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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5:1-11

로마서 5:1-11
찬송가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1-5)

로마서를 처음 마주했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주전 753년 왕정으로 시작해 공화정과 제정으로 정치 체제를 바꿔사며 넓은 영토를 통치했습니다. 지중해 연안 전체를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던 로마의 통치 전략에는 정교한 법이 있었습니다. 로마 법에 의해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서 황제에게 상소할 수 있었으며 법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는 법률 용어와 법정 분위기가 자연스레 연출 되고 있습니다.

로마서 1-4장까지는 마치 법정에 와있는 것처럼 다소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율법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아브라함을 증인으로 불러내어서 유대인들이 왜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 받지 못하는지 변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재판장이 되어서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유무죄를 가리고 형벌을 선고하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일반적인 재판에서 판결이 확정 된 후 형을 집행하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이미 죄의 판결을 받았을 뿐 아니라 사형이라는 법정 최고형을 집행 받았음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채 저마다의 근거에 기초하여 불가능한 항소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사람의 영적 상태를 가리켜 에베소서 2장 5절은 ‘허물로 죽은’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로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이라고 표현하지만 성경은 완료 시제를 사용하여 단호하게 죄 아래 모든 인간은 죽은 상태였다고 선포합니다.

죄로 인해 죽은 우리는 항소할 수도 어떠한 소망을 기대할 수도 없는 전적 무능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치러야할 죄의 댓가를 대신 치르셨으며, 하나님은 누구든지 이와같은 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믿기만하면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의롭다 여김 받은 성도가 여전히 죄의 유혹 가운데 연약한 인생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며 구원 받았음을 확신하고 영원한 소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은혜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는 것은 이전까지는 하나님과 적대적인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10절의 표현처럼 아담의 범죄 이후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크고 작은 실수를 하였을 때 그것들로 자녀와 원수가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교우님들의 자녀가 “나는 당신 같은 부모님은 이제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거나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아들이, 딸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면 단순히 실언한 것으로 대충 넘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담은 범죄하기 이전에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에 충성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어야했고 이전처럼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제할 수 없었습니다. 약속은 일방적으로 파기 되었고 아담은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었던 에덴에서 추방 당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약속은 회복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아담 이상의 권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갈4:6). 따라서 모든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은혜를 입게 되었고 소망을 바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5)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2절에서 ‘들어감’이라고 번역 된 헬라어는 사람에게 적용 될 때에는 A가 B에게 C를 소개해주어 친분을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의미이며, 사물에게 적용 될 때에는 배가 항구에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암초와 같은 죄의 유혹에 부딪혀 파선하지 않고 은혜의 항구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절과 3절에서 은혜에 들어감을 얻은 성도의 중심 감정이 ‘즐거움’인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성도의 즐거움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성도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어떤 외부의 힘과 환경의 변화로도 성도가 가진 기쁨의 근원을 흔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으로 우리는 잠깐 낙심할 수 있지만 이내 영원한 기쁨 안에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기쁨 보다는 우울감과 근심이 우리의 마음을 주도하고 있다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우리의 소유에 마음이 빼앗긴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고 우리의 마음을 오롯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며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과 영원한 소망을 묵상함으로 기쁨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환난을 믿음으로 대응할 때 특별한 연쇄 작용을 일으킵니다. 첫째로 환난을 만난 성도는 인내를 이루게 됩니다. 성도의 인내는 단순히 힘든 상황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약속에 근거한 소망을 견고히 붙드는 것입니다. 성도는 환난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의지하고 목적 삼았던 것들이 녹아 없어지는 것을 보며 잠시 힘들어하지만, 이내 환난도 녹여내지 못하는 변함없는 소망이 있음을 발견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인내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 숨은 우상들을 구별하고 주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환난 중에도 주님 안에 있는 소망을 붙드는 과정을 통과한 인생은 단단해 집니다.

연단이라고 번역 된 헬라어는 사물에 사용 되면 품질 보증을 받은 것을 의미하며 사람에게 사용 되면 훌륭한 인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어 번역은 연단을 ‘성품’이나 ‘인격’을 의미하는 단어(Character)로 번역하였는데요 NASB는 ‘증명 된 성품’(proven character)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격은 하루 아침에 형성 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도의 성품은 믿음으로 인내한 시간들이 빚어냅니다. 모세는 그의 다혈질적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 가운데 연단 되어 마침내 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민12:3). 성도의 성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인내하는 시간만큼 빚어집니다. 교회에 오랫동안 다녔다고 해도 믿음으로 구별 된 삶을 살지 않았다면 성품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환난은 성도로 하여금 염려와 걱정과 같은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결한 성품을 빚어내는 통로가 됩니다.

성도가 환난으로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마주할 수 있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소망은 단순히 미래의 일을 바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헬라어 ‘엘피스(ἐλπίς)’는 희망으로 채워진 확신을 의미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긍정적으로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약속에 근거하여 장래의 은혜를 바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에도 소망을 품고 선포할 때 그와 같은 행동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음은 성도의 소망은 단순한 자기 긍정이나, 긍정적인 태도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보증하시는 믿음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성도가 고난을 겪을 때에 때로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는 것 같고 함께하시지 않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한 생각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붙들고 있던 소망을 포기하고 싶게 만듭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당장에 마주한 고난을 물리쳐 주시거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 주시는 대신에 성령님을 통해 고난 중에도 소망을 붙드고 있는 성도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확인시켜 주십니다. ‘부은 바 됨’이라는 묘사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잘 표현해줍니다. 다윗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쏟아 부어져서 넘치는 모습입니다. 고난으로 인해 메말라있던 성도의 마음은 단비와 같이 쏟아지는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 회복 됩니다. 비록 마주하고 있는 문제가 당장에 해결 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될 때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신뢰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도의 소망은 문제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태도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변함 없는 사랑으로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근거한 희망으로 채워진 확신입니다.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6-8)

(6-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6절은 헬라어 본문에서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에게 고난을 허용하시고, 인내를 요청하시지만 그럼에도 변함 없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확증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6절), 경건하지 않은 자였을 때(6절), 아직 죄인 되었을 때(8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사랑을 받을만한 어떤 이유도 찾기 어려운 상태였음에도 주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즉, 처음부터 우리는 사랑받을만한 자격이나 삶의 행위가 없음에도 일방적인 사랑으로 살 길을 얻었기에 때로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주님의 사랑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를 붙들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확증 된 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부어주셔서 고난 중에도 소망을 붙들게 하십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성령의 충만을 간구애햐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상황으로 이끄십니다. 우리는 인생의 수 많은 갈림길 속에서 최선의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음에도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확신에 차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신의 생각에 문제 상황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지나고 보면 오히려 장애물이 아니라 지름길이 되었음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느니라(9-11)

(9-11)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성도가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적용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성도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주님께서 아무런 죄가 없으심에도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음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구원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강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과거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으며 현재 삶 속에서 죄의 유혹과 뜻하지 않은 환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소망을 견고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매일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장래의 은혜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확신에 찬 소망이기에 교회 밖의 사람들은 조롱하며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소망 안에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의 전능하신 손길이 변함 없이 우리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신뢰하며 눈 앞의 상황으로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함으로 변함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날마나 깊이 알아가며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내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일방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여전히 연약한 인생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구하게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으로 인생을 견고하게 세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마주한 눈 앞의 상황과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현실로 인해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성령님을 통해 확신하게 하셔서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낼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우리를 지으신 주님의 전능하신 손길이 신실하게 우리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신뢰하며 상황이 아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로 배우고 주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의 상태는 어떠하였습니까?
2. 성도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지금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을 믿음으로 대처할 때 예상 되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4.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 우리 안에 숨은 우상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함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도록 어떻게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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