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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레위기(새벽)

레위기 26:1-13

레위기 26:1-13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레위기 26장은 레위기 전체를 마감하는 결론적 성격을 지닌 장으로서 율법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른 복과 저주를 선포하고 범죄한 자의 회개에 따른 복에 대한 약속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오늘 본문은 세 가지 기본 율법의 요약과 율법의 순종에 따른 복을 약속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율법 준수 요청(1-2)

(1)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조각한 것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해 갖는 관심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형태의 명령문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는 ‘하지말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가지 형태의 명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들이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1절에 ‘자기를 위하여’란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짓 종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한 인간 중심의 종교라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만들다’는 뜻의 히브리어 단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인데, 이는 우상을 만드는 인간의 행위가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원어가 내포하고 있는 이러한 의미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이 자기를 위하여 만들어 낸 것은 헛되고 허무하며 쓸데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들이 섬기는 대상을 자기의 손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분명한 모순일 뿐만 아니라 가장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자기의 부족을 채워 줄 대상을 자기의 외적인 것에서 찾기 위해 신을 만들어 내는데 결국 부족한 인간이 만들어 낸 신은 그들의 부족한 모습 안에서 나온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1절에 ‘주상을 세우고’의 히브리어 원뜻 안에는 우상을 가나안 땅 안으로 들여놓는 행위가 포함 된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위한 신을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이방의 신들을 들여오는 것까지 막는 의미도 내포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다면 성경은 이토록 우상숭배에 대해 경고를 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 바라보고 따라가는 대상을 인간은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결국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닮아갑니다. 부부 또한 오랜 세월을 거쳐 서로 닮아갑니다. 하물며, 우리의 영혼이 우상을 섬긴다면 닮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형상, 즉 이미지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상을 닮든, 하나님의 속성을 닮든 어느 쪽으로든지 우리의 일상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이 만들어지고 완성돼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2)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2절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시간과 공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대상이 오직 한 분 하나님밖에 없음을 분명히 했다면, 2절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구별된 날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로 특별히 구별된 성소를 존귀하게 여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키며’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안식일의 규례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준행한다는 능동적인 행동과 더불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부정한 요소로부터 안식일을 방비한다는 수동적인 행동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또한 성소를 ‘경외하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두려워하다’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본문은 공포심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언제나 자기 멋대로 살아가려는 인간의 방자함과 패역함을 버리라는 의미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함이 더 원뜻에 가깝습니다.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두려워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세상에 내어주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죄성을 보여 주는 단편적 증거입니다. 묵상해 볼만 한 점은 하나님께서 2절에서 하나님 그 자체가 아닌 성소에 대한 경외를 요청하셨던 점입니다. 이제껏 주어진 레위기의 모든 규례가 당시 가나안 족속들이 자신이 살고 있던 그 지역에서 자신들의 신을 섬겼던 것과 달리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단 하나밖에 없는 중앙 성소를 중심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이 그 차이점이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의 규례와 본문의 성소의 규례를 지키는 것은 결국 여호와의 주님 되심을 알고 인정하는 삶의 예배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 타락과 부패는 바로 이 두 규례가 철저히 지켜지지 않는 데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적인 시간과 장소를 규정한 이 두 규례는 모든 율법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과도 같았었던 것입니다.

순종에 따른 복(3-13)

(3)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3절부터 13절까지는 율법을 지키는 데에 따르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복에 관해서 설명합니다. 이처럼 보통 율법에 관한 기술을 마친 후에는 일련의 복과 저주가 바로 이어 나열되는 것이 성경의 일정한 패턴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나 불순종이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핵심임을 보여 주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3절에서 표현된 ‘준행하면’이라는 단어는 한글 성경에는 한 단어로 번역되었지만, 원어 성경에서는 세 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걷다’,‘지키다’‘행하다’의 세 단어가 원어성경 3절에 등장합니다. 원어의 의미를 충실하게 반영하여 번역해보면 이와 같습니다 ‘만약 너희들이 나의 규례 안에서 걷고 나의 명령을 지키고 그것들을 행하면’ 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규례 안에서 걷는다’는 표현은 레위기에 주어진 율법이 추상적이 계율이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매우 실제적인 계율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은 추상적이거나 탈생활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 백성의 구체적인 생활을 지배합니다. 두 번째로 ‘지키고...행하면’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실천하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짓된 이방의 사상으로부터 요염되지 않도록 보존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복과 은혜가 말씀에 대한 준수에서 나오고 그 말씀 준수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입증한다는 것을 본 절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4-5)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비에 대한 약속이 복의 목록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은 비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에서 얼마나 윤택하게 살게 될지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땅은 제때 내리는 비와 어우러질 때만 그 비옥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아무 때나 내리는 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절하게 내리는 비에 대한 약속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자주 뉴스에서 늦은 비와 홍수와 가뭄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작물의 수확이 제 때 이루어지지 않아서 큰 손해를 입은 농가의 이야기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땅이 그 소산을 내지 않고 나무가 그 열매를 내지 않을 때 그러한 현상을 우리는 자연법칙의 단순 이변으로만 치부하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연 자체를 다스리시면서 자연법칙 위에서 다스리고 계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5절은 농부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인 추수가 풍성하게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신 것이며 더욱이 다음 추수를 위한 씨 뿌리는 일까지 약속된 것은 최고의 기쁨이 그들에게 찾아오리라는 것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풍성한 수확과 더불어 안전하게 그 땅에서 거주할 것을 약속하시며, 이스라엘의 안위는 군사적인 요소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신뢰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표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6-7)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의 원수들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6절은 풍성한 수확을 모두 마치고 농한기에 접어든 백성들의 평안한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이로 볼 때 본문은 하나님께서 많은 수확만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다음의 추수가 있기까지 농한기에도 모든 백성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영육 간에 풍성한 수확이 없는 시기를 지나는 우리의 삶에서 본 절은 하나님의 섬세한 개입을 소망할 수 있는 감사한 구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나운 짐승과 칼은 평안한 생활을 방해하는 요소로 표현된 목록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가나안 땅은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량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지정학적인 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안보적 측면에서 매우 불안한 위치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약속은 단비와 같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약속이었을 것입니다. 7절의 의미는 6절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평화가 결코 전쟁 없는 상태로만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로서 가지게 되는 평화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을 지키려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적극적인 노력과 순종이 뒷받침되어야 지켜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8-9) 또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8절은 아무리 많은 숫자의 적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뽑으신 소수의 군사로 파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는 백성이 악한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숫자가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인지에 대한 여부와 대장 되신 그리스도를 좇는 순종하는 자세를 가졌는지 아닌지에 달려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렵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교우님 계시다면, 자신을 지지해 주는 많은 사람의 숫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무장되어가며 준비되고 있는지 점검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9절에 ‘돌보아’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얼굴을 향하리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9절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0-12)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으로 말미암아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며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10절을 원어성경으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저장된 곡식을 새 곡식 앞에서 밖으로 가지고 나갈 것이다’ 이는 지난번 추수할 때의 곡식의 양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새로 추수할 때가 찾아왔어도 아직 곳간에 곡식이 많이 남아 있을 것 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로 인하여 연이어서 풍년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1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내용의 말씀을 하나님의 장막을 그들 가운데 두시겠다는 말씀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12절에 ‘행하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이리저리 걸어다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표현의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다니시면서 그들을 돌보시고 지켜 보시고 복 주시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13)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멍에’는 일차적으로는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을 가리키지만, 현재와 미래에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어김으로 지게 될 죄악의 멍에도 가리킵니다. 결국 ‘멍에’의 진정한 의미는 그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위기의 규례를 이토록 상세하게 모세를 통해 세워 주신 것은 애굽 안에서 노예의 멍에보다 더 무서운 바로 그 죄악의 멍에를 이스라엘의 어깨에서 내려 깨트려 버리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라는 표현은 노예 생활로 인해 굽어 있던 허리를 치료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과 그들이 당한 치욕을 씻으시고 명예를 회복시키시고 존엄성을 갖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온전한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받는 방법은 순종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환경과 처지와 조건이 어떻든지 간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은 주님 앞에 존귀한 자로 부름을 받고 복을 받는다는 것이 오늘 본문이 전해주고 있는 핵심입니다. 그러나, 죄인 된 우리는 순종이 너무도 어려운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순종이 참 행하기 힘든 일인 것을 시편, 잠언, 전도서 등의 시가서는 심리적으로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범죄하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잘 이해합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들은 잘 알고 있지만, 잘 행할 수 없고, 실수와 실패와 유혹에 빠져 적잖은 낭패를 볼 때가 많은 인생을 살아감을 셀 수 없이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순종할 수 없어, 완전히 순종하신 분의 의와 공로를 힘입어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완전히 행하라 하면 행할 수 없기에, 완전히 믿고 따르라 요청하신 하나님의 뜻과 방법이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일상이 나의 뜻과 다르게 펼쳐질 때에, 주님께 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간청하기 보다 주님의 뜻이 우리의 인생을 통해 선명히 드러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다 지키지 못해 탄식하고 애통해 하는 저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공로를 값없이 주셔서, 복을 기대하며 갈망하며 살아감에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때로는 주님의 공로에만 기대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나태함에 빠질 때도 있었고, 때로는 은혜로 받고 누린 부분들이 내것처럼 느껴져 공로로 여기며 교만함에 빠질 때도 있었음을 진실히 주님앞에 내어놓습니다. 주님, 부족한 죄인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주님의 뜻에 맞게 온전히 누리며, 감사하며 살도록 지혜와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좌로나 우로 치우쳐 잘못된 길로 가거나, 너무 절망하여 영적인 노예로 살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여, 세상은 알지 못하는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우상을 세우고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삶을 점검해 봅시다.
2. 안식일을 지키며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의 삶을 점검해 봅시다.
3. 주님께서 준행하라고 명하신 말씀들을 주님의 뜻에 맞게 지키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4. 영적으로 내 삶에서 애굽의 노예처럼 허리가 굽어 노예 된 부분은 없는지 점검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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