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조물
(고린도후서 5:16-21)
설교 : 문성욱 목사
사향노루 한 마리가 코 끝에 밀려드는 진향 향기를 찾아 온 방을 뒤졌지만 향기 주머니는 없었습니다. 밖으로 나가 우아한 자태를 하고 있는 사슴에게서도, 캥거루 한 마리에서도, 향기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들을 지나고 산을 넘어 사막을 건너갔습니다. 어디에서도 향기 주머니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지구의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올라섰습니다. 그 언덕 아래에는 향기 주머니가 있을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내려가다가 발이 미끄러져서 구르고 말았습니다. 네 다리를 쭉 뻗고 등을 땅에 대고 벌렁 나자빠져있는데 저 하늘 어디에선가 진한 향기가 솔솔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하는 새에게 “새야 새야 하늘 끝 어디엔가 향기 주머니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디에 있는지 내게 좀 가르쳐 주겠니?” 하늘을 하는 새가 말했습니다. “그 향기는 당신의 코 끝에서 불어오고 있습니다.”
깨달으면 복이지만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불평불만합니다. 본문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외모로, 겉모양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시고 새 왕을 뽑으십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갔는데, 큰 아들 엘리압을 보고, 키도 키고 용모가 뛰어난 “이 아들이 왕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외모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않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는 그 중심을 보느니라.” 그래서 사무엘은 둘째 아비나답과 셋째 삼마를 비롯하여 일곱 아들을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중에서 누구도 택하지 않으시고 들에서 양을 치고 있던 말째 아들인 다윗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가 그니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키도 작은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셔서 다윗을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외모, 육체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속사람을 보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영적으로 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까지 육체로 알았습니다. 본문 16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육체로 알았음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골 목수와 처녀의 아들로 베들레헴에서 나셨고, 시골 나사렛에서 자라셨고, 공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상당한 지식을 가진 바울의 눈에는 예수가 별 볼 것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 믿은 사람을 잡으러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에서 빛이 비치고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그는 영안이 열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섬기게 된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도 영안이 어두워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리면 영화로운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영안이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녀도 영안이 어두우면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영안이 열려야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안이 열려야 성도를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우리 교회가 장로님이나 안수집사님, 권사님을 세울 때도 육체로 보지 말고 영으로 보아야 합니다. 정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지, 맑고 겸손한 사람인지,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인지를 보고 택해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님도 영으로 알아야 되지만, 우리 인간관계도 영으로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을 영으로 보면 간단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이 있고,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거듭나면 코흘리개 아이라도, 가난한 할머니라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도 그 안에 성령님께서 계시니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은 우리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쳐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엡1:13)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 누구도 천하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낳으셔서 하나님의 아들, 딸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존귀합니다. 머슴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존귀한 하나님의 아들이고, 대통령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초라한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육체로만 보지 말고 영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안으로 보지 않으면 목사도 보통 사람이지만 영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교회를 이끌어가게 하시고, 목사님을 통해 말씀하시고, 목사님을 통해 내 길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구나.”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목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 직책 때문에 하나님께서 목사에게 영안을 열어 주시고 예언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양은 100m 앞을 못 보아도 목자는 수십 리 앞을 보듯이, 교인들이 못 보는 것을 목사는 보는 것입니다. 양떼를 잘 인도하라고 하나님께서 목자는 멀리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멀리 보고, 크게 보고, 사방을 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아내, 내 남편을 육체로 보면, 오다가다 만나 사랑하게 되어 결혼했으니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아닙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6) 내 아내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또 하나님의 딸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내게 예수님처럼 섬기라고 붙여 주신 내 남편입니다. 그러니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을 잘 섬겨야 합니다.
자식도 육체로 보면, 내 배우자와 사랑해서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기업이요 내게 주신 상급입니다(시127:3) 아이를 잘 길러 놓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자신도 대접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그러니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애쓰고 손들어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님도 육의 눈으로 보면, 부담스럽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보면 부모님은 우리 집의 복의 근원입니다. 내가 복을 받고 못 받고는 부모님을 어떻게 섬기는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기쁘게 해드리면 내 집에 복이 강줄기처럼 오고, 내가 부모님을 업신여기고 귀찮아하면 복을 귀찮게 여기고 내보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장생활도 영으로 생각하면 우연이 아닙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가서 일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보디발은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지만, 그 집에서도 요셉이 최선을 다해 일하니 그 가정의 총무가 되었고, 보디발이 요셉을 보고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머슴살이를 할 때, 라반은 야곱을 보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라반이 야곱을 보며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회사에서 일하면 나 때문에 그 회사가 잘 되고 복을 받아야 합니다. 회사 사장님이 나를 보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이 경영주라면 아브라함이 무엇을 해도 잘 되는 것처럼 회사가 잘 되어서 사원들이 경영주인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내가 어느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있습니다. 내가 회사 사장이 되어도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있는 것이고, 병원장이 되어도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있는 것이고, 간호사로 일해도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일하는 곳에 우리가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새 피조물이 된 것이 정말 신비롭습니다. 본래 사람은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굉장합니다. 예전에는 나귀와 소, 말을 타고 또 코끼리를 훈련시켜서 다녔고, 또 썰매를 만들어서 개가 끌도록 하였고, 자전거를 만들고 오토바이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선을 만들어 달나라까지 갑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이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정말 신비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죄인에서 의인이 되고, 마귀의 자녀에서 놓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히 지옥에 갈 자가 영원히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최고의 성공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성공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최악의 실패자에 불과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알지 않습니까? 나사로는 거지이지만 하나님을 믿으니 최고의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부자는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았지만 죽으니 비참한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내로라하는 사람이 많지만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새 피조물이 된 사람이 참 성공자입니다.
이렇게 새 피조물이 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직책을 주셨습니다. 그 직책은 바로 ‘화목하게 하는 직책’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심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셔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18,19절) 우리가 회개해서 죄 사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예수님을 알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시어 예수님을 희생 제물이 되게 하셔서 우리는 믿기만 하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화목하게 되었다면 우리에게 주신 화목의 직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화목의 직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사람을 대할 때 육으로 대하지 말고 영으로 대해야 합니다. 말 하나 할 때에도 주님을 대하듯이 하며, 오늘의 모습만 보지 말고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주님을 대하듯이 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육으로만 보면 우리의 삶에 화목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보고 말하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서 화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남편을 보든, 아내를 보든 부모님과 자녀를 보든지 간에 영으로 보고, 항상 주님의 마음으로 대함으로 여러분에게 맡겨 주신 화목의 직책을 잘 감당하여 칭찬 받고 천국을 이루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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