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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7:14-25

로마서 7:14-25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로마서 7장 전반부에서는 혼인 관계로 율법과 죄를 비유하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율법에 매여 있어야 하지만, 남편이 죽으면 율법에 대해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해 율법에 대해 자유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죄가 아니며, 율법은 우리가 죄를 죄로 바르게 인식 할 수 있는 기준과 척도가 됩니다. 율법이 있어야 죄를 죄로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역기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고 남편과 아내가 어떤 규칙을 정했습니다. 무조건 하루에 하트를 넣은 카톡을 3번이상하고, 밖에 있을 때 통화는 하루에 한 번씩 하고, 집에 오면 무조건 30분 동안은 서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 때는 이러한 약속들이 기쁨으로 잘 지켜지다가 나중에는 이것이 의무감으로만 남아 있어서 진정성 없는 무미건조한 형식적인 대화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정한 규칙, 율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을 잘 알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죄에 대한 갈등을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육신에 속해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나’ (14-20절)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사실 이 14절 말씀은 성서학자들 간에 여러 논란이 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고 고백하는 것은 너무 큰 죄인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즉 회심하기 이 전의 기억이라고 어떤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원어를 보면, 14절 말씀은 현재시제를 사용합니다. 즉,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의 상태를 적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죄에 대한 갈등의 상황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22절에서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마음 가운데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심 하고 열심히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살고 있지만, 죄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의 내적인 갈등을 볼 수 있습니다. 회심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자임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15장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마가를 전도여행에 동참 시키는 문제로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고 다시 화해한 것이 아니라, 결국 갈라져서 전도여행을 따로 갈 정도로 바울에게도 연약한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17)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을 분명히 마음으로는 알고 있지만, 스스로 하기 싫어하고 미워하는 죄를 짓는 것에 대해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분명하게 만나고 거듭난 자였지만, 자신 안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죄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칭의론’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학생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진실로 회개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죄인이냐 아니냐를 물어보셨습니다. 몇 몇 학생들은 예수님께 회개하고 죄의 용서를 받았다면 죄인이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정답은 죄인이라는 겁니다.

‘칭의론’이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자신이 죄인임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죄의 용서를 구했을 때, 죄가 있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죄인은 죄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라도 끊임없이 두렵고 근신하는 마음을 갖고 죄의 굴레와 열심히 싸워야 합니다. 매일 매일 자기 자신의 말과 행동들을 다시 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죄와 싸워야 하는 일종의 숙명입니다.

(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사도 바울은 15-17절의 내용을 반복해서 선을 행하고 싶지만 선을 행하지 못하고 악을 행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고백합니다.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기를 바라지만, 자꾸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때 표면적으로는 사람이 문제인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사람 안에 거주하는 죄가 문제임을 지적하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을 섬기는 분열된 ‘나’ (21-25절)

(21-23)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바울은 15절 말씀부터 반복적으로 자신 안에 있는 죄로 인해 원하지 않는 죄를 짓는 내적인 갈등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21절의 ‘그러므로’를 시작으로 이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과도 같은 내용을 드러냅니다. 사도 바울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싶지만, 겉사람으로는 죄의 법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보며, 죄와의 내적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다시 고백합니다.

지금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구도 죄와의 영적 전쟁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죄와의 싸움을 싸우지 않아도 될 만큼 온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늘 근신하고 깨어서 작은 죄라도 경계해야 합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 바울은 죄와의 내적인 전쟁을 계속 해야 하는 자신을 향해 ‘곤고한’ 사람이라고 표현 합니다. 여기에서 ‘곤고한’은 원어로 ‘비참한’이라는 뜻인데, ‘매우 곤란하고 어렵게 살아간다는’ 의미로 널리 쓰입니다. 전쟁 상황에 쓰인다면, 적군에게 끝까지 대항하다가 기력을 완전히 소진해 적에게 잡힌 비참한 상태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도 영적인 사람이라고 우리가 분명히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 그냥 스스로 죄와 합리화하고 안주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장은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죄로 인해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쉽게 선을 행할 수 없는 참으로 곤고한 인간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 25절은 그러한 상태에 대한 결론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문맥을 보지 못하고 이 25절 말씀만 보면 충분히 오해 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마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고 그냥 죄의 법을 섬겨도 괜찮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25절의 말씀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8:1의 말씀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사도 바울은 24절까지 죄의 부정적 영향력에 대해 말하면서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25절 전반부에서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는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바로 이 감사 찬양의 이유는 25절 후반부의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때문이 아니라 8장 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영적 싸움이 있다는 것은 그래도 아직 내가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사람은 결코 싸우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적인 싸움이 있고 갈등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 안에 또 다른 법이 있어서 하나님을 따르려는 마음과 싸워 자신을 죄의 법 아래로 끌고 간다고 탄식했습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어쩌면 내면의 죄와 싸우는 일은 죽는 날까지 평생을 해야 되는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금씩 변화시키시고 다듬어 가실 것을 믿고 인내해야겠습니다. 우리 속에 새 생명이 있기 때문에 죄로 인한 갈등도 생기는 것입니다. 새 생명이 마음 속에 없는 사람들은 죄로 인해 전혀 갈등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걸어가신 그 길을 생각하며 예수님을 붙잡고 진정한 생명의 길을 전하는 복된 발걸음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참으로 곤고할 뿐임을 고백합니다. 죄로 인한 내적인 갈등 속에서도 죄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러한 곤고한 인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생각하며 진정한 생명의 길을 전하는 복된 발걸음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코로나19로 인해 여전히 어려움 가운데 있는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이 땅 가운데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율법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무엇이 있습니까?
2. 당신 안에 있는 죄로 인해 갈등한다고 느낄 때는 주로 언제입니까?
3. 당신 스스로 ‘곤고한 자’라고 느껴 스스로 고민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보았습니까?
4. 당신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가기 위해 오늘부터 삶 속에서 무엇을 결단하고 실천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가정, 직장, 교회, 인간관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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