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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7:1-13

로마서 7:1-13
찬송가 433장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율법으로부터 자유함(1-6)
로마서 7장 1절부터 6절은 7장과 8장을 아우르는 서론 격으로, 결혼한 여자가 남편이 살아있을 때는 법으로 그에게 매여 살지만,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유를 얻는다는 실례를 들면서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죽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1절은, “알지 못하느냐?”의 헬라어 “아그노에이테”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6장 3절과 16절에서도 사용된 바 있는 “알지 못하느냐”는 단어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확장하는 새로운 내용 단락이 시작된다는 것을 독자에게 환기시켜 줍니다. “사람이 살 동안만 그 법이 그를 주관한다”는 1절 말씀이, 6장 14절,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다”는 언급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합니다. 바울은 7장을 통해서 6장에서 언급한 “인간의 죄”, “모세 율법”, “하나님의 은혜”를 선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사람이 살 동안만 법의 주관을 받는다는 바울의 주장은 요즘도 유효합니다. 법은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만 영향을 미칩니다. 피의자로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유명을 달리하면 검찰은 그를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해버립니다. 당시 유대교 랍비들도 이렇게 가르쳤는데, 당시 랍비들은 사람이 죽을 때, 그는 율법과 계명에서 해방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로마서 6장 2절에서, 우리를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선언하고 있고, 15절에서는, “모세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고 말했던 바울은 이곳에서 남편의 죽음으로 자유를 얻는 아내를 예로 듭니다.

(2-3)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율법이라는 남편이 죽기 전에는 율법에 매여 있기 때문에 떠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 매일 필요도 없고, 죽은 율법을 삶의 원리로 삼아서도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지만 그리스도만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 죽음에 함께 참여했고(6:1-8),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바울은 너희가 율법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계속해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죽은 남편에 불과한 율법에서 이미 해방되었음에도 그 남편에게 여전히 매여있다고 여기고, 그 남편과 함께 살아가려고 한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오늘 바울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신자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그리스도의 지배로 이전되었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열매는 갈라디아서 5장의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나 에베소서 5장 9절의 빛의 열매처럼 거룩한 삶을 의미합니다.

(5-6)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새번역에서는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번역합니다. 율법 조문에 매여 이렇게 섬겨라 저렇게 섬겨라는 말에 휘둘리지 말고,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새로운 지평을 이해하여, 말씀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말로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것이 아니라 지금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나의 신앙고백을 점검하고 어떤 순간에도 나를 붙들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지금 자신을 부인하고 죽여야 한다”고 호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으므로, 함께 죽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우리를 옥죄던 율법에서 이미 벗어났음을 말합니다. 복음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얽어맬 수 없고,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 은혜를 풍성히 묵상하는 누리는 토요일 아침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인간(7-13)
바울의 글을 계속 읽다보면, 한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는 죄로부터도 자유를 얻었고, 율법으로부터도 자유를 얻었다면, 율법이 바로 죄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입니다.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은 죄가 아니며,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율법이 의와 구원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감당할 수 없으며, 4장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고, 5장에서는 율법이 죄를 증가시킨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6절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움을 주는 대상이 아니며, 오직 죄를 죄로 알게 하는 일을 감당합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있었으므로, 탐내는 것이 죄임을 알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진중하게 읽을수록, 그 말씀을 다 지켜 행하려는 열망을 가진 사람일수록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힘과 능력으로는 그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도 없거니와 오히려 그 말씀 때문에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 도저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죄악으로 가득찬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율법을 주신 목적은 정말 그들이 존재 목적대로 하나님의 대사, 에덴을 가꾸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 속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아담이 불순종하지 않았다면, 그는 에덴에서 하나님과 대면하여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인 뱀, 여기에서는 죄입니다. 죄가 아담을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아담을 유혹했고, 탐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결국 아담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죽음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9-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처럼 생명을 주려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오히려 죄의 도구로 돌변하여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율법 자체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율법을 도구로 삼은 죄의 준동에 넘어진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12절 말씀처럼,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율법 자체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를 담고 있으며, 사람이 하나님과 이 세상과 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생명을 주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을 가져다주는 매개가 된다는 것에서 율법이 갖는 부정적인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어떤 방편도 갖지 못합니다. 그저 내 힘으로 율법 조문을 지키려고 발버둥쳐봤자 죄가 오히려 율법을 도구로 우리를 잠식시키는 것을 두고 볼 따름입니다. 죄를 죄로 깨닫는 율법 자체의 기능을 내면화하면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하루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늘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힘이, 오늘 우리의 하루를 인도하실 수 있도록 간구하십시다.

기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율법을 도구로, 죄를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우리가 구원받지 못할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작은 희망마저 발견할 수 없는 우리 대신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의지하게 해주시고, 그 은혜로 오늘 하루를 말씀 이루는 복된 삶으로 이끌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바울이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든 예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3)
2. 율법의 중요한 기능은 무엇입니까? (7) 그에 비추어 내가 최근에 지은 죄는 무엇입니까?
3. 율법과 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8) 예를 들어 설명해보세요.
4.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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