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부림절
(에스더 9:20-28) 설교 : 문성욱 목사 일반적으로 자기 권리를 상실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나라의 주권을 상실하게 되면 노예로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상실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입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지만 권리를 상실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제 36년 동안 나라의 주권을 상실한 채 살았습니다. 아직도 그 아픔과 상처가 있어서 일본과는 가깝고도 먼 이웃으로 지내야만 합니다. 일본은 징병과 징용으로 수없는 목숨을 빼앗고, 식민지 여성들이라고 하찮게 보고 위안부로 내몰고는 ‘너희가 못나서 당해놓고 왜 징징거리느냐’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2차 대전의 전범으로 인정하고 철저히 잘못을 반성하며 유태인들을 학살한 책임을 지려고 하였지만 일본은 한국에 대하여 36년 동안 억압하고 힘들게 했던 것에 대해서 반성의 빛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고 하여 고구려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고,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고,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면서 미국마저 일본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중,일 3국이 치열한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국사교육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도 모르고, 삼국시대의 삼국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독도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2천년 동안 나라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 세계 제일의 민족이 된 이유는 철저하게 교육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의 삼대 절기가 있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 맥추절은 초실절,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세 절기 말고도 다른 절기들도 지키고 있습니다. 나팔절은 유대 달력으로 일곱째 달 첫 날인데 나팔을 불어 이 날을 기념하고 쉬었고, 수전절은 기원전 165년에 시리아 왕 안테오쿠스 에피파네스가 모욕했던 성전을 마카비라는 독립운동가가 회복시킨 날을 기념하는 날이고, 부림절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제비절’, 정확하게는 ‘제비들절’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제비는 공중을 나는 제비가 아니라 뽑는 제비를 말합니다. 히브리말로 제비를 ‘부르’라고 합니다. 이 ‘부르’의 복수형이 ‘부림’이기 때문에 부림절이라고 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살다가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 페르시아에 그대로 남아 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아하수에로는 왕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왕후 와스디를 폐위하고 유대인 처녀였던 에스더를 왕후로 간택되었습니다.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당시 총리였는데, 하만은 사울 왕이 순종하지 않고 살려두었던 아말렉 족속의 아각 왕의 후손으로 사울왕의 불순종의 결과가 560여년 뒤에 이런 불행을 낳았습니다. 이 총리 하만은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미워하여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을 다 죽이려고 왕에게 조서를 받았는데, 그 날이 바로 아달월 13일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이 사실을 기별하였고, 에스더는 삼일을 금식하고 왕에게 나갔더니 왕이 금규를 내미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왕은 모르드개가 반역을 밀고한 사실을 알고 모르드개를 높이고 하만은 에스더의 요청으로 잔치에 참여했다가 50규빗의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르드개가 대신하여 총리가 되고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죽이려는 아달월 13일과 14일에 대적들을 죽이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내의 모든 유대인들에게 매년 아달월 14일,15일을 부림절로 지키게 하였는데, 이 날은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은 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 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로 온 백성들은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고 이 날에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만이라는 자는 유대인을 멸하기 위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았는데, 이 날은 자기와 자기 가족이 죽을 날을 뽑은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셨습니다. 환란의 날이 찾아왔지만 변하여 전화위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우리의 길보다 다르십니다. 많은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부림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의 처지가 언젠가는 좋은 것으로 바뀐다는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부림절에는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위기가 변해서 기회가 되었습니다. 몰살당할 수밖에 없었던 위기를 만났는데 그것이 원수 갚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금식을 했습니다.(4:3) 왕후 에스더도 시녀와 더불어 삼일 동안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철저한 금식을 했습니다. 모르드개도 그렇게 했습니다. 여기에서 에스더의 이 금식은 이해하기 어려운 금식이고, 위험한 금식이고, 어리석은 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만의 음모를 막기 위해 왕 앞으로 나갈 때, 왕이 금규를 내밀게 하기 위해서는 왕에게 잘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금식을 했습니다. 왕이 미모에 반해서 금규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금규를 내밀도록 간구한 다음에 왕 앞으로 나간 것입니다. 에스더는 인간적인 계산, 인간적인 방법을 초월했습니다. 기도의 힘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 믿은 대로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려운 처지 가운데 있습니까? 마음에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까?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까? 유다 백성들과 같이 그 어려운 처지가 즐거움으로 변하고, 염려하던 소리가 환호성으로 변하는 부림절이 나에게도 있을 것을 소망하는 가운데 사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가 처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을 우리 인간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에스더와 유다인들이 금식하며 소망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놀라운 변화가 있었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금식하고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면 우리에게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의 부림절, 나의 부림절이 있을 것을 믿고 소망 가운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림절의 두 번째 교훈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에스더야말로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일하십니다”라는 하나님에 대한 메시지를 강하게 증거하고 있는 신앙적인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대적에게 큰 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자기들을 몰살시키려 한 사람들 칠만 오천 명을 죽였습니다. 이 승리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승리는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로 선택되게 한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유다 백성이 위기를 모면하고 원수를 갚게 하도록 한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하만의 힘과 계획을 무력화시키고 유다 백성이 승리를 거두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는 것을 알고 왕에게 알려 왕을 암살하려던 사람들은 처형당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모르드개에게는 아무런 포상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에스더가 왕 앞으로 나갔던 날, 왕이 잠이 오지 않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모르드개가 큰 공을 세웠을 때 아무런 포상이 주어지지 않게 한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시는 자에게는 승리의 축복을 내려 주신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기록된 성경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준비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여러분의 삶이 늘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림절의 세 번째 교훈은, 여자라도 믿음을 가지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림절의 중심인물은 에스더입니다. 모르드개도 큰 역할을 했지만 부림절의 중심인물은 아무래도 에스더라고 해야 합니다. 에스더의 히브리 이름은 하닷사입니다. 하닷사는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입니다. 에스더는 페르시아 이름으로 ‘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스더는 포로가 되어 이름까지 바꾸어야했던 비운의 여성이었습니다. 또 고아입니다. 부모가 죽어 친척인 모르드개의 손에 양육되었습니다. 그런 에스더가 어떻게 그렇게 큰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스더는 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왕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모보다 더 큰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미모도 청초한 아름다움이 되어 왕을 감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서 생명을 걸고 왕에게 나갈 수가 있었고 마침내 멸망의 위기에서 자기 민족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 성도 여러분! 그리고 나는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있는 모든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면 이 사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이 시대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림절은 구약의 절기만이 아닙니다. 유다 백성의 절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절기입니다. 우리의 처지가 언제인가는 좋은 것으로 바뀔 것을 소망하여 살 때, 드러내지 않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의지할 때,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약한 존재도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때, 부림절은 우리의 부림절이 됩니다. 8월 15일은 일본의 억압에서 해방된 지 6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시대가 어렵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두렵기까지 합니다. 북한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이 하는 짓을 보면 과연 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우리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서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시고 승리케 해 주실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늘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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