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필요한 시대
(역대하 24:1-7,15-19)
설교 : 문성욱 목사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그들이 소유한 문화유산을 후손들에게 전달하여 계승하고 발전시킨다는 것입니다. 인류문화유산의 계승과 전달은 언제나 교육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3요소는 선생님, 학생, 그리고 교육과정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선생님입니다. 선생이 없으면 학생이 배우려고 해도 제대로 배울 수 없고, 교육과정 역시 선생에 의해서 선택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원하던 원치 않던 우리 삶에 여러 종류의 선생님을 만나며 살게 됩니다.
인생의 축복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동지들을 만나게 됩니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 능력 없이 태어난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배우게 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인생의 처음 선생님은 부모님이지만, 범위를 넓혀 학교나, 사회나, 교회나 어떤 삶의 장면에서든지 우리는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축복이요, 친구를 잘 만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또 삶의 업무현장에서 동역자를 잘 만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우리를 감동시키고 삶의 발전과 진보를 자극시켜줄 선생님을 만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더없는 큰 복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 자녀를 가르치실 선생님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의 생활과 가나안 정복전쟁 후에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풍요로운 생활에 취해서 후손들에게 하나님과 말씀의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후손은 광야와 정복전쟁에서 체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이방신상 섬기면서 죄악에 빠진 그들을 돌이키기 위하여 재앙을 매를 드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복이 떠나지 않아야 하는데,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복은 없고 재앙만이 그들을 따라 다녔던 것입니다.
유다의 역사를 보게 되면 왕과 왕의 선생에 대한 내용이 여러 군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아는 제사장이나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서 나라를 선정했던 왕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지만, 반대로 그 선생들의 가르침을 뿌리치거나 그 선생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또 다른 선생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을 했을 때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몰락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역대하 24장에 등장하는 요아스라는 왕은 그의 할머니, 아합 왕의 딸 아달랴가 자기 아들들과 손자들까지도 다 죽여가면서 왕위를 차지하려고 할 때, 아하스의 고모가 요아스를 몰래 숨겼다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중심으로 요아스를 왕이 되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그를 가르쳐 하나님 앞에 든든한 믿음의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했던 요아스는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입게 되고 나라가 풍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일백삼십 세에 죽은 후 새로운 스승을 만나지 못하자,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유다 방백들의 요청을 따라 하나님보다 인간적인 방법과 우상을 섬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역대하 26장 5절 이하에는 웃시야라는 임금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웃시야 왕이 스가랴라는 훌륭한 선생님을 두었을 때는 말씀을 배우고, 말씀의 조언과 조명을 받아 하나님께 구하고 구하는 동안에는 애굽 변방까지 나라의 위세가 떨쳐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를 가르치던 말씀선생 스가랴가 죽고난 뒤 새로운 스승을 맞이하지 못하고 그의 강성함에 스스로 교만해져서 심지어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제사장처럼 향단에 분향하려고 하다가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게 되고, 평생 문둥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바른 교육을 받고, 그대로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형통하였고, 변방까지 이름을 떨칠 수 있었으나 스승 없이 자기 힘만 믿고 살다가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우리가 훌륭한 선생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훌륭하게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 우리에게 있어서 스승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스승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교육이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이 없이는 교육은 죽은 것입니다. 선생님에 대한 참된 존경과 고마움이 있을 때 비로소 교육은 시작되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민족이 바로 유대민족입니다. 노벨수상자의 22%, 세계 200대 재벌의 15%, 미 의회 정치인의 10%, 미국 변호사의 30%, 법대, 의대교수 50%, 언론사, 예술가, 과학자 등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민족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소수민족인 유대인들이 이처럼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교육 때문입니다. 교육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교육의 주체인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는 사회풍토가 유대인을 가장 강인한 민족으로, 다방면에 걸쳐 세계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는 민족으로 키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교육을 가장 귀하게 여겨온 민족입니다. 그리고 교육의 주체인 랍비를 존경하였습니다. 유대사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랍비들, 바로 선생님들입니다. 유대인들의 교육은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면서 자라도록 만들어진 사회적 분위기, 사회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는 선생님에게 가장 성스러운 권위를 부여했던 공동체가 유대인 공동체요, 사회였습니다. 이런 풍토가 유대인을 유대인 되게 하는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현실은 선생님을 모두 죄인으로, 부도덕한 사람들로, 돈만 아는 돈벌레로 깔아뭉개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풍토에서 무슨 교육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우리 민족은 본래부터 스승을 부모만큼 공경하는 것을 도리로 여겨왔습니다. 육신은 어버이에게서 받았지만, 정신은 선생님에게서 길러지기에 그림자조차도 밟을 수 없는 제2의 부모로 섬기는 미풍양속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스승은 스승으로 대접받아야 합니다. 삶의 고비마다 인생의 빛이 되어 마음을 어루만져 줄 스승이 단 한 분도 없는 사람처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정말 가르침을 베풀 수 있는 사람, 모든 것을 따라서 행동할 수 있는 참된 스승이 필요로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의 진정한 스승입니까? 우리의 진정한 스승은 우리 주님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지식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현재의 성적이 아니라, 미래의 변화를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대’라는 뜻을 가진 시몬을 ‘반석’이라는 베드로로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서 핍박하던 ‘사울’을 예수님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 복음을 전하는 ‘바울’로 바꿔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대학이 아니라, 꿈과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가장 낮은 종이 하는 일, 즉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삶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주일이면서 청년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의 가능성을 보고 격려하여 주신 것처럼, 우리도 청년들과 자녀들의 가능성을 보고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좋은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겸손의 본이 되어준 것처럼, 우리도 겸손히 섬김과 헌신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청년들이 꿈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고, 이러한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셔서 우리의 기쁨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은 “부모는 활이요, 자녀는 화살이니 하나님께서 궁수가 되어 목표지점을 향해서 멀리 당길 때 그 화살은 과녁을 향해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당기는 대로 자녀들은 나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향하여 화살을 쏘고 있습니까? 세상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향해서입니까? 또한 당신은 당신의 자녀가 하늘을 향해 날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힘을 제공하고 있습니까?
어렸을 적 부모의 말 한마디는 그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너는 앞으로 위대한 사람이 될거야”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신성한 자존심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인격이 형성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이 원하시는 도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학교 교사와 주의 종들을 존경하십시오. 교회학교는 청소년들에게 영적인 감동과 감격을 주는 곳입니다. 학교교육은 이성과 경험을 강조하는 머리교육인 반면에 교회학교는 계시와 영성을 강조하는 가슴교육입니다. 그러므로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교회는 지식보다 감동을 심어주는 곳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부속품이 아닙니다. 그들만의 신앙과 문화와 교제를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정말 어린이를 가슴에 품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먼저 선생님과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본이 되십시오. 가정과 교회에서부터 칭찬하고 격려하는 좋은 스승이 되십시다. 그리할 때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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