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1-17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노아 가족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1-7절)
인간의 타락과 불순종은 온 세상을 대홍수의 심판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이 심판 때문에 온 인류는 멸절되었지만,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버린 이 세상에서 노아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가고자 하십니다. 이 새벽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하신 구체적인 복이 무엇입니까?
(1-2)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족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모든 동물들을 ‘너희 손에 붙였다’라고 하시며 다스릴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해 주셨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직후에 베풀어주신 복을 연상케 합니다. 다만 여기에 다른 점이 있습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 동물들은 인간에게 자발적으로 순복함으로써 아름답고 평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았습니다. 반면에 죄의 유입과 홍수 심판이 있은 후부터는 동물들이 인간을 두려워 함으로써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죄가 모든 자연의 화평한 질서를 깨뜨린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향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을 향한 복 주시길 원하는 그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7절에서 또 한번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는 반드시 심판하실만큼 미워하시지만, 그분의 은혜를 입은 백성을 향해서는 한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3-4)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족이 살아갈 구체적인 환경도 준비시켜주십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채소만 음식으로 허락하셨지만 홍수 이후에는 동물도 먹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홍수로 인해 자연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을 것이므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채소가 줄어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단서가 있습니다. 고기를 먹을 수는 있으나 피째는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5-6)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5절에서 피는 곧 생명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피째 먹지 말라는 것은 보건적 이유나 윤리적 이유를 초월하여 그것 자체가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피째 고기를 먹지 않는 행위를 반복할 때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임을 기억하고 그 생명을 귀하게 여김으로써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대홍수 이전,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에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았던 세상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는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노아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인류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그분이 만드신 피조세계를 그분이 세우신 질서에 맞게 다스리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진짜 복인 것입니다.
나에게 허락하신 그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으며 또한 다스리고 보존하라고 주신 피조세계 입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실 때 이러한 관점으로 가족과 이웃을 품고 사랑하는 교우님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언약의 증거로 주신 무지개(8-17절
(8-10)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뉴스를 통해 보셨겠지만 한 도시가 홍수에 잠긴 뒤 물이 빠지고나면 어떻습니까? 무너진 시설들과 온갖 쓰레기가 널부러져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 있습니다. 노아 역시, 홍수 심판은 면하였으나 그가 직면해야 세상은 홍수가 할퀴고 남긴 황폐함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다시 살아가야할 지 막막한 노아에게 하나님께서는 거듭하여 복된 장래를 보장하는 언약을 맺어주십니다.
(11-12)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을 것을 노아에게 약속하십니다. 간혹 국지적 홍수가 날 때마다 그것이 하나님의 종말적인 심판처럼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이 말씀에 근거하여 본다면 그런 생각은 성경적 지지를 받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는 일은 더이상 없다고 분명하게 확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곧 심판 자체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6-7절을 보면 물심판은 사라졌지만 불심판은 분명히 있음을 증거합니다. 성도는 평온한 시기에도 심판이 있음을 인지하고 그때를 준비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더이상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심판 없음’으로 오해하며 그분을 만홀히 여기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13-16)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무시무시했던 대홍수의 심판을 경험했던 노아는 약간의 구름만 보여도 긴장할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구름 속에 가시적이고도 분명한 하나의 증거를 두셨습니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무지개 입니다. 구름을 보며 혹시 심판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빠질 때에 그 속에 숨겨진 무지개가 드러나면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신뢰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오늘 새벽에 17절까지 본문을 함께 살펴보면서 유독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입니다. 내가 주노라, 내가 심판한다, 내가 언약을 세운다, 내 언약, 내 무지개 등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내가 모든 것을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죄를 미워하셔서 대홍수로 심판하신 분이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이 땅에서 언약을 세우고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복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유일하신 통치자가 되십니다.
오늘 본문을 포함하여 성경은 거듭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심을 증거합니다. 심지어 우리의 구원의 문제조차도 우리에게 해결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친히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방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이 세상의 주인되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긴 호흡의 기도와 짧은 호흡의 기도를 통해 건강한 믿음으로 무장하고 현실을 바르게 직면하는 신앙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노아의 대홍수 사건 이후, 더 나아가 주님의 초림 이후,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기다리며 우리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홍수로 황폐해진 세상을 믿음으로 직면 했던 것처럼,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자리를 직면하며 그분의 놀라운 도우심을 경험하시는 우리 모든 교우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 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무시무시한 홍수 심판을 경험했던 노아에게 풍성한 자비와 은혜로 확실한 약속을 주시고 평안을 주셨던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신줄 믿습니다. 심판과 구원의 주권이, 그리고 이 세상의 유일한 통치권이 주께 있음을 고백하오니 험난한 세상, 믿음으로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허락하옵소서. 늘 동행하여주시고 언제나 선하고 복된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대림절, 우리의 말과 행동이 가족과 주변 이웃들에게 주님의 향기로운 사랑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권한을 남용하는 사례가 있다면 무엇이 있습니까?
2.지금 내 주변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봅시다.
3.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약속을 기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4.우리의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결단, 혹은 변화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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