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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 ; 1 - 7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감사

창세기 4 ; 1 - 7
제  목 :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감사
찬  송 : 79, 570, 588, 590, 591, 593.
복음송 : 감사 찬송(70)

 

        할렐루야!!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충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무엇을 어떻게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감사가 될 수 있으며 또 온전한 축복이 되는 감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감사』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에 대하여 그 유래를 생각할 때
        1620년 청교도들이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의 분리파에 속하는 사람들이 박해를 견디다 못하여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네덜란드로 도피를 하였으나 그곳에서도 아르미니우스 파의 반대에 부딪쳐 그들은 1620년 12월에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미 매사추세츠 주에 상륙하여 익숙지 못한 기후와 굶주림과 싸우면서 인디안 으로부터 배워서 가꾼 옥수수와 호박 등을 처음 수확하였을 때에 그 감사함을 기념하기 위하여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 제로 지켜왔습니다. 그것이 1884년 한국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전해지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요 역사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탈출하여 시내 광야에 머물 때 모세를 명하여 계명들을 주셨는데 그 때에 3대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출23:14-16)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급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이와 같은 명령을 받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고  살았기 때문에 이 절기를 지키지 못하다가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가 첫 농사를 지은 때부터 맥추절도 지키고 수장절, 오늘의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1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창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초로 농경을 한 사람은 아담입니다. 바로 아담의 직업(가업)은 농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업은 아담의 장남인 가인이 이어 받아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곡식도 심고 채소도 심고하여 열심히 일하며 농산물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는 “세월이 지난 후에…”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신없이 아들 딸 낳고 농사지으면서 살다보니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세월이 지난 후에…”라고 한 말씀의 그 세월이 얼마가 지났느냐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가인과 아벨이 성인이 되어 자기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아 상당한 연수가 지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각각 자기가 노력하여 얻은 것 중에서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추수감사절” 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열납 하시고 가인의 제사는 열납치 않으셨기 때문에 급기야는 가인은 자기의 성질을 참지 못하여 안색이 변하고 분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가인은 결국 아우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열납 하시고 가인의 제사는 열납치 않으셨을까요? 하는 의문에 부딪치게 됩니다. 하나님이 두 사람의 제물을 모두 받으시면 이와 같은 살인 사건도 나지 않았을 것인데 왜 그랬을까?
        아마도 이 의문점은 영원히 미제로서 남아 있을 것이며 그 어떤 해석도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설명해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은 해석과 주석과 학설들이 있습니다.

 

       ① 어떤 주석에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제물을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워 주기 위하여 가죽옷을 해 입히셨습니다. 그것은 곳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실 구원 사업을 예고해 준 것으로 아벨은 이 뜻을 잘 알아서 양을 잡아 드렸고 가인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의 생각대로 땅의 소산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② 또 어떤 이는 땅의 농산물은 수고와 땀으로 거둔 “행위”의 제물이요, 양의 새끼와 그 기름은 “믿음”의 제물이니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고 한 바울의 말과 같이 하나님은 “행위” 보다 “믿음”을 택하셨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또 다른 의문을 가져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처음부터 농사하는 자였고 아벨은 양치는 자 였습니다. 농사짓는 자가 농산물로 드리고, 양치는 자가 양으로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채식보다 육식이 좋아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가인은 부친 아담의 가업을 이어 받아서 농사짓는 사람이 되었는데 아벨은 왜 양치는 자가 되었을까요?
        창3:9절에 의하면 사람들은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육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아벨의 양을 치는 것은 먹기 위해서 기른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아벨은 왜 양을 치는 사람이 되었는가? 그 대답은 아담과 해와가 입은 가죽옷 밖에 없습니다. 즉 가인은 식생활을 해결하기 위하여 아담의 가업을 이어받아 농사짓는 자가 되었고 아벨은 입을 것을 위하여 양을 기르고 그 가죽을 벗기고 그것으로 곡식을 바꾸어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양 새끼 밖에는 바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양 새끼로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 가지 결론에 닿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열납 하시고 가인의 제물은 열납치 않으신 이유가 그 제물이 양이냐 곡식이냐에 있지 않고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에 함께 은혜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그 드리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잠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드리는 제사와 제물을 받으실 때 제물의 종류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제물을 드리느냐 하는 것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은 농산물이기 때문에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물은 양이기 때문에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정성과 마음과 뜻과 믿음과 나아가서는 그의 인격과 신앙까지를 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와 자신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사람의 육신이 살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의, 식, 주(衣食住)라면 영이 살기 위한 필수적인 것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요 목적은 아닙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의 제물이 열납 되지 않은 것을 알자 그의 낯빛이 변하였습니다. 그는 왜 자기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았는가 하는 자기반성보다는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생이 없었다면 자신의 제물이 열납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제물이 열납 되지 않은 이유를 동생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동생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신앙은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신앙과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미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마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2.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무엇을 제물로 드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옛부터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무슨 제물을 가지고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신들이 모두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무당들은 돼지 머리를 제물로 드립니다. 또 떡을 해서 드리는 종교도 있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모압 사람들이 섬기던 몰록이라는 신은 갓난아기를 산채로 불에 던져 태워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송아지나 정결한 어린양이나 비둘기로 제물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시기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출23:15) 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나름대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는“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11:4) 고 하였습니다.
       (말1:7-8)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고 하신 말씀과 같이 가인의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열납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잠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감사가 있을 수 없고 혹 헌금을 드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믿음이 크면 감사도 크고, 반대로 믿음이 적으면 감사도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항상 믿음이 충만하여 하나님 기뻐하시는 온전한 감사를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3. 하나님이 기쁘게 열납 하시고 축복하신 제물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의 제물을 축복하셨습니다.

 

        창22장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독자 이삭을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셨을 때 주저하지 않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서 모리아 산을 향해 출발을 하였습니다. 3일 동안을 걸어서 모리아 산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의로 여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창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우리가 추상적으로 그냥 생각하기는 아들을 드리는 것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은 그의 주석에서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장작을 쪼갤 때에 그 마음은 쪼개지는 장작보다 더 갈기갈기 찢어졌고, 3일간 황량한 광야 길을 걸어갈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광야보다 더 삭막하였으며, 이삭이 장작을 지고 고갯길을 오르면서 “나무와 불과 칼은 준비되었는데 번제할 양은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을 때 이삭을 찔러 죽이려고 들고 가는 그 칼이 마치 자기의 목을 찌르는 것과 같이 아팠고 제단 위에 이삭을 결박하여 들어 올려놓을 때 25살의 청년 이삭의 무게보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더 무거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여호와이레」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아들 이삭에게 대답을 하였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그 말대로 하나님은 수양 한 마리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창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창22:16-18)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2) 하나님은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축복하셨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그 제물을 받으시고 솔로몬에게 축복을 하셨습니다.
        (왕상3:4-5)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나님의 이 말씀에 솔로몬은 대답하기를
        (왕상3:7-9)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3:10-13)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3) 예수님은 성전에서 두 렙돈을 헌금하는 여인을 축복하셨습니다.

 

        막12:42절과 눅21:2절 의 말씀을 보면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연보궤에 넣었는데 예수님은 그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시면서 그 어떤 사람보다 많이 하였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막12:42-44)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사1:11-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그러므로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이 시간에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뻐하시는 참된 제사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4:24) “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우리들은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을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과 외식에 치우쳐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 죄를 용서받고는 다시 나가 또 죄를 짓고 그러고는 또 다시 제물을 드리는 이와 같은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사66:3-4)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감사로 제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시50:14,23)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잠21:3)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고 말씀하셨고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12:33) 라고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림으로 그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시고 하늘 문을 열어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하시는 놀라운 축복의 절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