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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안주함에서 벗어나 전진하십시오(마가복음 10:46-52)

현실의 안주함에서 벗어나 전진하십시오

(마가복음 10:46-52)

설교 : 문성욱 목사

인간은 편안함을 원합니다. 그래서 익숙한 현실의 삶에 안주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주함이 오히려 퇴보인 것을 지금은 모릅니다. 오늘 형편이 편안하고 좋더라도, 혹 현실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더 나은 내일을 바라보고 전진하면, 전진한 만큼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됩니다.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한 최초의 시각장애인 등반가 에릭 바이헨마이어는 13세에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후, 16세에 킬리만자로산을 정복했습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지팡이를 의지해서 동료 셀파의 배낭에 달린 종소리를 들으며 방향을 잡아갔습니다. 정상인도 90% 이상이 등정에 실패하는 에베레스트산 등정에서 그는 결국 부상을 당했지만, 셀파에게 “나는 정상까지 물건처럼 운반당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마치 나를 공을 찾듯이 정상까지 올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거부하고 끝내 정상을 정복했습니다. 그는 “당신이 단지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홀로 설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깊은 시름에 빠지지 말라. 당신은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비록 앞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눈을 뜬 우리보다도 더 놀라운 것을 보고 사는 현실의 안주함에서 벗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현실에 머무는 것을 거부하고 인생을 새롭게 도전해 가는 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바디매오라는 맹인이며 거지입니다. 여리고 큰 광장 길가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꾸짖어도 바디매오는 더욱 소리를 지르며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그의 간청소리를 들으시고 데려오라고 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시니 곧 보게 되었고, 바디매오는 곧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의 삶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생을 위해 출발함으로 일어난 놀라운 기적을 보여줍니다. 맹인 거지는 예수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인생의 역사를 바꾸어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현실에 안주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현실에 안주하는 그 때가 위기입니다. 야곱은 외삼촌이 삯을 열 번이나 바꾸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늘 앞으로 나아가면서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지만 세겜에서 머물려고 하다가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큰 시험을 당합니다. 다윗도 모든 전쟁에 승리하고, 수도를 옮기고,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을 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의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초대교회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후에 맡겨진 사명을 잊어버리고 예루살렘에 머무르다가 핍박을 당하여 스데반이 죽게 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머무르면 안 됩니다. 뒤돌아보면 안 됩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매인 것이 많고, 어려움이 많아도, 주님을 믿고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나가자” 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현실의 안주함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생각지 못한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꾸짖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 앞에 나아감으로 고침 받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삭개오라는 여리고의 세리장은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지만 키가 작아서, 사람들 때문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을 보고자 하였더니, 예수님께서 이러한 삭개오를 아시고 삭개오를 부르시고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면서 그의 가정에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앞으로 가야합니다.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앞으로 가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이라고 전부 말이 아닙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해야 되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고, 사업이 되고, 이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현실의 안주함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현실의 안주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현실의 안주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신다는 확신과 용기와 담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현실 안주함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는 비난과 조소가 뒤따를 수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현실안주를 거부하며 인생을 도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실의 안주함을 거부하고 인생을 도전할 때, 보지 못하던 인생이 보는 인생으로 변화된 바디매오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현실안주를 거부하고 앞으로 나가면, 하나님은 놀라운 인생을 펼쳐 주실 것입니다. 더 나은 인생의 삶을 위해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결단을 가지고 주님께 외치시기 바랍니다. 맹인 바디매오처럼 구원의 믿음에만 안주하지 말고 능력을 체험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을 얻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늘 앞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은 늘 앞으로 가게 합니다. 성령은 늘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교회는 늘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사명 감당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함으로 현실의 안주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미완성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여건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만 머물러 버리면, 그 자리는 퇴보의 자리에 불과합니다. 계속해서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현실안주 속에서 퇴보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현실안주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물살을 역류하려면 물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역류해야 합니다. 내려오는 속도보다 빨라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내려갑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인생은 낙오자입니다. 믿음의 현실안주는 타락입니다.

거지 인생이 인류의 소망되는 나사렛 예수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보는 인생이 된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도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함께 놀라운 인생이 되어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때때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아 통곡하고 싶어도 그 자유마저 빗겨갈 때가 있고, 어디론가 멀리 멀리 도망하고 싶어도 도망갈 기력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죽는 것보다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한 번 죽는 것보다 매일 매일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빅터 블랭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들이 인생을 포기할 때 그들은 한 번 죽으면 되었지만, 나는 살아남기 위하여 매일 죽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가 어두운 밤을 지날 때 필요한 것은 깜깜한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희미하지만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하나의 별을 찾아내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극한 삶의 위기를 만날 때 놓치지 말고 꼭 붙잡아야 할 것은 문제와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 능력’입니다. 우리의 모든 신음과 고통 속에 부여된 ‘섭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모든 고통과 극한 어두움을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하고 해석의 관점을 주님 중심으로 전환한다면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벅찬 가슴으로 터널 너머에 있는 주님의 아름다운 세계와 미리 예비하신 놀라운 일들을 바라보고 꿈꾸시고 선포하십시오. 아무리 캄캄해도 믿음의 눈으로 자세히 보면 별 하나쯤은 보이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니 눈을 감고 조용히 묵상해 보십시오. 감사하지 않은 일들이 어디 있으며 주님으로 인하여 어찌 찬양 안할 수 있겠습니까?

충분히 어두워져야 새벽이 오듯이, 문제를 끌어안고 염려하지 마시고 주님을 끌어안고 내면의 평안을 회복하십시오. 도울 힘이 없는 인생들과 방백들을 의지하다가 낙심하거나 상처 받지 마시고, 도울 힘이 충만하신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주님만이 우리가 영원히 바라보고 살아야 할 새벽별이십니다.

금번 사순절 기간에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더 큰 복,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고 영영토록 기억에 남을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셨지만, 우리는 조금 편안하다고 현실에 안주해 버렸습니다.

이제 다시 일어나십시오. 깨어 기도하십시오. 맹인 소경을 고치신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어려움도 건져 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