받고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계획과 뜻을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의 기쁨이시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은 메시야를 작곡한 세계적 음악가입니다. 독일 출신 영국 작곡가로 여왕의 비호를 받으며 명성을 떨쳤으나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그가 작곡한 곡들이 대중에게 인기를 잃어가는 것입니다. 또 육신은 반신불수가 되어 건강도 잃어버렸습니다. 헨델은 질병을 고쳐보려고 병원들을 찾아다녔지만 고치기는커녕 가지고 있던 돈마저 모두 떨어지고 빚만 지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 빚쟁이들이 헨델을 감옥에 넣어버렸습니다. 참혹한 감옥 속에서 절망의 시간을 보내던 헨델은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던 헨델은 소망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육체와 주위를 둘러싼 환경은 절망적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난 기쁨이 영혼을 가득 채웠습니다. 어두운 환경에서 헨델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만난 하나님이 큰 기쁨이 되심을 깨닫고 불후의 명작 메사야를 작곡하였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여기의 나의 큰 기쁨으로 번역된 시므하트 낄리 나의 기쁨이 되시고 또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 기쁨 중의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인생의 최고 기쁨이 되심을 알았기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왜 성도들이 교회에 헌금을 드리고 온갖 봉사를 합니까? 누가 시켜서 되는 일입니까? 하라고 해서 되는 일입니까? 모두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너무도 기쁘고 행복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기쁨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쁨을 아는 자들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나와 예배드린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시는지, 하나님이 없으면 내가 없고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을 뵙지 않고서 단 하루도 살 수 없음을 알고 고백하는 이들이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셋째로 나의 도움이시니

미국의 저명한 작가 데일 카네기 (Dale Carnegie)는 헨리 포드(Henry Ford)가 임종하기 전에 그와 회견을 하였습니다. 카네기는 회견에 앞서 세계 최대의 회사를 창립하고 경영하면서 겼어야 했던 온갖 풍파가 포드의 얼굴에 새겨져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78세의 나이에도 밝고 온화한 표정을 담고 있는 포드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네기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피로를 느끼거나 걱정되는 일은 없습니까?”라고 포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포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없습니다. 모든 짐을 져주시고 모든 일을 해주시는 하나님, 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돌보시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주시는데 왜 걱정합니까? 저는 한 번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확실한 도움이 되시니까요.”

본문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여기의 도우심으로는 원어로 예슈오트인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라는 백성들을 보시고 그들이 당하는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하심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즉 나타나 도우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긍휼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도우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의 도움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어떤 이는 돈을 의지합니다. 어떤 이는 능력 있는 사람을 의지합니다. 어떤 이는 권력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물질로도, 능력 있는 사람으로도, 권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심각한 질병을 만난 사람에게는 돈도 권력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불가항력적 환난 가운데서 도움이 되어 주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WEC 선교회를 창설한 스터드(C. T. Studd) 선교사는 옥스포드 출신으로 재벌가의 자녀였습니다. 그가 예수 믿고 평생 복음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중국과 아프리카에서 선교사 사역을 하였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들을 복음을 위해 모두 써버렸습니다. 스터트가 나이 들어 임종을 앞두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제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이 온 것 같다. 돌아보니 즐거웠던 일들이 생각나는구나. 하나님이 중국에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가족들은 모두 반대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결단하고 중국으로 건너간 것,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좋은 추억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때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것이 있다.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신 대로 '네가 가진 것을 가난한 자에게 다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나에게도 말씀하셨다. 그래서 유산 받은 것을 선교를 위해서, 가난한 자를 위해서 다 흩어주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들이 얼마나 유쾌한 추억인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앞에 펼쳐질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까?

 

모든 것을 견디며 참을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외아들까지도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삶의 위기에 직면하였다고 하여도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쁨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