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64장 ‘정결하게 하는 샘이’
레위기 13장에서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치며, 진영 밖에서 혼자 살아야 됨을 증거했습니다(13:45-46). 본문은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나병'은 넓은 의미에서의 '악성 피부병'입니다. 그래서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나병'을 '악성 피부병'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에게로(1-2절)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환자의 악성 피부병이 나았으면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가야 합니다. 제사장은 환자의 질병이 깨끗하게 나았음을 확인하고, 부정하게 되었던 환자가 다시 진영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정확한 정결 의식을 수행하는데 돕는 역할을 합니다. 본문은 '어떻게 병자를 치료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병자를 정결하게, 즉 예배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게 하는가?'입니다. 그럼으로 본문은 나병으로 인해 부정하게 되어 언약 공동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어떻게 언약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바른 절차를 증거합니다. 그리고 언약 공동체의 핵심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결코 질병의 무서움과 그것에서 회복되는 것에 대해서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질병에서부터 회복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한결같이 강조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자칫 우리 앞에 놓인 눈에 보이는 문제 해결에만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바른 절차에 대해 무시하거나 무지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하는 것, 우리가 눈을 들어 회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이며,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인 것을 기억하십시다.
악성 피부병이 완치되었다고 해서 진영 밖으로 격리되었던 사람이 마음대로 진영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습니다. 분명 거쳐야 하는 분명한 절차를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이 절차에 따라 제사장의 완치 선언을 받아야 하며, 그 후 적절한 제물을 드려야만 다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진행되는 예식의 순서를 보면 먼저 진영 밖에서 진행되며, 그가 치유되었으면 진영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고, 최종적으로 성소에서 정결 절차를 마무리합니다. 완쾌된 사람의 공간적인 움직임을 보면 가장 거룩하지 않은 곳(진영 밖)에서 가장 거룩한 곳(성소)으로 가는 순서입니다. 먼저 진영 밖에서의 절차입니다.
진영 밖에서(3-9절)
(3-7)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제사장은 또 명령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만일 어떤 사람이 나병, 즉 악성 피부병에서 회복되었으면, 먼저 제사장에게 진영 밖에서 자신을 진찰해 줄것을 요청해야 합니다. 제사장이 보기에 그가 완치되었으면 진영 밖에서 치러야 하는 정결 예식을 위해 두 마리의 정결한 새와 백향목 가지, 홍색 털실 한 뭉치, 우슬초 한 포기를 준비하게 합니다. 제사장은 두 마리의 새들 중 한 마리를 흐르는 물 위에 놓은 질그릇 안에서 잡았습니다. 여기서 '흐르는 물'을 문자 그대로 표현하면 '살아있는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의 피가 질그릇 위에 있는 살아있는 물에 떨어져 섞이면, 남은 새 한 마리와 백향목 가지, 홍색 털실, 우슬초에 물과 섞인 피를 적셔서 완치된 사람에게 일곱 번 뿌리며 '정하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새는 자유롭게 날아가도록 들에 놓아주었습니다.
진영 밖에서 이루어진 이 의식은 염소를 제물로 바친 속죄일 의식(레 16장)과 유사합니다. 속죄일 의식의 경우에는 염소 한 마리가 속죄 제물로 바쳐지고, 다른 염소는 속죄의 염소가 되어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보내졌습니다. 죽은 염소의 피가 죄를 대속하고, 광야에 풀어준 염소가 죄를 짊어지고 떠나 죄가 잊혀지는 것을 뜻하는 것처럼, 나병에서 완치된 사람이 부정에서 정결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한 생명이 죽음으로 그의 부정을 대신해야 하며, 그의 부정은 죽은 새의 피를 통해 살아있는 새에게 옮겨지고, 그 새가 떠나감으로 다시는 그의 부정했던 것이 기억되지 않은 것을 상징합니다.
또한 ‘살아있는 물’에 피를 섞어 뿌리는 것과 ‘살아있는 새’를 들에 놓아주는 예식을 통해 죽은 자 같은 취급을 받았던 악성 피부병 환자의 회복이 곧 생명의 회복이라는 점을 강하게 부각시켜줍니다. 이를 통해 진영 밖에서 진영 안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회막으로의 회복은 곧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회복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8-9)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영에 들어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이레를 머물 것이요 일곱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진영 밖에서 진영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두 마리의 새 의식을 행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옷을 빨고, 털을 모두 밀고, 물로 목욕을 하고 진영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진영 안에 들어와서도 바로 장막에 출입할 수는 없었습니다. 진영 안에는 들어 왔으나 7일 동안 장막 밖에서 머물러야 했고, 일곱째 날에 다시 진영 안에 들어올 때처럼 털을 밀고, 옷을 빨고 몸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덜째 날 드디어 장막 안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진영 안에서(10-32절)
진영 안에 들어온지 여덜째 날, 드디어 여호와 앞에서 각종 제사를 드림으로 정결의식의 절차가 마무리 됩니다.
(10-13) 여덟째 날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취할 것이요 정결하게 하는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와 그 물건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어린 숫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기름 한 록과 아울러 속건제로 드리되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그 어린 숫양은 거룩한 장소 곧 속죄제와 번제물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며 속건제물은 속죄제물과 마찬가지로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이는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진영 안으로 들어온지 여덜째 날, 제물을 가지고 장막의 한 중앙에 있는 성소로 나아갑니다. 기나긴 격리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하나님 앞에 제사, 즉 예배를 드리기 위해 찾아온 이 사람은 얼마나 감격이었겠습니까? 악성 피부병에서 회복된 사람이 드려야 하는 제사는 속건제, 속죄제, 번제, 소제 이렇게 네 종류의 제사입니다. 즉, 화목제를 제외한 모든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이 때 제물로는 흠 없는 숫양 두 마리, 일년 된 흠 없는 암양 한 마리, 곡식 가루 10분의 3 에바(6.5리터), 기름 한 록(1/6리터)를 가져와야 합니다.
진영 밖에서 진행된 예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리기까지 모든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모든 절차를 통해 부정으로부터의 회복이 당사자에게 감격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결코 쉽지 않은 순서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환자의 정결 의식이 가진 장엄함과 복작함은 그가 육신의 부정으로부터 회복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한 보여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자녀가 된 것도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겪으신 고난의 발자취가 얼마나 장엄하고 위대한지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는 외인이며,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엡 2:12). 그런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그리스도 안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그리고 이 자리까지 주님의 값비싼 은혜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있었음을 늘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이제 정결함을 받은 자 답게 살아가기로 결단하십시다.
이어서 구체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방식에 대해 증거합니다.
(14-20) 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를 것이요 제사장은 또 그 한 록의 기름을 취하여 자기 왼쪽 손바닥에 따르고 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손의 기름을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것을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곧 속건제물의 피 위에 바를 것이며 아직도 그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바르고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그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물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번제와 소제를 제단에 드려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정결하리라
여기서 속건제물을 드리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소개됩니다. 이 절차는 놀랍게도 레위기 8장에서 소개하는 대제사장의 위임식 때의 절차와 유사합니다. 대제사장의 위임식처럼 제사장은 속건제물인 어린 숫양 한 마리의 피를 받아다가 완치된 환자의 오른쪽 귓볼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랐으며, 기름도 오른쪽 귓볼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랐습니다. 차이라면 아론의 대제사장 취임식 때 모세는 제물의 피와 특별히 준비된 기름을 사용했는데, 이곳에서는 제물의 피와 완치된 사람이 가지고 온 일반 기름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위임식 때에 모세가 아론의 오른쪽 귓볼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피와 기름을 바른 것을 통해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완전히 정결하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이와 비슷한 의식을 치르는 악성 피부병으로부터 회복된 사람 역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의 모든 신체가 다 깨끗함을 받았음을 의식을 통해 선포됩니다. 앞서 레위기 13장에서 나병, 즉 악성 피부병 환자는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고, 죽은 자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즉,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같았습니다. 이제 악성 피부병으로부터 회복된 자는 이런 면에서 볼 때 새로 태어난 자와 같습니다. 그는 마치 죽음에서 부활한 자처럼 다시 한번 부여받은 생명을 누립니다. 이제 죽은 자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자, 새 생명을 부여받은 자 답게 새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우리 모두 또한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삶을 새롭게 가꾸어 가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다시 잠드는 순간까지, 모두 정결하게 그리고 새롭게 해주시는 주님의 은총 아래에서 새 생명을 얻은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21-23)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는 흔들어 자기를 속죄할 속건제를 위하여 어린 숫양 한 마리와 소제를 위하여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기름 섞은 것과 기름 한 록을 취하고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삼아 여덟째 날에 그 결례를 위하여 그것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21절부터 32절은 피부병에서 완치된 사람이 가난하여 세 마리의 짐승을 제물로 드리기 어려울 경우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속건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숫양 한 마리를 동일하게 드려야 하지만, 속죄제와 번제는 비둘기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소제로 바칠 곡물도 10분의 3에바 대신 10분의 1에바를 가져오면 됩니다. 모든 제물의 규모가 줄어들었으나 속건제로 드리는 숫양 만큼은 예외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속건 제물은 같아야 하며, 앞서 살펴본 절차와 동일하게 속건제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결하게 되었음을 상징하는 의식을 치뤄야 합니다.
진영 밖에서 부정한 삶을 살아가던 나병 환자가 성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회복의 은총을 누리듯, 죄 많고 부정하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당하셨음을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오늘도 눈을 들어 나를 위해 조롱과 멸시를 받으신 주님의 사랑에 진정한 마음으로 무릎 끓어 응답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허물과 죄 많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음을 기억하며, 주님의 사랑에 무릎 끓어 응답하는 오늘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병으로 인해 진영 밖에서 죽은 자와 같이 부정한 삶을 살아왔던 사람이 몸이 회복되어 정결 예식에 따라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에 깊은 감격과 감사를 주님께 올려드렸던 것처럼 오늘도 우리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결하게 해 주시는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눈을 들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성경은 왜 어떻게 병자가 치료됐는가보다 어떻게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가에 주목하나요?
2. ‘살아있는 물’에 섞이 피를 ‘살아있는 새’에 뭍여 놓아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3. 나병 환자가 완치되어 성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렸을 때의 모습과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모습의 차이는 어떤지 묵상해 보세요.
4. 하나님께서는 왜 나병에서 완치된 사람이 수행해야 할 정결 예식을 8일이라는 기간 동안 복잡하게 진행하게 하셨는지 묵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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