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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27:1-29

본문 창세기 27:1-29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앞선 26장에서 이삭은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는 가운데 우물까지도 양보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을 통해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는 명실공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맏아들 에서는 그의 나이 40세 되는 해, 이삭이 100세 되던 해,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언약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습니다. 자기 스스로 언약의 계승자가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7장이 시작됩니다.

에서를 축복하기 위해 준비하는 이삭(1-4절)

(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6장에서 믿음의 내공을 보이던 이삭이 27장에 들어서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이때 이삭의 나이가 137세였으므로 26장과 27장 사이에 37년의 시간적 공백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든 137세의 이삭이 과거와 달리 믿음의 퇴보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37년 동안 이삭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한 채 영적 활동에 미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은 137세의 이삭이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눈이 어둡다는 것은 생물학적 연령이 듦으로 약시가 되었다는 것도 뜻하지만 근본적 의미는 영안이 흐려졌다는 의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엘리 제사장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3장 2절입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노인 엘리는 눈이 어두워졌고, 자기 처소에 누웠습니다. 반대로 어린 사무엘은 달랐습니다. 이어지는 3절입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사무엘은 하나님의 등불이 환하게 켜져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습니다. 자기 처소에 누우며, 자기 자신만 바라보는 엘리는 눈이 어두워졌지만 여호와의 전 안에 누우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무엘은 영안이 밝았습니다. 이처럼 밤낮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영안이 어두워지고, 늘 깨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영안이 맑아집니다. 이는 노인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명기 34장 7절입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마지막 숨을 내쉬며 숨을 거둘 때에도 모세는 눈이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호흡 때까지도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기력 즉, 몸의 강건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눈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맑은 영안과 더불어 몸과 영혼이 강건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눈이 어두웠습니다. 그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 바라보며 지냈습니다. 그 결과 몸과 영혼이 병들어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여겼고, 언약의 계승자를 세우려 했습니다.

(2-4)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삭은 죽음이 임박했다고 느꼈지만 이후로도 무려 43년이나 더 살다가 180세에 죽었습니다. 이삭은 자기 자신만 바라보며 눈이 어두워지고 나니 몸의 염려가 지나쳐 죽음의 걱정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윗사람이 죽은 나이를 기준으로 10년 전, 후를 자신의 수명이라 여기고 후대에게 유언적 성격의 축복을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이삭도 자신의 이복형 이스마엘이 14년 전 향년 137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기에 자신이 137세가 되는 해에 죽음을 더 깊이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진 이삭은 몸뿐만 아니라 영혼도 병들었습니다. 3절과 4절에는 이삭 자신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 ‘나’가 5번 나옵니다. 한글로는 번역이 안 된 원문 속 2번의 ‘나’를 포함하면 이삭은 짧은 문장에 ‘나’를 7번씩이나 외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삭은 눈이 어두워져 자기밖에 모르는 옹졸한 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삭이 자기 자신만 알다보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에서는 명백히 언약의 계승자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25장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어린 자, 즉 둘째 아들 야곱을 통해 언약을 이어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에서 또한 장자권을 가볍게 여겨 야곱에게 팔아넘길 뿐만 아니라 이방 여인과 결혼함으로 언약의 계승자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이 모든 사실에 눈이 먼 채 오로지 자기 뜻만 바라보며 에서를 언약의 계승자로 세우려 했습니다. 그렇게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벗어나 자기 뜻을 이루려고 고집피우자 그의 가족 모두가 허물어지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야곱이 축복받도록 준비하는 리브가(5-17절)

(5-6)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본문은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라며 의도적으로 ‘그의 아들’이라는 어구를 추가하여 기록했습니다. 아들로 쓰인 히브리어 ‘뻰’은 젊은이, 신하, 손자, 양자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데 그 중 ‘아들’로 쓰이면 ‘사랑하고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이삭이 에서를 지극히 사랑했고, 리브가가 야곱을 지극히 사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앞선 25장에서 이미 시작했던 편애의 골이 더 깊어진 것입니다.

편애의 골이 깊어진 데에는 이삭과 리브가 부부 사이의 소통이 단절된 것이 한몫했습니다. 5절에 나온 ‘들었더니’는 엿듣다는 의미입니다. 이 동사가 능동태 분사형으로 쓰였는데 이는 목적을 갖고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즉, 리브가는 이삭과 에서의 대화를 우연히 1회적으로 엿들은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반복해서 이삭의 말을 엿들어 왔습니다. 부부간의 정상적인 소통이 끊어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장면은 결혼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이상적 모델입니다. 그런데 둘의 노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아무리 과거에 번제물로 바쳐지기를 거부하지 않았던, 아내의 출산을 위해 20년 동안 기도했던, 우물을 양보했던 그의 믿음은 현재 비었습니다. 리브가가 과거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 고향을 떠나 결혼을 감행했던 현재는 믿음이 바닥이었습니다. 이처럼 둘의 믿음이 바닥난 것은 소통의 단절로 드러났고, 편애로 이어졌습니다. 믿음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인물이라 여겨지던 이삭도 리브가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코로나 3년차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코로나 이전의 과거 신앙을 향수하며 지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현재 우리 믿음의 상태를 직면하고, 우리 자신이 아닌 도우시는 하나님께 속히 눈을 듦으로 날마다 깨어있는 현재형 믿음을 지니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이삭과 리브가, 두 부모가 영적으로 무너지자 그 여파는 자녀에게 전달됐습니다. 리브가는 가족 간에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했습니다.

(8-10)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리브가는 아들 야곱에게 사기를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것도 옆집 아저씨가 아닌 자신의 친아버지를 속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지금 리브가에게는 속임 당할 이삭도, 축복을 빼앗긴 채 억울해 할 맏아들 에서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야곱을 언약의 계승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목적이 아무리 바르게 보인다 하더라도 그 수단과 방법이 불의하다면 결코 옳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분아래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일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이야말로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에 맞는 정직하고 깨끗한 방법으로 일해야 합니다.

올 해 신년0시예배 때 교육관 앞 대로에 주차가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차량봉사팀에서 교육관을 사전 방문했습니다. 대로변 주차는 주말, 공휴일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주차가 가능하다는 것을 아시고서는 자정에 차량 통행량이 적다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모색하여 안내하셨습니다. 이처럼 예배라는 거룩한 목적일수록 깨끗하고 정직한 방법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자신이 사랑한다고 여기는 아들에게 불의한 방법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영적 무너짐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잠시 거절하는 것 같던 야곱은 이내 엄마와 손발을 맞추어 공모를 꾸몄습니다. 사냥에 나간 에서가 돌아오기 전까지 모든 일을 마쳐야했기에 리브가와 야곱은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15-17)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리브가는 세상에서 이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이삭에 대한 정보를 이삭 속이는 데에 씁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야곱을 만져볼 것을 대비해서 염소 새끼 가죽을 야곱의 몸에 붙였습니다. 또한 이삭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특식을 만들었고, 냄새 맡을 것을 대비해서 에서의 좋은 의복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리브가가 예상했던 대로 행동했고, 결국 속아 넘어가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리브가가 그른 작심을 하자 그녀가 가진 것들이 가족을 해하는 데까지 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한 것들이 우리의 악한 작심으로 인해 오용되지 않도록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렇게 모든 계획과 준비를 마친 리브가와 야곱조는 이제 실행단계에 옮깁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받는 야곱(18-29절)

(18-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거짓을 명령한 리브가로 인해 아들 야곱은 자기 아버지를 속입니다. 그런데 이삭도 순순히 속지는 않습니다. 의심조의 질문을 수차례 던집니다. 그럴수록 야곱의 거짓말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야곱은 급기야 하나님의 이름까지 빙자하며 거짓말했습니다. 물놀이 할 때 물에 들어가기까지가 어렵지 한 번 들어가고 나면 금세 온 몸이 물에 젖습니다. 이처럼 죄도 한 번 짓기가 어렵지 그 이후로는 손쉽게 죄의 길에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완전한 죄인으로 죄의 노예 되어 지내던 우리가 죄를 죄로 여기고, 죄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언약의 피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함으로 성령께 속하게 했습니다. 혹시 성령께서 마음의 찔림과 책망을 주시는 곳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언약의 피를 믿음으로 회개하십시오. 요한일서 1장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는 쉬이 넘어지고 무너져도 미쁘신 하나님은 십자가 언약에 근거하여 우리를 신실하게 용서하십니다.

결국 이삭은 리브가와 야곱의 치밀한 사기극에 속아 야곱을 축복합니다.

(27b-29)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풍성한 소산과 전쟁에서의 승리, 부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았던 복을 야곱에게 빌어줍니다. 이삭이 아무리 자기 뜻으로 에서를 언약의 계승자로 세우려 했어도 하나님은 작정하신대로 당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언약을 신실하게 이뤄가는 분이십니다. 눈이 어두워져 자기 자신만 알뿐 하나님은 잊었던 이삭,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불의를 불사하던 리브가, 하나님의 이름까지 망령되이 일컬으며 거짓말하던 야곱, 그리고 살기에 가득 찬 에서까지 이삭의 가정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입니다. 그러나 콩가루가 된 이삭의 가정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세우신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지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던 언약 가문, 아브라함-이삭-야곱의 가문은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언약을 계승해가며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하늘의 통로로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에서 외인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우리는 하나님과 상관없던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그때에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언약을 완성시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의 계승자로 우리를 세우시고, 만방에 구원의 복을 알리는 생명의 통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언약을 경히 여겼던 이삭과 에서처럼 십자가 언약을 눈에 보이는 세상 영광보다 못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습니까? 반대로 언약을 인간적 의로 이루려 했던 리브가와 야곱처럼 혹시 우리도 십자가 언약이 아닌 우리의 의를 내세우며 교만하지는 않았습니까?

마귀는 우리에게서 십자가의 언약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천하만국의 영광을 미끼삼아 우는사자처럼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죄의 세력을 멸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참여시켜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의 허물이 아무리 주홍 같다 해도 십자가 언약은 이와 무관하게 하나님 편에서 신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도 그분이 이루신 십자가 그늘 아래 머물며 우리 영혼이 쉼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저 천국에서도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높이는 우리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 도
언약의 하나님, 우리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언약에 근거하여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십자가의 언약을 이삭과 에서처럼 경히 여겼다면, 또는 리브가와 야곱처럼 자의로 해석하며 스스로 이루려 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오늘도 십자가보다 앞서지 않고, 그 아래 머물며 언약의 하나님을 세상에 전하길 원합니다. 이를 통해 과거형 믿음이 아닌 현재형 믿음으로 늘 깨어있는 그리스도인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언약의 피로 우리를 새롭게 해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성경은 이삭 인생의 37년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올 해 나의 삶이 하나님 앞에 허무한 인생이 아닌 진리로 엮어지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합니까?
2. 노인 이삭과 엘리는 눈이 어두웠던 반면 노인 모세는 눈이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늙어서도 맑은 영안을 갖기 위해 오늘 나의 눈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3. 리브가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불의한 방법을 감행했습니다. 일상에서 좋은 명분 뒤에 숨어 거짓과 불의를 저지르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십시오.
4. 부모의 영적 무너짐이 자녀에게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가정 안에서의 자리는 무엇이며, 그 자리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5. 우리 가족 안에 십자가 언약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가족을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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