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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2:17-29

로마서 2:17-29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예수님께서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어떠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유대인으로 불리는 사람들과 율법 그리고 할례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합니다.

겉사람의 모습(17-21절)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유대인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입니다. 그렇기에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으로 불리는 네가”라고 하며 유대인들이 치중하고 있는 몇 가지들을 열거합니다. 17절에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의지한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모든 율법을 613개로 나누었습니다. 그중 248개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고, 365개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금하신 것으로 분류해서 그 율법들을 철저하게 지키고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는 매사에 하나님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18-20)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이들은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선한 것과 악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맹인의 길을 인도하고,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며,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말한 유대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존경 받을 만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름으로 불린다는 다는 것은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만약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 가정에서 남편의 의무와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람은 겉모습만 아버지이고, 진정한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어 유대인이라 불리는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속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줍니다.

속사람의 모습(22-24절)

(21-22)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바울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않느냐” 라고 질문을 합니다. 여기서 “네 자신”이란 ‘속사람’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은 앞서 열거한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2-3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3:2-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예수님과 바울이 지적한 부분은 유대인들이라 하는 사람들이 남은 가르치지만 자신은 율법대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분명 겉으로는 율법을 행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속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이들의 모습을 고발합니다.

(23-24)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바울은 율법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52장5절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에게 모독을 받는다고 강하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을 때는 그 사람들에게만 비방이 가야 하는데, 결론적으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모독을 받으십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의 모습이 올바르지 않을 때, 교역자,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을 때 그들만 비방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모독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율법에 이어 할례를 언급하며 더 깊은 속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마음의 할례(25-29절)

(25-27)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바울은 할례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도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습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겠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주의자들은 자기 몸에 할례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례는 받았으나 할례 받은 모습으로 살아가지는 않은 것입니다.

남녀사이로 비유하자면 서로 사랑하여 하나님 앞에서 결혼 예식을 하고, 결혼에 대한 증표로 서약과 반지를 착용합니다. 그런데 반지는 착용하고 다니지만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과 음행을 행하고, 서로를 올바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반지는 껍데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할례가 무할례가 됩니다. 오히려 반대로 무할례자가 율법을 지키면 할례와 같이 여겨집니다. 갈라디아서 6장15절에서 할례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습이 아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와 같이 증거합니다.

(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표면적인 육체에 할례가 있다고 해서 구원받은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신명기 10장16절에서는 모세가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7장51절에서 스데반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음의 할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을 보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체의 표식이 있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에 할례를 받고, 할례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율법학자들은 겉모습으로는 칭찬 받을 것이 많은 종교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사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회칠한 무덤과 같이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이 종교 행위가 될 때 이러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도로 불리는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인이라 불리는 사람처럼 겉사람의 모습은 훌륭한 종교인이지만 속사람은 외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불러주신 사람의 모습은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속의 모습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겉으로는 거룩해 보이나 속에는 죄악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를 찾아와 주신 주님을 기억하고, 그리고 우리의 외적인 모습이 아닌 추악하고 연약한 우리의 내면이 주님으로 인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의 모습을 더욱 가꾸며 세상 속에서 성도로서의 삶을 온전히 감당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 도
하나님, 우리는 자녀로 삶아주시고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로서의 삶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연약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의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을 더욱 가꾸며 주님 앞에 온전히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매일을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나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유대인들의 겉사람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17-20절)
유대인들의 속사람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21-24절)
육체적 할례가 아닌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묵상해 봅시다.
우리의 속사람을 가꾸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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