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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레위기(새벽)

레위기 27:14-34

 레위기 27:14-34 


찬송가 50장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집이나 토지를 드릴 때의 규례(14-25절)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권리는 소유권입니다. 세계사를 돌아봐도 역사를 이끌었던 핵심 주제는 소유권 싸움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지키는 헌법은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으며 민법도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결국 자기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듯 소유권의 이전의 과정을 규정하는 것은 중요하고 복잡한 일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레위기의 마지막 장인 27장은 사람이 하나님께 소유권을 이전할 때 지켜야 할 규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유권 이전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소유권 이전을 상호교환이 이루어지는 거래에 기반하지만, 하나님께 소유권을 드리는 것은 거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거래라는 단어를 사용하기가 무색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강권적인 은혜는 사람이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 은혜를 받고 자신이 한없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만이! 건강하고도 합당한 믿음의 반응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자원하여 드리는 봉헌 입니다. 죄인에 머물렀던 시절, 그렇게 손아귀에서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 소유권을, 눈을 들고, 손을 펴서 하나님께 경배의 재료로 올려드리는 그 믿음의 결단이 있을 때, 오늘 본문은 의미있게 다가 오는 것입니다.

(14, 15)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집을 성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하면 제사장이 그 우열간에 값을 정할지니 그 값은 제사장이 정한 대로 될 것이며 만일 그 사람이 자기 집을 무르려면 네가 값을 정한 돈에 그 오분의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자기 소유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릴 때에 다양한 방법으로 섬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14절부터 25절은 부동산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례가 나옵니다. 사람이 헌신의 표현으로 자기 집을 성소에 바칠 경우 제사장은 그것을 처분하여 성소의 재정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때 드릴 수 있는 집은 성 안에 있어서, 매매를 통해 영구히 소유권이전이 가능한 집이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집을 드리기로 했어도 다시 되찾고자 할 때에는 그 집의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이는 서원을 할 때 순간의 감정에 의존하여 하기보다 신중하고 무겁게 생각하고 결단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16-21)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성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하면 마지기 수대로 네가 값을 정하되 보리 한 호멜지기에는 은 오십 세겔로 계산할지며 만일 그가 그 밭을 희년부터 성별하여 드렸으면 그 값을 네가 정한 대로 할 것이요 만일 그 밭을 희년 후에 성별하여 드렸으면 제사장이 다음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따라 그 값을 계산하고 정한 값에서 그 값에 상당하게 감할 것이며 만일 밭을 성별하여 드린 자가 그것을 무르려면 네가 값을 정한 돈에 그 오분의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그것이 자기 소유가 될 것이요 만일 그가 그 밭을 무르지 아니하려거나 타인에게 팔았으면 다시는 무르지 못하고 희년이 되어서 그 밭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 되어 영영히 드린 땅과 같이 제사장의 기업이 될 것이며

‘기업된 밭’이란 이스라엘 각 지파대로 하나님께 선물로 나누어 받은 땅을 의미합니다. 본절의 ‘마지기’라는 말은 원어로 표현하자면 ‘씨뿌림’입니다. 단순히 면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리는 정도를 보고 값을 매기라는 것입니다. 보리 한 호멜지기는 약 220리터 정도의 부피이며 고대 근동에서 이 정도 양의 평균값은 한 세겔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보리 한 호멜지기를 파종할 수 있는 땅이면 일년에 일 세겔씩, 희년까지 사용한다고 봤을 때 은 오십세겔로 계산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희년이 지난 몇년 후에 밭의 값을 매길 경우에는 오십 세겔에서 일 년에 일 세겔씩 지난 횃수 만큼 값을 빼서 책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서원한 밭의 값을 책정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밭을 드린다고 해서 제사장이 그 밭을 직접 관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원 후에도 드렸던 사람이 계속 그 밭을 경작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수익금이 나올텐 데 거기서 책정된 밭 값은 성소에 내고 그 차익은 자신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서원했던 밭을 다시 무를 때에도 책정된 밭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 희년이 오기전에 이런 일들이 이뤄져야 했는데 여기서 시기를 놓쳐 희년이 지나게 되면 영원히 하나님의 성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하나님께 드린 밭을 타인에게 파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착오에 의한 매매도 있었지만 악의를 갖고 매수자에게 봉헌된 밭임을 속이고 팔았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소유권에 혼란을 일으키는 매매가 발생할 때 그 밭은 영원히 하나님의 성물이 되었습니다.

(22-25) 만일 사람에게 샀고 자기 기업이 아닌 밭을 여호와께 성별하여 드렸으면 너는 값을 정하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희년까지 계산하고 그는 네가 값을 정한 돈을 그 날에 여호와께 드려 성물로 삼을지며 그가 판 밭은 희년에 그 판 사람 곧 그 땅의 원주인에게로 되돌아갈지니라 또 네가 정한 모든 값은 성소의 세겔로 하되 이십 게라를 한 세겔로 할지니라

만일 다른 사람에게 밭을 사서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했다면 희년까지 계산해서 값을 산정 한 뒤에 하나님께 그 돈을 드려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밭은 영구히 성소의 것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희년이 되면 다시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렇듯 집이나 밭에 대한 규례가 구체적인 이유는 이것들이 사람의 인생에 토대가 되는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봉헌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겠지만, 그만큼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마음이 담겨 있기에 귀한 것입니다.

가축이나 소출을 드릴 때의 규례(26-43절)

(26-27) 오직 가축 중의 처음 난 것은 여호와께 드릴 첫 것이라 소나 양은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성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 만일 부정한 짐승이면 네가 정한 값에 그 오분의 일을 더하여 무를 것이요 만일 무르지 아니하려면 네가 정한 값대로 팔지니라

모든 가축의 처음 태어난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것을 서원의 예물로 드릴 수 없습니다. 심지어 낙타나 나귀처럼 부정한 가축의 첫 새끼도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부정한 짐승 자체는 예물로 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짐승의 새끼의 가치에 오분의 일을 더 하여 그에 상당하는 값을 성소에 드려야 했습니다. 이는 부정한 짐승이기에 드리는 일종의 보상금이었습니다. 또한 배상할 형편이 안되면 부정한 짐승을 팔아서 그 돈을 성소에 드려야 했습니다. 팔 때에는 이윤을 남겨 파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정해준 정가 대로 팔아야 했으며, 제 사장이 가격을 정해 주었다는 사실을 볼 때에 그 판 돈을 성소에 드려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8-29)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여기서 ‘바친 모든 것’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헤렘’은 인간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전혀 없이 완전히 바쳐지는 헌물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헤렘으로 바쳐진 것은 팔지도 무르지도 못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지극히 거룩한 성물이 되어 성소에서 사용되어졌습니다.
특별히 헤렘 중에서도 29절에 나오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한 사람이 아니라, 전쟁 중의 발생하는 헤렘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 전리품을 헤렘으로 바칠 때는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 혹은 짐승 이든 모두 죽이거나 태워서 없애야 합니다. 사람이 헤렘으로 바쳐진 사례는 사악한 죄를 저지르거나 신성을 모독하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여리고 성 전투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30-34)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아는 십일조에 대한 규례가 나옵니다. 모든 소출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농산물은 정량화시켜 십일조를 추려내는 것이 쉬웠지만 가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소나 양이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할 때 열 번째의 것마다 하나님께 드려져야 했습니다. 여기에 사심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열번째 짐승이 실하고 튼튼하다고 하여 다른 짐승과 바꿔치기하면 두 짐승 모두 하나님께 바쳐야 했고 이것은 무를 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레위기는 하나님께 자원하여 드리는 봉헌물에 대한 규례로 마무리 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표현하지만, 그 드리는 것 조차도 전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배하며 내게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린 자녀들이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모아 작은 선물을 부모님께 드립니다. 그 부모가 기뻐하는 이유는 그 선물이 탁월해서가 아닙니다. 그 선물에 담긴 자녀의 고백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리고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는 것을 알기에, “너무나 보잘 것 없지만, 주님. 이것으로라도 우리의 마음을 받아주옵소서.” 그 고백의 몸부림이 봉헌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그 하나님을 눈을 들어 바라보십시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들에 감사하며 나의 물질과, 건강과, 시간과, 마음을 기쁨으로 주님께 올려드리는 복된 신앙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 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미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내게 있다 하여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왔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겸손과 감사함으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께 소유권을 이전할 때에 인색한 마음이 아닌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드리게 하시고 더 많은 감사의 제목들로 우리 인생이 가득 채워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헌신과 봉헌이 하나님 나라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사용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감사할 것이 없어 보여도 차분하게 돌아보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나의 모든 것은 나의 소유이기 전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 사실을 혼동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려했던 구체적인 경험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3.물질 외에도 내가 하니님께 드릴 수 있는 내 삶의 십일조의 요소들은 무엇입니까?
4.오늘, 서원에 대한 레위기의 정신을 잘 드러내며 살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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