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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4:1-12

로마서 4:1-12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의 중요한 원리를 설명하는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3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어떤 사람도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는 상태임을 율법을 통해 논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롭다함을 얻는 다른 길을 내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였습니다(롬3:21-22). 이 말씀에 대해서 3장 21-22절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의로운 행위로 의로운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든지, 어쨌든 의로워야 한다는 것을 전재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 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로마서는 율법 외에 다른 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율법 외에 다른 의인 복음이 있다는 것을, 성경의 역사적 사실을 증거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이론으로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으매 의로 여겨짐 (1-3)

(1-3)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의 역사적 사실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아브라함은 역사적인 조상으로 인식되지만(행7:2), 우리에게 아브라함은 성경 속의 한 인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인,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였던 메소파타미아의 남쪽에 있는 우르 사람이었습니다.

수메르 문명은 기원전 3300년부터 2600년경으로 시기에 따라 3기로 구분되는데, 아브라함은 그 후대로 추정됩니다. 그 근거로 아브람 혹은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이 당시 기원전 20-19세기의 상형문자와 이집트의 문서에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의 아브라함 기사가 고고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메소포타미아의 문화적 역사적 상황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도시들마다 각각의 신을 섬겼는데, 한 도시에서도 필요에 따라 다양한 신을 섬겼습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우르와 하란은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도시로, 달의 신인 아마르_신(Amar_sin)을 주로 섬겼고 물과 관련된 신인 엔키(Enk)i와 압수(Apsu)를 섬겼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이러한 이교도의 신을 섬기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여호수아서 24장 2절은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 겼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문명이 번성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메소포타미아의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부름받기 이전의 아브라함의 자질이나 행위나 인격에 대해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홍수 가운데 유일하게 구원받은 노아에 대해서는 당대의 의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그런 언급이 없습니다(창3:6). 더욱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할 때는, 이미 그를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온 그 이후의 시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심은,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첫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데, 아브라함이 이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의 기초가 됨을 의미합니다(출6:9).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의 본질을 밝혀서, 복음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를 때, 메소포타미아의 이교도의 도시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은혜적 관계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행위를 보고 부르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행위로 인해 의롭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아브라함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를 의롭다 하실 때도 그의 행위로 인해 의롭다고 하지 않으셨으며,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행위에 근거해 관계를 맺지 않고, 은혜의 관계 속으로 부르십니다. 즉,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을 때 부름을 받아,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 뿐만아니라, 세상에 있는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셨고, 믿게 하셨고 그 믿음을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이론이나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렀듯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 믿음을 의롭다고 하시는 경험적 사실입니다.

계속해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의미에 대해 사도 바울은 더 자세하게 설명을 이어 갑니다.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4-8)

(4-8)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이제 비유를 들어서, 일과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일을 한 사람은 그에 대한 보수를 기대하게 됩니다. 1시간 일을 하면 1시간치 보수를 받고, 2시간 일을 하면 2시간치 보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을 하고 그 삯을 받는 사람에게는 그 삯은 보수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고도 삯을 받는다면, 그 삯은 그 사람에게 은혜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구원은 일을 하고 받는 보수가 아니라, 일을 하지 않고 받는 은혜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의지해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 대가관계가 됩니다. 이런 관계를 맺는 사람은 자신이 의로운 행위를 한 만큼,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 일어나면 자신이 의롭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반대로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자신이 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행위를 의지하는 사람이 빠지는 문제는,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그럴 경우에 신앙적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공정하게 보상을 해주시는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 복음적이지 않은 순환입니다. 이것은 율법적인 순환입니다.

반대의 경우입니다. 일을 하지 아니하고 삯을 얻는 사람입니다.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받는 삯은 은혜입니다. 이처럼 행위가 아닌 믿음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과 은혜적 관계가 됩니다. 이런 사람은 좋은 일이 일어나든 나쁜 일이 일어나든 자신의 행위와 관련 짓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은혜로 여깁니다. 반대로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도, 크게 낙심하지 않고 은혜를 구합니다. 믿음을 의지하는 사람이 누리는 복은, 자신의 행위와 처한 상황과 환경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에 자신의 정체성을 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순환입니다.

이처럼 의로운 행위를 하지 않고도, 의롭다고 여김 받는 복음에 대해 다윗도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32편 1절-2절에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의로운 행위를 하지 않고도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이 해야 할 의로운 행위를 대신 하셨기 때문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공짜로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피로 값을 치르셨기에 받는 보수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은혜적 관계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조건 없이 부르셔서 그가 믿을 때 의롭다고 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든 사람은 자격이 없을 때 부름을 받아 믿을 때 의로다고 여김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어떤 조건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믿을 때 의롭다고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시작합니다.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 (9~12)

(11~12)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이제 다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것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롭다 할 만한 행위로 인해 그를 부르신 것이 아니며, 다만 그를 부르셔서 믿을 때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로운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의로운 행위를 할때 의롭다고 하지 않으시고, 믿을 때 의롭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고, 그 의로운 행위로 인해 하나님께 선택되었다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하셨고, 그래서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혈통적인 후손인 이스라엘이 참된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율법을 따라 의로운 행위를 해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아브라함 처럼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시기 위해, 의롭다 할만한 행위가 없는 아브라함을 불러, 의로운 행위를 할 때가 아닌 믿을 때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정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를 보고 의롭다고 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십니다.

믿음에 대해서 정의해보면, 행위는 자기를 의지하는 것이지만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 없음을 고백하고, 그런 자신을 대신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대속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일한 것 없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상식으로는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 이해되지 않지만, 그러나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일한 것 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들입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가 주는 참 자유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우리를 찾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모든 댓가를 다 치르시고 우리를 찾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도 아니고, 의로운 행위를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를 찾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까지 순종하신 것으로 인한 것입니다.

오늘도 ‘일한 것 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자의 복’을 누리시는 하루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아무것도 행한 것이 없는 중에 불러 믿을 때 의롭다고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를 행할 수도 없는 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은혜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때로는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 자처럼 자랑하고 낙담하고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다시 복음의 빛으로 일하지 않고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의 복을 회복하도록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은 어떤 상태였는지 생각해보고, 내가 어떠한 상태에서 믿게 되었는지 묵상해 봅시다.

2.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믿을 때 의롭다고 하셨는지 생각해보고 그것이 우리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3. 일한 삯을 보수로 여기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하나님과 대가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의 율법적인 순환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또한 반대로 은혜적 관계에 있는 사람의 복음적 순환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4. 일하지 않는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우리는 그 일하지 않고 의롭다 함을 받는 사람의 복을 누리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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