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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6:15-23

로마서 6:15-23
찬송가 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의의 종의 삶의 내용-거룩함(15-19절)
로마서는 1:1-17은 서론이고, 1:18∼15:13까지가 본론입니다. 본론 중에서 1:18-5장은 인간의 죄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한 구원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그리고 6~8장은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어떻게 죄를 이겨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거룩한 삶, 성화에 대한 권면입니다. 이것이 어제 본문인 12절에서부터 이어집니다. 어제 나눈 12~14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6:12-14)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우리가 죄에 지배받지 않는 삶, 죄를 이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배하다’는 ‘통치하다’와 동의어입니다. 즉 지배하는 것은 왕이 다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죄는 힘이 강합니다.
죄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이번 학기 구역성경공부를 통해서 나눈 다윗의 밧세바 사건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곧 이스라엘의 법이었고, 그는 이스라엘을 지배했고, 다스렸습니다. 그런 그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본 후, 욕망의 지배, 욕망의 다스림을 받게 되니, 신하 장군의 아내를 데려와 동침하고, 임신을 하게 되니까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하고, 결국 살인 교사(敎唆)하게 되었습니다. 왕도 죄 앞에서는 지배, 다스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죄를 이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욕(私慾)’은 우리말로는 ‘사사로운 욕심’,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욕심’을 뜻하는데, 영어 성경에서는 ‘lust(러스트)_욕망, 특히 성욕, 물질욕, 권력욕’와 ‘evil desire(악한 욕망)’이라고 번역합니다. 사욕의 특징은 충동적이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하면 순간적으로는 쾌락이 있지만, 이내 후회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몸의 사욕,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세상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지체’와 ‘무기’가 모두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의 각 지체를 모두 세상에 드리든지, 하나님께 드리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지체의 일부는 세상에 드리고, 일부는 하나님께 드리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기(호플론)’라고 번역된 단어는 ‘도구(tool)’로도 번역할 수 있고, ‘악기(instrument)’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도구이든 악기이든 이 단어의 공통점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가치와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같은 칼이어도 강도가 잡는 것과 일류 요리사가 잡는 것의 의미는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또한 같은 바이올린이라 할지라도 막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잡는 것과 일류 바이올리니스트가 잡는 것은 연주 결과가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연주하는 것은 소음에 가까워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어떤 사람이 연주하는 것은 깊은 감동으로 다가와 마음속에 있는 주름이 펴집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최고의 무기, 최상의 악기가 되려면, 우리의 연주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5장에서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지어도 죄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율법이 들어오고 나니까 사람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은 죄인인가를 알게 되었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은혜를 많이 그리고 크게 받으려면 죄를 더 많이 지어도 되겠네요?”라고 사람들이 질문했던 것입니다. 그때 사도 바울이 6:1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이 말씀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동일합니다. 사람들이 말하길,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않고, 은혜가 우리를 지배한다면, 죄보다 은혜가 더 크니까 죄를 지어도 상관없겠네요?”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입니다.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역시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은 그것으로 방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의무를 다하게 하는 것은 강력한 법률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1919~1933년까지 미국에는 술을 마시는 것이 법률적으로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를 ‘금주법 시대(禁酒法時代, Prohibition era)’라고 부릅니다. 이 법이 제정된 것은 신앙적인 이유였습니다. 이 법으로 인해서 음주가 어느 정도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작용이 훨씬 심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법을 어겨가며 밀주(密酒)를 만들어 먹었고, 에틸알코올로 만들어야 할 술을 메틸알코올로 만들어 먹다가 죽은 사람도 정말 많았습니다. 마피아 범죄조직이 생긴 것도 이때였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규제나 법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면, 그것은 형편없는 우리가 조건 없는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베풀면 죄를 짓는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생각이 깊이 들면, 그것을 삶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전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려고 말씀_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삶을 살게 됩니다.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선택은 분명히 자신이 하지만, 그다음에는 그것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선택으로 술집에 들어가게 되면 술집의 지배를 받게 되고, 자신의 선택으로 도박판에 들어가게 되면 그곳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다해서 우리를 진리에 드리면 진리가 우리를 지배합니다. 즉 우리가 진리를 주인으로 모시면 우리는 진리의 종이 되고, 그다음에는 나를 다스려줍니다.

우리 인간이 본래 무엇의 종이었고, 지금은 무엇의 종이 되었는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고, 지금은 ‘교훈의 본’을 마음을 순종하여 의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훈의 본’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오직 말씀에 순종해서 따라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과거 양말이 없던 시절에는 ‘버선’을 신고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버선은 집에서 만들어 신었기 때문에 집에는 ‘버선본’이 있었습니다. 또한 옷도 만들어서 입던 때에는 ‘옷본’도 있었습니다. 그 ‘본’대로 잘라서 버선을 만들고 옷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바른길을 가게 하는 틀과 같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의로운 길을 걷게 해줍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 자신을 무엇인가에 드리고 있는데 이전과 지금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렇게 증거합니다.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고대는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그 당시 종은 인격체를 가진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재산의 일부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이 A라는 주인을 섬겼는데, 어느 날 B라는 사람이 그 종을 사게 되면, 그날부터 그 종은 B를 섬겨야 했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우리의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그것이 우리의 주인이 됨으로, 우리에게 나오는 것은 불법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의가 우리의 주인이 됨으로 우리에게서 거룩함이 나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삶을 지향하면 불법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향하면 거룩한 것입니다.


의의 종의 삶의 결과-영생(20-23절)
(20-21)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죄의 종이었을 때,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다고 하는 것은 의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쾌락을 삶의 목적으로 살게 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지나고 나면 그렇게 살았던 것이 굉장히 부끄럽게 여겨지고, 그 마지막이 사망, 공동묘지입니다. 하나님 없이 아무리 큰 업적을 쌓아도, 아무리 많은 일을 하여도 그것이 우리를 영원으로 인도해 주지 못합니다. 오직 영원하신 분만 우리를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22-23)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종이 되면 그 마침은 사망이지만, 의의 종, 하나님의 종이 되면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합니다. 특히 ‘죄의 삯은 사망이요’에서 ‘삯_옵소니온’은 ‘음식물을 사기 위해서 지불하는 돈’이나 ‘관리의 봉급’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본래 의미는 ‘군인이 받는 급료’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3장에 보면, 세례자 요한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합당하게 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 군인들이 나아와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세례자 요한은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라고 했습니다. ‘급료’가 바로 ‘삯_옵소니온’입니다.
일꾼이 일을 하고서 그 대가를 받습니다. 군인도 복무하고서 대가를 받습니다. 두 사람이 동일한 액수의 돈을 받는다고 해도, 그 의미가 동일하지 않습니다. 일군은 자신의 시간을 판 대가라고 한다면, 군인은 자기 목숨을 걸고 받은 대가입니다.
목숨을 걸고 어떤 업적을 이루어도, 아무리 큰 결과를 만들어 내어도 그것이 그리스도 밖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면 그 결과는 영원한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기업에서, 학문에서, 관직에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장난감을 사 주면 처음엔 그것을 보물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누가 달라고 하면 꼭 쥐고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심하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싫증을 냅니다. 만약 아이가 그 장난감을 평생 놓지 않고 붙들고 산다면 얼마나 유치하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인생 70~80년은 참 짧습니다. 그것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포기한다면 얼마나 유치한 것이겠습니까?

로마서 6~8장과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어떻게 죄를 이겨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성화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흔히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딱 ‘세 마디’라고 합니다. 그것은 ‘딱 한 번만’, ‘이 정도야’ 그리고 ‘남들도 다하는데’라고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성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나 결단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나 결단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힘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를 얹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의지와 결단을 더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이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시고, 세우신 창조주이심을 알리는 주님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그 은총 속에서 사시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같이 허물투성이이고, 죄인을 용납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죄를 지어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겠지라고 생각할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형편 없는 삶에 마침표를 찍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자신을 죄에게 내어 주어 죄의 종으로 살다가 사망으로 나아가지 않게 하시고, 우리 자신을 의에게, 하나님께 내어드려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술꾼이 술집을 선택하면 술집의 영향 아래에 있게 되듯이, 우리가 진리를 택하고, 하나님을 택함으로 우리가 진리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살아감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심과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신 것이 우리의 삶으로 증명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우리를 죄에게 드리면 죄의 지배를 받고, 의에게 드리면 의의 다스림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무엇에 드려지고 있습니까? 그 다스림을 받음으로 무엇이 열매로 맺어지고 있습니까?
2.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의의 종이 되는 것은 ‘교훈의 본’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교훈의 본_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오늘 순종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3. 죄의 삯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에서 사망의 냄새와 영생의 향기 중 무엇이 더욱 많이 발하고 있습니까?
4. 교훈의 본을 따라서 살며,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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