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8:31-39

로마서 8:31-39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6장부터 8장까지는 예수님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의 성화(聖化)를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과정, 즉 성화는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다고 해서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이 바로 된다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일은 없습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합니다. 성화의 정도가 다르며 그 차이가 있더라도 성화를 온전히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주님은 온전하나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온전하지 않음으로 교회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이 부족함을 주님 안에서 메워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온전하고 거룩함이 상당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라면 누가 쉽게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주님의 몸된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곧 세상이 주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는 큰 은총이 있지만, 믿는 사람들의 인생길에 탄탄대로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기 전보다 더 큰 시련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안에서 의로운 길을 걸어가다 보면 불의한 세력들로부터 박해 또는 방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신자가 의로운 길을 가다가 고난을 받을 때 낙심하지 않도록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변화된 신분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신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예수님의 피로 의인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자녀는 곧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라면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고난이 힘들고 어렵지만,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다음의 말씀을 기억할 때 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붙들고 암흑과 같은 고난의 터널을 지날 때에도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보이는 소망, 예측이 가능한 소망은 소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회복 불가능할 것 같은 처지와 절망적인 것 같은 상황에서 소망을 가지는 것이 참 소망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실 분이시기에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도록 그 길을 비추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정하여 주시고 우리를 불러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시고, 그리고 우리를 영화롭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34절)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일에 대하여는 앞의 내용입니다. 31절 상반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정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전적인 은혜와 사랑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며 우리를 위하시기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말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진실하신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분입니다. 내어주셨다 함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살리려 아들을 죽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 죽어 마땅한 죄인을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죽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분께서 다른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없이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는 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조부모가 손주에게 아낌없이 주려고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조부모와 부모는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능력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므로 주시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살리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재판장이 되시기에 누가 우리를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는 것은 법정 선언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법학이 발달한 로마 제국의 수도에 거주하는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 그들의 이해를 돕고자 법정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죄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면 죄인은 더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죄인이 죄의 댓가를 치르면 더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죄의 댓가를 치르셨기에 우리는 과거 죄인의 신분에 더이상 머무르지 않고 의인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으로 신분이 변화된 우리를 어느 누구도 고발할 수 없습니다.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재판장이 되시니 우리가 고발을 당할 수 없고 정죄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으니 우리를 정죄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는 이유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어제 본문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심을 묵상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 하나님뿐만 아니라 성자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최고의 중보자는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가 우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 구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35-39절)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구절 단어들의 원어적 의미를 고려할 때 ‘환난’은 외적인 원인으로 인해 받는 물리적인 고난이라면 ‘곤고’는 내적인 원인으로 인해 받는 심리적인 고난에 가깝습니다. 고난을 굳이 육체적 정신적 고난으로 나눌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떤 종류의 고난이라도 육체와 정신은 다 힘듭니다. ‘적신’은 발거벗음을 뜻하며, ‘칼’은 목숨을 빼앗아가는 최고의 위협이자 고난입니다. 35절에서 언급된 7개는 인생을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대표적인 7가지 고난의 항목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어떤 형태의 고난일지라도 주님의 사랑을 우리로부터 끊을 수 없습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성도가 겪게 되는 고난에 대해서 시편 44편 22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할 수 있으며, 마치 포식자의 먹잇감이 되듯이 위협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비록 주님을 위해 순교를 당할 수 있을지언정 순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사람이 순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살 당할 양처럼 위협을 받아도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어떤 위협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힘으로 모든 위협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이길 수 있습니다. 35절에서 언급한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듯이 38절과 39절은 모든 형태의 위협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없음을 재천명하고 있습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망’은 순교의 위험을, ‘생명’은 생명을 담보로 배교의 협박을, ‘천사’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권세자’는 악한 영의 세력을, ‘현재 일’은 오늘의 두려움을, ‘장래 일’은 내일에 대한 염려를, ‘능력’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높음이나 깊음’은 천문학과 관련된 용어로서 점성학의 공포를 뜻합니다. 이 9가지와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어떤 역경에도 기가 죽어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기에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어떤 신분인지를 재확인함에 달려 있습니다. ‘나는 과거 죄인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서 의인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다’, ‘하지만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을 받아야 할 존재이다’, ‘그러나 그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 각자를 택정하여 주시고, 불러주시고, 의롭다 해 주시고, 영화롭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저희가 더이상 고난으로 괴로워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안에 있는 저희를 대적할 자가 없고, 정죄할 자가 없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자가 없음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이 믿음을 가지고 어둠의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생명의 횃불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31절의 ‘이 일’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2. 세상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믿음의 사람인 우리를 대적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어느 누구도 믿음의 사람인 우리를 정죄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4. 모든 일에 믿음의 사람인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를 힘이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것들로 제시된 17가지 항목(35절,38절,39절)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봅시다.

'새벽기도 > 로마서(새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9:19-33  (0) 2022.09.02
로마서 9:1-18  (0) 2022.09.02
로마서 8:18-30  (0) 2022.09.02
로마서 8장 1-17절  (0) 2022.09.02
로마서 7:14-25  (0) 202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