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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 인생도 단물 인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출애굽기 15:22-27)

쓴물 인생도 단물 인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5:22-27)
설교 : 문성욱 목사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잘못해서 그늘에서 잠자고 있던 호랑이의 꼬리를 잡아 당겼습니다. 깜짝 놀란 호랑이는 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호랑이가 나무를 흔들어 호랑이 등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힘껏 호랑이 등을 끌어안았는데 호랑이가 이 나무꾼을 떨어뜨리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떨어지지 않자 이 사람을 등에 얹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농무가 무더운 여름 밭에서 일하다가 이 광경을 보고 ‘나는 평생 땀흘려 일해도 사는 게 이 꼴인데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서 호랑이 등만 타고 다니니 어디 살겠는가?’라며 탄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호랑이 등을 붙들고 있는 나무꾼이 농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만 고통당한다고 생각하지만 내용인즉 모든 사람들이 다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누구든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에는 애굽의 400년 종살이를 청산하고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벅찬 감격 속에 있었습니다. 특별히 홍해바다를 건널 때의 감동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 감격 속에 홍해바다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향해 행진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후 3일 동안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메마른 광야에서 마실 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 쬐이는 직사광선은 그들의 숨을 헉헉거리고, 목마른 사슴처럼 타는 갈증으로 몸부림치게 하였습니다. 3일 전의 홍해가 갈라지던 기적의 감격은 어디론가 사라져 보리고 먼저 원망이 솟아올랐습니다. 바로 그때 물을 발견했습니다. 백성들은 허겁지겁 달려가서 물을 마셨는데, 그 물은 독물처럼 써서 마실 수 없는 염분이 많은 오아시스 물이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물이 너무 쓰다’ 하여 마라, 쓴 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모세를 향한 백성들의 원망소리가 더 빗발치게 되었습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합니다. “주여 물을 주옵소서. 애타게 목말라 있는 이 백성들을 구원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나무 가지를 꺾어 물에 던지니 그 쓴물이 꿀맛처럼 달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새로운 힘을 얻고 엘림이라는 오아시스에 도착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먼저 우리는 우리의 삶에 마라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지순례를 가보면 의도적으로 광야를 걸어보게 합니다. 파라솔을 쓰고 10-20분만 걸어도 얼마나 덥고 목이 마른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물을 구하지 못해 3일 동안이나 광야를 헤맸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땠겠습니까? 아마도 죽기 일보직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오아시스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것이 쓴 물이었으니 얼마나 미칠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살이도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래로 온통 쓴물 나는 마라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어디를 가도 쓴물만이 넘치는 마라의 연속입니다. 좋은 직장에도 마라가 있고, 저 사람 만나도 똑같이 똑같이 마라가 있습니다. 좋은 집에 살고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아도 마라가 있습니다. 거기에도 고통의 마라, 불행의 쓴 마라가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이 세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도 쓴 연못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죄책감의 쓴 연못, 미움의 쓴 연못, 원망의 쓴 연못, 걱정, 근심의 쓴 연못, 두려움의 쓴 연못, 실패의 쓴 연못, 상처와 아픔의 쓴 연못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도 우리의 심령 안에는 얼마나 쓴 연못의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의 마음은 쓴물주머니와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기만 하면 나오는 것이 쓴물밖에 없습니다. 그 쓴 연못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디쓴 인생을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2)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동네에 엿장수가 가끔 왔습니다. 엿장수의 “짤그락 짤그락” 가위소리가 요란하게 나면 동네 사람들은 고무신짝 떨어진 것, 빈 소주병, 찌그러진 양재기, 못쓰게 된 괭이나 삽, 철사뭉치, 심지어는 다 떨어진 옷이나 어머니와 누나들의 머리카락 자른 것까지 다 가지고 나오면 엿으로 바꾸어 줍니다. 그때는 엿 맛도 꿀맛이었지만 아무데도 못 쓰는 고물이나 폐품을 가져다주면 달콤한 엿으로 바꾸어주는 엿장수 아저씨가 얼마나 신기한 존재로 보였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쓸모없는 우리의 마라의 쓴물을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어떤 마라든지 그걸 받으시고 달콤한 엿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그런 폐품과 고물 같은 마라의 쓴물을 예물처럼 기쁘게 받으시고 달콤한 엿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모든 불행과 저주의 마라를 받으시고 행복의 엿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이렇게 바꾸어 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 마라의 쓴 고통과 마라에서 나오는 온갖 폐품, 고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만 쓴 것을 단 것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마라의 쓴물을 달콤한 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에게서 자기의 몫을 받아 흥청망청 다 써버린 둘째 아들이 거지가 되어 돌아올 때, 냄새나고 더럽기 짝이 없는 아들을 안고, 입 맞추고, 그의 옷을 벗기고 아버지의 좋은 옷을 입히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동네에 잔치를 벌였던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오면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간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모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 하지만 마지막에는 풍족한 축복을 주시고 평강케 하시고 생각지 못하는 새로운 역사를 체험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는 마라의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우리 삶의 한 복판에 있는 마라,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마라, 이것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여 인생의 마라를 가지고 왔습니다. 마라에서 나온 폐품과 고철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제는 제 인생이 단물나게 하소서. 이 폐품들을 받으시고 행복의 엿가락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드디어 마라를 바꾸어 주십니다.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고 자유한 자로 살게 축복해 주십니다.


3) 때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의도적으로 마라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 사랑하시는 자를 마라로 인도하십니까? 쓴 것을 알아야 단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마라의 쓴맛을 많이 마셔본 사람일수록 예수님의 십자가 밑으로 나갑니다. 십자가 밑으로 나가 그 밑에 있는 생명 샘에서 주님이 주시는 달콤한 생수를 마시면 더 주님 품으로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시험하시고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신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그 훈련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잘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거기서 애굽에서 얻은 모든 질병을 치료해 주시고 마라의 모든 고통을 바꾸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마라로 인도하십니다. 그 고통 속에서 먼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질병, 재난, 그 모든 재앙을 떠나게 하십니다. 마침내 그 마라의 모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지고 귀로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하나님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런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하고나서 하나님은 우리를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로 인도하십니다.
이 엘림이란 곳은 샘이 열두 개나 되고 종려나무가 70주나 서 있는 대(大)오아시스 지역이었습니다. 200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하게 연장을 풀고 쉴 수 있는 사막의 안식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를 거쳐서 엘림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라를 이기고 극복해야 엘림의 축복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마라를 경험해야 마라보다 더 큰 엘림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마라의 쓰디쓴 연못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혼자서 눈물 흘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 쓴물을 단물 되게 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엘림으로 가는 길도 있습니다.
그것은 엿장수 같으신 하나님께 모든 마라의 쓴 고통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바뀝니다. 그리고 거기서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하는 훈련을 마칠 때 애굽의 모든 고통과 재난은 떠나고 엘림으로 가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오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고 우리의 쓴물도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