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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기 위하여 일어나 기도합시다(누가복음 22: 39-46)

승리하기 위하여 일어나 기도합시다

(누가복음 22: 39-46)

설교 : 문성욱 목사

우리 인간은 내일 일을 알 수 없습니다. 한 순간 앞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두려워하고 염려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고 했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능력이 있어도 우리 인간은 앞날을 알 수가 없습니다.

1960년대부터 소니라는 일본 전자회사는 전 세계의 전자 계통을 다 잡았습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오대양 육대주를 다 잡은 것이 소니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 활활 타오르던 이 기업이 2천년대에 와서 몰락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정책을 잘못 정했기 때문입니다. 21세기는 정보화시대가 이끌어가는 걸 모르고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수많은 기업, 수많은 정치인들이 자기 앞날을 위해 수천명의 전문가들을 동원하고, 수많은 돈을 들여서 연구했지만 아무도 앞날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앞날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알려주십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 내 적을 막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목전에 두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 문제를 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면을 쓴 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속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문제로부터 도피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문제를 알고 있었던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도 어렴풋이 다가올 시련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에게 중요한 어떤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바로 자기 자신들의 고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근심하고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과 불안과 슬픔의 순간에 저들은 오히려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구약에 보면 요나라는 선지자도 소명을 거절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을 때 그 밑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에라 잠이나 자자.” 일종의 도피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요나를 향한 구약의 외침은 무엇이었습니까? “자는 자여 어찜이뇨?” 슬픔에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음성은 무엇이었습니까?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라고 문제가 없겠습니까? 우리들의 삶의 정황과 무엇이 다릅니까? 지금은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은 곧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 있는 분이신데 왜 이 시간에 기도하셨을까요? 십자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꺾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동산에 올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가운데 눈에 보이지 않는 위대한 한 사역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도의 사역이셨습니다. 큰 기적을 베푸신 다음 예수님은 홀로 산에 올라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습니다.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고요한 미명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세 있는 자와 같을 수 있었던 비밀이었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이런 신비가, 이런 비밀이 나갈 수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임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유대인의 힘은 오직 기도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그 다음에는 회당 중심입니다. 이사를 가도 언제나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회당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기도하러 다닙니다. 예루살렘에 가보면 통곡의 벽 앞에 끊임없이 남자들이 와서 기도하고 갑니다. 유대인들은 24시간 기도합니다.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 천 년 기도의 줄을 놓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없이 살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 여러분도 이런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기도하게 하십니다. 기도가 먼저 가야, 하나님은 앞에 기도하는 것만큼 준비해서 따라 오십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향해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그 넓고 높은 하늘에서 한 점과도 같은 비행기를 향해 미사일이 쫒아 가듯이 하나님의 축복도 기도를 따라가서 기도하는 대로 복을 주십니다. 기도하지 않고 은혜를 받는 길은 없습니다. 링컨대통령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열에 하나도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항상 기도하고 백악관에 와서도 눈물로 항상 기도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기도는 내 몫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앞서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만큼 복을 주시고 기도하는 만큼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도하는 소극적인 이유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이지만, 가장 적극적인 뜻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기도했을까요?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은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종종 많은 장을 할애하며 “시온의 회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의아한 것은 하나님께서 시온을 회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으면 회복시키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7)라고 하십니다. 시온의 회복을 이루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중요한 한 정의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약속해 놓은 것을 이루는 성취의 방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시온이 회복되고 있지 않는 것입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가정 안에, 직장과 사업장과 교회 안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눅 22:44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땀이 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지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피곤하셔도 기도의 땀을 흘리셨습니다. 왜 입니까?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42절에,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십자가 지는 것이, 고난의 쓴잔을 마시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기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피곤을 이기고 땀방울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속에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자, 아버지의 소원이 있는 자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불타는 자는 육신의 피곤도 태워버리고 엎드려 기도합니다.

우리 가운데 육신적으로 피곤하여 지친 분이 계십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뛰어서 피곤하신 분, 밤을 새워 일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노고와 피곤을 주님은 다 아십니다.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처지와 형편을 다 아시고 지금도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피곤을 풀기 위해서 사우나나 마사지를 받으러 갑니다. 그러나 사우나에 갔다 와도, 마사지를 받아도 금방 피곤이 다가옵니다. 어떻게 해야 피곤이 풀려집니까? 주님은 피곤한 여러분에 말씀하십니다. 피곤하여 기도의 실패자가 되어버린 여러분에게 도전하십니다. “일어나 기도하라” 기도하는 것만이 피곤을 이기는 승리의 비결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십니다.(사 40:28-31)

기도는 약입니다. 천하에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기도같이 귀한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힘써 기도하십시다.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울부짖어 기도하십시다. 회개의 기도를 드리십시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기도에 응답하셔서 위기에서 환란에서 건져주십니다. 어떠한 적도 어떠한 어려움도 기도에는 물러섭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기도로 물리쳤습니다. 모세는 아말렉을 기도로 물리쳤고, 사무엘도 아무 능력이 없는 하나님의 종이었지만 기도할 때에 블레셋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면 모두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 인간이 한 가지 잘 했다고 모두 되는 게 아닙니다. 강을 건너면 또 강이 있고 산을 넘으면 또 산이 있고 산을 넘어서면 또 맹수가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면 강도, 산도, 맹수도 이기고 끝까지 잘 달려갈 수 있도록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주님이 지켜주십니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은 “기도하지 않고 성공했다면 성공한 것 때문에 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만 잘 된다고 모두 된 게 아닙니다. 정상에 올라갔다고 모두 된 게 아닙니다. 내려오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은 지뢰밭과 같기 때문에 마음 놓으면 안 됩니다. 모든 일에 끝까지 승리하고 잘되게 하는 길은 주님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리 확실하고 틀림이 없고 문제가 없다고 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금번 9월 특별새벽 집회를 통해서 예수님처럼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함으로 우리 모두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