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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4장 13-25절

로마서 4장 13-25절
찬송가 303장 ‘날 위하여 십자가의’

아브라함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함께 떠오르십니까? ‘믿음의 조상’, ‘100세에 득남’, ‘이삭을 드림’ 등 등 화려한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닙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라함은 자신들의 뿌리이자 하나님께 할례라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표식을 받은 위대한 조상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에 대단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아브라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9-40절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아버지라 부르고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했지만 실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았는지도 오해하고 착각하고 있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한 때 그 무리들 가운데 속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율법적 행위에서 의로움을 찾으려했던 바울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의’를 발견하고 이제 그 의를 자신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변증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함께 살펴보시며 우리가 붙들고 있는 ‘의’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약은 믿음으로(13-17절)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또한 땅과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복은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킴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그때에는 모세를 통한 율법이 주어지기도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 언약을 받게 된 것입니까?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아 그 언약을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아브라함이 아직 율법을 주시기 전에 율법의 행위를 이미 하면서 살아가고 있던 것이 아니냐?” 라고 되물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이 한 의로운 행위도 기록하고 있지만 그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사라를 아내라고 공개하지 않았던 일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도 우리와 같은 연약한 죄인이었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14-15)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만약 하나님의 언약을 받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믿음이 아닌 율법의 행위라면 믿음과 약속은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명하는 바 그 요구를 완전히 이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범법을 가져오게 되고 그 범법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법대로 하면 복은커녕 하나님의 심판 앞에 살아남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16-17)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고 그 상속자 곧 자녀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곧 ‘값없이 베푸시는 선물’로만 가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모든 내면에 죄의 뿌리와 줄기와 열매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기에 의롭게 되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주어야만 하는 선물이고 은혜이어야만 합니다. 마치 달이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어 태양의 빛을 받아 빛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의의 선물은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주시는 것이며 그로인해 아브라함은 유대인만의 조상이 아니라 모든 믿음의 길을 따르는 자손들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17-38절)
그렇다면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믿음이란 그저 주시는 선물을 ‘염치없고 부끄럽고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분의 강청하시는 사랑에 의해 감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그 자녀로 불러주시길 기뻐하신 다는 것, 의롭지 못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십자가에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온 몸으로 받아내셨다는 것,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이루신 완벽한 의로움을 예수님 안에 머무는 모든 자에게 주셔서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신 다는 이 놀라운 종합선물세트를 그저 감사함으로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헐벗고 굶주려 그저 동전 하나 바라며 구걸하는 아이에게 지나가던 한 사람이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고 집에 데려와 씻기고 돌보며 가르쳐 자신의 기업을 이을 자녀로 삼아주는 것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한 사람의 은혜입니다. 그 아이가 한 것이라곤 그 사람의 사랑과 선물과 부르심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인 것 밖에는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고 주신 은혜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8-21)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셨습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어 이삭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소중한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부활의 신앙가운데 죽여도 다시 살리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자녀를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 믿음까지 가는 중에 흔들리며 넘어진 적도 많았습니다. 사라와의 사이에 자녀가 생기지 않아 여종 하갈을 첩으로 삼아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고 자신의 몸종엘리에셀을 자신의 기업 이을 자라고 생각하며 현실과 타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며 그 자녀의 수가 이와 같이 많을 것이라 격려하셨고 또한 횃불언약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지킬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선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을 선물로 받아들인 아브라함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22절을 보시겠습니다.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였습니다. 또한 가나안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던 아브라함은 그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선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 약속을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불러주시는 것은 다만 아브라함에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23-25)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아브라함이 아직 낳지도 않은 아들을 통해 수많은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을 믿은 것처럼 우리는 두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어주신 사랑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낳은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그 아들을 다시 살리실 부활의 하나님을 믿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죽음 앞에서 다시 사신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 또한 그 부활에 동참하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감사하며 받아들인 우리를 의롭다 불러주십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았기에, 율법을 지켰기에,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의 삶은 불확실했고 문제가 있었고 약속이 성취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자신의 삶의 바다위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비추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질 것을 신뢰하는 그 모습을 통해 의롭다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삶도 아브라함처럼 불확실과 여러 가지 삶의 문제로 가득하며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 언제 이루어질지 알지 못하나 이 모든 괴로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주께 받은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하며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의롭다고 불러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당장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보다 더 선명한 주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내 삶에 찾아오는 여러 어려움과 불확실함의 두려움을 이겨내며 나아가십시다. 그런 우리가 바로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두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이 세상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임을 믿습니다. 보지 못했지만 우릴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사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음을 믿습니다. 또한 그 아들을 다시 살리셔서 부활의 주로 삼아 주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 땅에 보내사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이끌어주실 것임도 믿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는 그저 아버지께서 주시는 약속을 선물로 감사하며 받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도리어 우리의 의로 여기사 옳다고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죄인을 의롭다 불러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날마다 더욱 깊이 알아가고 신뢰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창세기 15장 말씀을 읽으며 믿음이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묵상해봅시다.
2. 아브라함이 백세에 아들을 낳기 전까지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데 방해가 되었던 장애물 들은 무엇이었을지 묵상해봅시다.
3.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보실 때 그 마음이 어떠하실지 생각해보며 최근 내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불신했던 것들은 없었는지 돌아봅시다.
4.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자를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이유가 무엇일지 묵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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