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10-20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1장부터 11장까지는 ‘천지 창조’, ‘선악과’, ‘대홍수’, ‘바벨탑’, 이 네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한 처음 세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어 12장부터 50장까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기원-믿음의 족장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된 12장은 앞서 전한 네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한 처음 세상의 이야기를 마치고,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이스라엘의 기원-믿음의 족장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믿음의 조상으로 잘 알려진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2장의 전반부인 1절부터 9절까지는 아브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을 찾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는 가히 믿음의 조상으로서 합당한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오늘 본문인 12장의 후반부인 10절부터 20절까지는 믿음으로 조상으로 불리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아브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을 상징적 인물로서 더욱 잘 소개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 기록된 그의 행적은 생략하는 편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의 조상의 모습이라기에는 너무도 수치스러운 그의 모습을 구태여 전하신 이유는 무엇인지를 헤아리며, 본문에 담긴 그의 행적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애굽으로 이주하게 된 배경(10)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일은 생명의 위험을 스스로 자처하는 일과 같았습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자손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거기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후 그의 삶은 평안할 것만 같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함께 10절을 두 번 읽은 것과 같이 이 절에는 두 번 반복해 기록된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기근’입니다. 풍족한 먹을거리로 비만을 걱정하는 시대에 사는 오늘 우리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당시 기근은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재앙 중의 재앙이었습니다.
보통은 특정한 행위에 대해 기록할 때는 그 행위의 목적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목적이 아닌, 그 배경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람이 거류하기 위해(잠시 머물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간 목적이 아닌, 그가 애굽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문장의 처음과 끝에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라는 상황 진술을 통해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그가 처한 상황이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만약 오늘 저희가 아브람과 같은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가축들은 이미 죽어 나가기 시작했고, 나만 믿고 고향을 떠나온 식솔들은 주린 배를 움켜쥔 채로 나날이 파리해져 가고 있다면, 아마 저희도 머지않아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어 기록된 아브람의 모습은 그가 이타적인 이유로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아브람이었지만, 가나안에 도착해 그의 자손들에 그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힘입어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었지만, 심한 기근이 들자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도 약속도 제단도 등진 채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11-13)
(11-13)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에게 전한 말은 실로 당혹스럽습니다. 그는 애굽인들이 바로의 첩으로 삼고자 하는 여인이 유부녀인 경우에 그 남편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 된 사래에게, 부부라는 사실을 숨기고, 오누이 관계라고 속일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자신만을 믿고 가나안에 이어 애굽까지 내려가고 있는 아내에게 차마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아내마저 다른 이에게 넘겨주겠다는 그의 중심에는 고향 땅을 떠나면서 붙들고 있었던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지워진 것만 같습니다.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또 가나안에 도착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도 사라져 버린 것만 같습니다.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아브람의 삶의 자리에 찾아 든 심한 기근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 앞에서 신실해 보였던 그의 실체를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이제는 그의 중심에 있던 것이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가 맞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어쩌면 그의 중심에는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큰 민족을 이루고 싶은 욕망, 기름진 땅 얻고자 했던 탐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순탄한 우리 삶의 자리에도 때때로 극한의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만큼 우리의 실체를, 우리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가를 또렷이 보여주는 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금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매일 발표되는 확진자 수에는 귀를 기울이느라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에 소홀했다면, 어쩌면 우리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시선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가나안에 심한 기근이 들자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곱씹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뜻을 구하기보다는, 본능적으로 과거의 지식과 경험으로 삶의 자리를 채워갔습니다. 생존을 위해 약속의 땅을 등진 그에게, 생존이 최우선의 목표가 된 그에게, 더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애굽에 이르렀을 때(14-20)
(14-15)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아브람의 말대로 사래의 미모에 애굽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고관들은 바로에게 그녀의 미모를 칭찬했고, 바로는 곧 그녀를 궁으로 불렀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시 사래는 어린 소녀나, 젊은 여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람(아브라함)과 사래(사라)의 나이는 열 살 차이가 났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 땅을 떠났을 때가 75세(12:4)였기에 당시 사래는 최소 65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65세의 여인이 애굽 왕의 여인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미모가 얼마나 대단했을지를 가늠하게 합니다.
(16-17)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누이동생이라 속인 사래가 바로의 여인으로 궁에 들어가자, 오라비라 속인 아브람은 많은 예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이 일로 아브람이 아닌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여기서 재앙으로 번역된 원어는 נדלים(네가임)인데, 이는 נגע(네가)의 복수형이었습니다. 명사의 수를 정확히 구분하는 영어 성경(NASV-plagues, NIV-diseases)에는 이것이 복수로 기록되었습니다. 한글 성경을 보면 단 한 번의 큰 재앙으로 이해되지만, 이는 사실 큰 재앙이 반복해서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학자 중에는 이 큰 재앙들은 바로가 언약의 자손이 태어날 사래의 몸에 손을 댈 수 없게 만든 악한 질병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앞서 바로가 곧장 사래를 궁을 불렀던 결과를 통해서 그녀가 미모가 얼마나 빼어났을지를 확인시켜 주었던 것처럼, 여기서 애굽에 내린 큰 재앙이 무엇이었는지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그 결과를 통해서 그 재앙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이었을지를 확인시켜 줍니다.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바로는 아브람을 불러 ‘어찌하여’로 번역된 의문사(מה)를 두 번 반복해 사용함으로, 그의 잘못(죄)을 지적하고,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아브람은 사래를 오누이로 속이면 애굽에서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그러나 아브람의 예상과는 달리 도리어 그 속임수로 인해, 그는 목숨을 잃기 직전이었습니다. 즉시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 버릴 수 있는 노한 바로 앞에서 서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예상 밖의 명령을 내렸습니다.
(19-20)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바로는 아브람에게 그의 아내를 도로 데려갈 것을 전했습니다. 이어 바로는 그의 신하들에게 아브람과 그의 아내, 그의 모든 소유를 애굽 땅 밖으로 내보낼 것을 명했습니다. 바로는 즉시로 아브람과 그의 아내, 그의 모든 소유를 앗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화를 참아냈습니다. 바로의 이러한 행동을 통해 우리는 기록된 말씀(17절)대로 바로와 그의 집에 내린 큰 재앙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된 창세기 12장부터는 사건(천지 창조, 선악과, 대홍수, 바벨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던 이전과는 달리, 인물(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사건에서 인물로 그 방식은 변화되었지만, 이들이 강조하는 내용은 여전히 같습니다. 이는 창세기 1장 1절에 창조의 주체로 선언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앞서 믿음의 조상의 모습이라기에는 너무도 수치스러운 아브람의 모습을 보이신 이유를 헤아리면서 본문을 살펴보자고 말씀드렸는데, 본문에 기록된 아브람의 민낯은 자연스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나아가 그런 아브람까지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레 우리도 구원하실 하나님을 소망하게 합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분은 아브람도 이어 등장할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아닙니다. 매 순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은 그들의 삶에 동행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고난의 순간 필요한 것은 자승자박할 잔꾀가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구하며 인내하며 믿음으로 주님만을 더욱 힘써 바라는 것입니다. 이전보다 지금, 지금보다 앞으로 더욱 주님을 바르게 알아가기만을 힘쓸 때, 삶의 자리에서 나타날 극한의 고난은 틀림없이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을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약속의 말씀을 따라 도착한 가나안에 심한 기근이 들자 아브람이 보인 모습을 통해, 오늘 저희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입니다. 말씀에 힘입어 구원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주님만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때때로 세상의 지식과 방법에 시선을 빼앗길 때가 있음을 고백하며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가 주목하는 분은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했던, 존재할 누군가가 아닌, 예수님뿐이시라는 사실을 되새겨 봅니다. 임마누엘의 증거되신 예수님을 성탄을 기리며, 다시 오심을 대망하는 대림절을 보내며, 이전보다 주님을 더욱 바르게 알아가는 한 날을 살아가는 은총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심한 기근과 같은 문제를 마주했을 때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정리해 보시겠습니까?
2. 심한 기근이 든 가나안에서 아브람이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3. 애굽에서 누이동생 사이로 관계를 속이자는 말을 듣고 사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4.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아브람, 바로,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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