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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3:1-18

로마서 3:1-18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 대한 인사말로 시작합니다. 이후 본론의 첫째 내용으로 경건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할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심판을 받을 사람들은 장차 있을 심판을 면하기 위하여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득의(以信得義)를 말하기 전에, 타락한 인간은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1-4절)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사도 바울은 앞 장에서, 유대인이 할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그 할례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은 유대인 할례자는 이방인 무할례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유대인이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면 할례가 유익이 없고 유대인의 이점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을 어기지 않는다면 할례받은 유대인의 장점이 많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사도 바울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의 유익한 점을 전부 다 말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2절의 ‘우선’이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을 맡겼다는 것을 신탁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신탁을 위임받은 특별한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듣고 읽고 성경을 들고 다녀도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유대인과 다를 바 없는 기독교인이 되고 맙니다. 특권의식에 빠진 기독교인들로 인해 오늘날 기독교인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좋은 뜻이 아닌 나쁜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기독교인이라는 말을 회복하는데 힘써야 할 때입니다.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어떤 자들이란 유대인들 중 일부를 뜻합니다. 이들이 비록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일부 유대인들로 인해 자신의 약속을 폐하지 않으십니다. ‘미쁘심’은 ‘믿을만함’, ‘신실성’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3절에서 이 질문을 던진 후 그 답을 4절에서 말합니다.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럴 수 없느니라’는 결코 하나님께서 약속을 폐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사람이 버림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그들과 상관없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입니다. 구원의 약속이 변하지 않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시편 51편 4절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우십니다. 인간은 거짓되지만 하나님은 참되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사람은 약속을 깨트리기도 합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일이 틀어지면 약속을 깨고 변질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참되시기에 결코 약속을 어기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은 미쁘시다고 말하며 하나님은 신실하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불의하시냐(5-8절)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라는 질문은 사도 바울이 원하는 질문이 아니라 괄호로 설명을 달았듯이 유대인이 말하는 궤변입니다. 유대인이 불의한 행동을 하였고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어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드러나게 된다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낸 사람에게 진노하시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라는 궤변입니다. 이 질문에 답으로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그리고 6절에서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라고 반문합니다. 사람이 불의를 행할수록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더 잘 드러납니다. 그것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불의를 그냥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를 내리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않으심을 보여주시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불의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음을 깨달을 때,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로우실 것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유대인이 제시하는 둘째 궤변을 바울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5절과 같은 궤변입니다. 이것이 궤변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나의 거짓말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어느 누가 하나님의 참되심을 알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면 논란의 여지가 없겠지만, 하나님의 참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였다면 그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누군가 도둑질해서 하나님께 헌금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고 말하거나 누군가 거짓말로 사람을 속여 사람을 전도하였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인정할 수 없듯이 거짓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거짓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불의한 사람이기에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유대인의 궤변이 만약에 참이라면 이것보다 더 나쁜 궤변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8절 상반절입니다.

8上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거짓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궤변이 옳다면, 선을 위해 악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궤변론자들의 궤변은 악을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악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할 것임을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살전5:22). 궤변론자들은 이런 궤변들을 늘어놓으면서도 오히려 사도 바울 일행에게 그들이 이 말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궤변이 거짓말을 뜻하므로 궤변론자는 거짓말쟁이입니다. 8절 하반절입니다.

8下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 바울 일행을 비난하며 공격하는 궤변론자들이 오히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사도 바울이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바울은 더이상 그들을 상대할 가치조차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거짓말에 대한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공정한 심판을 내리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궤변론자들이 사도 바울의 말대로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기까지 보면 우리는 먼 옛날 불의한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이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으냐(9-18절)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를 가리키겠습니까? 일차적으로는 바울 일행을 생각할 수 있지만, 로마서의 수신자인 로마교회 그리스도인을 포함할 수 있고, 나아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 불의한 유대인들보다 더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답변은 ‘아니다’입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낫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인간은 모두 다 죄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 아래 있기에 죄를 능히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만나 죄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 영원한 멸망에 처하고 맙니다. 10절부터 18절까지는 사도 바울이 구약 성경의 구절들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시편 14편 1절을 인용한 말씀인데 전적 타락한 인간의 실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 세상에 의인이 하나도 없음을 말하였겠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었거나 얻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함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 언급하듯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직 의인이 될 수 있으며 예수님으로 인해 의인이 된 사람만이 멸망을 받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의롭게 되지 않는 사람들, 즉 전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의 실상을 11절부터 열거하고 있습니다.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지도 못하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 주실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을 깨닫지도 찾지도 않는 사람은 전적 타락한 인간이기에 마치 우유가 상하여 마실 수 없어 아무 쓸데 없는 것과 같고, 또한 그렇기에 선을 행할 수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선을 전혀 행할 수 없는 인간이 입으로 범하는 죄악을 다음 구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목구멍이 열린 무덤이라는 것은 배 안에서 시체 썩은 악취가 나오듯이 역겹고, 혀로는 속임이 있고, 독사의 독처럼 사람을 죽이고,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말로서 범하는 죄악을 표현한 것입니다. 15절부터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범하는 죄악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인류 역사 이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일들이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의 피를 흘리는데 행동을 빨리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평강이 있을 수 없으며 파멸과 고생이 따를 뿐입니다.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말로 범죄하고 행동으로 범죄하는 것은 인격도 없고 양심도 없고 윤리와 도덕이 무너졌기 때문인데, 이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가 바로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구원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을 의롭게 하실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인자하심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무명남 또는 무명녀 또는 잃어버린 자처럼 죽었을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주님께서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타락한 나를 찾아와 주신 주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과 함께 주님의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내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할례로 특권의식을 누리던 유대인들처럼 기독교인이 특권인 줄 알며 살았던 지난날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읽고 예배 출석을 잘하는 것이 자신을 의롭게 만드는 줄 착각하며 살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를 볼 때 무자비하고 불의하다고 생각했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며 제멋대로 살았던 저희를 위해 보혈을 흘려주시고, 무명남 또는 무명녀로 살아갔던 저희를 찾아오셔서 이름을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총을 생각하며 혀로 속임을 일삼지 않고 발은 파멸과 고생의 길로 가지 않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유대인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점은 무엇입니까? 유대인의 장점이 무효가 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2. 사도 바울이 지적한 유대인의 궤변은 무엇입니까?
3. 사도 바울이 유대인보다 더 나은 점이 없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불의한 자의 언행의 실상은 무엇입니까?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1,18절)
5. 불의한 자의 언행의 실상을 볼 때 하나님을 힘으로 삼는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은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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