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오늘 본문인 레위기 22장은 18장부터 시작된 ‘거룩한 삶에 대한 요구’의 결론부입니다. 18-20장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대한 요구였고, 21-22장은 제사장에 대한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일반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거룩한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규례들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반영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물을 먹는 규례’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제사를 마친 후 자기 몫으로 주어진 성물을 먹을 때에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성물을 먹는 규례(1-9절)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그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우리는 남의 물건을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물건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물건의 주인을 무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성물도 함부로 다뤄서는 안됐습니다. 성물을 다루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구별하여 점검해야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매주 봉헌찬송을 부르며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이 예물을 주께 드리나이다’라며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새벽 시간도 하나님의 것이고, 지금 숨 쉬고 있는 공기도 하나님의 것이고,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맑은 정신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빌려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것인 나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인 환경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삶의 시간을 정욕과 야망을 위해 허비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우리 삶에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3) 그들에게 이르라 누구든지 네 자손 중에 대대로 그의 몸이 부정하면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 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몸이 부정한 채로 성물에 가까이 하는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끊어졌습니다. 제사장들은 이 규례 때문에 성물을 먹기 전에 반드시 ‘내가 정결한가?’라고 물으며 자신을 살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제사를 드리는 예배 시간만 자신의 정결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제사 후 성물을 먹는 식사 시간에도 즉, 예배 후 일상까지도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 세워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식사시간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보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식사 시간까지도 거룩을 요구하시는 이유를 9절이 밝힙니다.
(9) 그들은 내 명령을 지킬 것이니라 그것을 속되게 하면 그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 그 가운데에서 죽을까 하노라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식사시간에 하나님의 거룩을 내려놓은 채 속되게 하면, 죄가 발생하고, 그 죄는 우리를 죽음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원하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즉, 하나님 안에만 생명이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머물며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를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었음에도 그들이 택함 받고 거룩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신명기 7:7-8). 우리가 택함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어 거룩해진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은 쇄도하는 사랑으로 우리를 덮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추구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혼자 살지 않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이 열심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하나님 안에 머물게 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부정한 것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나열하십니다.
(4-8) 아론의 자손 중 나병 환자나 유출병자는 그가 정결하기 전에는 그 성물을 먹지 말 것이요 시체의 부정에 접촉된 자나 설정한 자나 무릇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벌레에 접촉된 모든 사람과 무슨 부정이든지 사람을 더럽힐 만한 것에게 접촉된 자 곧 이런 것에 접촉된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니 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 성물을 먹지 못할지며 해 질 때에야 정하리니 그 후에야 그 성물을 먹을 것이니라 이는 자기의 음식이 됨이니라 시체나 찢겨 죽은 짐승을 먹음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열거된 부정들에는 나병과 유출병처럼 지속적으로 부정결한 것과 각종 부정한 상태 곧 시체, 설정, 벌레 등에 접촉하여 일시적으로 부정결한 것들이 있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있어 이런 규례들은 자기 목숨과 직결되었기에 그들은 매 식사마다 ‘내가 정결한가?’를 되물으며 거룩의 연단을 이어갔을 것입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은 자연사한 짐승의 시체나 들짐승에게 물려 찢겨 죽은 것은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영유아를 둔 부모가 “에이, 찌찌. 먹지 마세요.”라며 분별없이 입에 가져다 대는 영유아를 말리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백성들이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할지 식사 메뉴에까지 관심을 가지실 정도로 그들을 섬세하게 돌보셨습니다. 위생적 측면에서 볼 때 죽은 짐승이 어떤 병에 걸려 죽었는지, 사체가 부패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이를 금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식사 전 제사장의 정결을 요구하신 것 또한 제사장의 위생을 생각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피부질환을 가진 백성들의 정결 여부, 곰팡이가 핀 가정집 점검 등 위생과 관련하여 더욱 철저히 자신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마치 부모가 집에 돌아온 자식에게 간식을 챙겨주면서 “손 씻고 와서 먹으렴.” 자상하게 말하듯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건강도 챙기셨던 것입니다.
성물을 먹을 수 있는 사람(10-16절)
곧 이어 성결이 요구되는 제사장의 식탁에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 증거합니다.
(10-13) 일반인은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며 제사장의 객이나 품꾼도 다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나 제사장이 그의 돈으로 어떤 사람을 샀으면 그는 그것을 먹을 것이며 그의 집에서 출생한 자도 그렇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의 음식을 먹을 것이며 제사장의 딸이 일반인에게 출가하였으면 거제의 성물을 먹지 못하되 만일 그가 과부가 되든지 이혼을 당하든지 자식이 없이 그의 친정에 돌아와서 젊었을 때와 같으면 그는 그의 아버지 몫의 음식을 먹을 것이나 일반인은 먹지 못할 것이니라
일반인은 성물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모르고 성물을 먹었을 경우, 하나님은 속죄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14) 만일 누가 부지중에 성물을 먹으면 그 성물에 그것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지니라
일반인이 성물을 먹는 것은 성물침해죄에 해당했기에 속건제가 요구됐습니다. 우리는 범죄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런데 일반인 중 성물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사장이 돈 주고 산 종이었습니다. 이로 보아 종은 제사장의 소유가 됨과 동시에 제사장 가문의 권속이 되어 하나님의 음식인 성물까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의 포로 되어 갇힌 자요 억눌린 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자 권속이 되었고, 하늘의 신령한 복을 먹고 누리게 됐습니다. 이러한 감동을 시편 84편의 기자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시편 84편 10절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기자는 아무리 세속적 가치관의 꼭대기에 앉더라도 그곳이 악인의 장막이라면 가장 낮은 자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음은 우리 인생의 지복(至福)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어서 고백합니다. 12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이 복된 고백은 무엇이 복인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일반인 중 종만 제사장의 식탁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 제사장의 가족은 제사장과 함께 그 식탁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본래 제사장의 가족이었다가 출가한 딸의 경우도 하나님은 세세하게 다루셨습니다. 딸이 출가할 경우 남편 가문의 소속이 되기에 남편이 일반인이면 딸은 제사장의 식탁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사별, 이혼 등의 이유로 홀몸이 되어 돌봄이 필요해졌을 때에는 다시 제사장의 식탁에 딸로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약해져 돌봄이 필요할 그 때에 끝까지 우리를 책임져주십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우리가 가장 약해져있을 그 때에 세상은 우리를 적자생존의 원리로 냉대할지 모르나 하나님은 덮으시는 은혜로 끝까지 우리를 돌보십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제사장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15-16)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을 그들은 속되게 하지 말지니 그들이 성물을 먹으면 그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게 할 것이니라 나는 그 음식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제사장들은 일반인들이 성물을 먹어 범죄치 못하도록 잘 가르치고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백성을 지도하기는커녕 자신들이 앞서 범죄했습니다. 사무엘상 2장 12절, 개역개정과 새번역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빴다. 그들은 주님을 무시하였다.”
우리도 본래 주님을 알지 못하여 주님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버젓이 살아계시고, 이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에도 우리는 눈과 귀가 멀어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많은 것들을 은혜로 주셨음에도, 그래서 우리는 빌려 쓰는 입장이었음에도 우리는 왜 이것밖에 없냐며 적반하장격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택하셨고, 지금도 자신의 열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비범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선택받은 것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그들을 비범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를 불러 아들 피로 하나님의 제사장 되게 하사 성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향해 눈을 드십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성물인 우리의 전 삶을 마땅히 존중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존경을 표하십시다. 그리하여 예배만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국한하고, 이외 시간은 하나님을 내려놓으며 살았던 이전의 삶으로부터 돌이키십시다. 이제는 예배와 더불어 예배 후 일상까지도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가꾸어가며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를 이루어가십시다. 그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우리 삶에 이루어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영적 촉진자로서의 삶입니다.
기도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예배조차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던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셔서 성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찬양합니다. 예배를 넘어 예배 후 일상까지도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가꾸게 하시고, 이를 통해 경작된 복을 우리 주변에 나누며 영적 촉진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살과 피를 내어주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성물 되게 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제사장들이 성물을 먹기 전 자신의 정결을 점검하듯 일상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점검하는 부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2. 성물을 먹는 규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은 오늘을 사는 나에게 어떻게 다가옵니까?
3. 종으로 팔린 자나 이혼, 사별 등을 겪은 제사장의 딸을 제사장의 식탁에 참여시키는 하나님의 돌봄과 위로는 누구에게 필요합니까?
4. 나를 거룩하게 하며 나와 함께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향해 눈을 들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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