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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되라-마 18:1~10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되라-마 18:1~10

 

숲속에 두 마리의 토끼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심심해진 형 토끼가 동생 토끼에게 말합니다. “, 우리 재미있는 놀이나 할까?” “뭔 데?” “, 저기 산 아래 사는 인간들이 하는 건데 싸움 놀이라고 해” “그래, 어떻게 하는 건데?” “아주 쉬워. 무조건 자기 꺼라고 말하면 돼. 자 여기 이 도토리 가지고 해보자. 동생아, 이 도토리 내 꺼다 동생이 그래, 그거 형 꺼야라고 합니다. 그러자 형이 화를 내면서 , 그럼 놀이가 안 되잖아. 다시 해 봐, 네가 먼저 해.” 동생이 말합니다. “, 이거 내 꺼다 형이 얼굴을 붉히며 말합니다. “아냐, 내 꺼야, 내 꺼란 말이야 동생은 다시 그래, 이거 형 꺼야라고 말합니다. 형은 한심하다는 듯이 동생을 나무랍니다. “다시 시작하자. 내가 먼저 한다. 야 이거 내 꺼다” “아냐, 내 꺼야” “뭐야, 니꺼라구? 아냐 내 꺼란 말이야 동생은 그래 그래, 형 가져라고 말합니다. 결국 형제는 더 이상 싸움 놀이를 못 하게 되었습니다. 순진함과 욕심이 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화의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천국에서 누가 큰자인가라는 제자들의 질문에서 발단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시며, 또한 그의 왕국이 영광스럽게 임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 왕국에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한 권력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상호 간에 경쟁과 시기 같은 문제들이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예수의 교훈은 개별적인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천국 공동체의 구성 원리 차원에서 제시되었습니다. 어린아이 하나를 제자들 앞에 세우고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의 돌이켜는 원어로 스트라페테인데 마음의 변화, 행동 양식의 변화를 뜻하는 완전한 방향전환을 가리킵니다. 천국에서의 서열과 관심에 치중하는 제자들의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라는 것은 유치하고 미숙한 신앙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절대 의존적이고, 절대 순종하며, 가르침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본받으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치관이나 생각에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여전히 세속적인 가치관을 버리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시기도 없고 질투도 없고 오직 감사와 감격이 넘치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참 잘못 걸어온 길을 돌이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낮추어라

정채봉(丁埰琫) 작가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참새네 집 막내가 갑자기 식사량을 사정없이 줄였습니다. 엄마 참새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 “왜 밥을 굶니?” 막내는 슈퍼모델 될려구요라고 대답합니다. 얼마후 막내 참새는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딸을 몰라볼 뻔한 아빠 참새가 물었습니다. “마음은 안 고쳐왔니?” 막내 참새가 발끈해서 대답합니다. “슈퍼모델 선발은 마음을 보는 게 아니예요. 얼굴만 예쁘면 돼요.” 막내 참새는 수영장에 다녔습니다. 할머니 참새가 물었습니다. “얘야, 슈퍼모델이 무어냐? 슈퍼 앞에서 모델 하는 거냐? 왜 책은 읽지 않고 몸매만 가꾸면 되는 거니?” 막내 참새는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대꾸합니다. “할머니, 슈퍼모델은 옷걸이가 되는 것이지 좋은 책꽂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막내 참새는 거울 앞에서 표정 연습도 했습니다. 할아버지 참새가 물었습니다. “그 버르장머리 없는 표정 말고 겸손한 표정을 지어보렴 막내 참새는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습니다. “슈퍼모델은 잘난 사람이지 봉사대원이 아니예요.” 참새네 가족은 가족회의를 열었습니다. 막내를 슈퍼모델 선발대회에 내보낼 것인가 안 내보낼 것인가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묵묵히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 참새가 입을 열었습니다. “참 이상도 하다.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만으로 심사하는 대회도 있다니. 이건 개판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구나. 내가 아는 슈퍼모델은 사람의 아들 중에 그 분인데... 그 분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로 와서 나를 배우라고 하셨다는데.”

본문 4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여기의 낮추는에 해당하는 타페이노세이 평지로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자기를 낮춘다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자세로 낮아져 자발적으로 섬기며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천국 시민으로 합당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이는 권력에 집착했던 제자들의 영적 무지와 교만을 짚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낮추지 않고서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모습으로 살 것이냐, 아니면 제자들처럼 우월감에 사로잡혀 교만 의식에 사로 잡혀 살 것이냐는 전적으로 자기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교만한 자들은 미워하시고 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를 낮추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소유함으로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영접하라

아동 심리학자 제니스 키콜트 (Janice Kiecolt)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해서는 안 될 치명적인 말들을 소개하였습니다. ‘멍청이, 거짓말쟁이, 병신이라는 욕설의 말. ‘넌 구제 불능이구나라는 힐난의 말. ‘안 된다고 하면 절대로 안 되는 거야하는 억압의 말. ‘넌 사람도 아니야라는 모멸의 말, ‘바보 같은 것 같으니, 넌 정말 못났구나라는 비난의 말, ‘반에서 일등하면 뭐든지 다 해 줄게라는 매수의 말, ‘나도 이젠 몰라, 네 마음대로 해 같은 협박의 말입니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부모도 패하지 않고 자녀도 패하지 않는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윈윈(Win Win)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승부하지 말고 공동우승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자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들의 천사가 하나님을 뵈옵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린아이들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5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올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여기의 영접함이니 덱세타이입니다. 어린아이 혹은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자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하며 소중히 여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히 여겨지는 자들일지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어린아이가 가진 순종과 겸손이 참된 성도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나타내는 교훈입니다.

섬김의 모델로 어린아이를 내세운 것은 가장 미숙하고 낮은 어린아이도 섬김의 대상이 된다는 진리를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어린아이로 상징되는 천하고 낮고 약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성도의 사명인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낮고 천한 자를 섬기는 것은 예수를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은 어린아이와 같이 작은 자들을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낮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존중하라

몬테소리 교육은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 (Maria Montessori)가 제창한 교육 방법입니다. 몬테소리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의사였습니다. 그녀는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합숙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였다가 아이들이 짐승처럼 대우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어날 때 지적 장애를 가졌다고 이렇게 소홀히 여김을 당하나! 짐승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먹을 거만 주는 것이 아이들을 돌보는 것인가?’ 그때부터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로마 최초로 공립재활학교를 만들고 아이들을 위해 특수 기구도 만들었습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행복을 느끼며 성장하였습니다. 그녀는 의사직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세계 최초로 어린이집을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고백합니다.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보았다.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팔에 안으시고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 중 한 사람을 영접하는 자는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 너희가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 어린아이를 만났는가? 나는 그들을 만났다! 어린이집에 온 아이들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어린아이로 자랐다. 위축되고 얼굴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변화해서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었다!” 세 번이나 노벨 평화상 후보로 올랐지만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를 돌본 것밖에 없습니다라며 한사코 상을 거절했습니다. 그녀의 묘비에 적힌 글입니다. “나는 나의 친애하는 모든 어린아이가 인류와 세계의 평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하나가 되고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한 의사의 헌신이 어린아이의 교육 풍토를 바꾸어놓았습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삼가 이 작은 자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여기의 업신여기지에 해당하는 카타프로네세테 경히 여기다, 멸시하다라는 뜻입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내려다보는 자세입니다. 본문에서는 금지를 표현하는 부정어 와 더불어 쓰여져 강력한 금지를 나타냅니다. 소자 중 단 한 명이라도 멸시하지 말고 차별 없이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라고 강력하게 촉구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사회적으로 연약한 성도들을 멸시하거나 차별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보호하시며 수종 들게 하셨다는 사실은 개개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연약한 자를 멸시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그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형제를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재로 여기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소홀히 하여 한 영혼이라도 실족하게 된다면 그 책임을 물으시며 엄중히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조각가가 예수의 초상을 대리석에 조각하였습니다. 이 년 동안 예수의 얼굴을 조각한 후 어린 아들을 불러 이 조각이 누구의 얼굴 같으냐?”라고 물었습니다. 아이가 하는 말이 아마 유명한 사람이겠지요.” 조각가인 아버지는 실망했습니다. 그것을 버리고 다시 대리석에 예수의 얼굴을 조각했습니다. 어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건 누구 같으냐?” 가만히 보더니 재주 많은 사람 같습니다.” 또 실패했습니다. 다시 예수의 얼굴을 조각하고 이건 누구 같으냐?” 그때 어린 아들이 , 예수님이시다라고 말합니다. 그때 조각가는 기뻐하며 이제 성공했구나라고 말했답니다. 어린아이들이 예수를 바로 봅니다. 신앙에 있어서 어린아이들을 속이지 못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른인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우리의 얼굴과 마음에서 예수를 찾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말과 행동 가운데서 어린아이들이 예수를 발견할 만큼의 신앙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약한 자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버려진 자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러한 모습을 버리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처신한다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일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진실된 봉사의 분량을 어떠한 지위보다 훨씬 위에 두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디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연약한 자들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소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존중히 여기어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