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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28:1-22

 창세기 28:1-22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장자의 축복권을 가로챈 야곱을 향한 에서의 분노가 악한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리라는 말을 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야곱을 외가로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외가로 보내려고 한 것은 에서의 분노를 멈추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보내는 명분은 리브가와 달랐습니다. 이삭의 명분은 가나안 여인을 더 이상 집에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삭이 야곱을 외가로 보내기 전 야곱에게 했던 당부와 그 당부의 내용을 알게 된 에서의 행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1-5절)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이삭이 아내 리브가의 제안을 듣고, 야곱을 외가로 보내기 전에 야곱을 불렀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서 한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야곱을 축복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당부한 일입니다. ‘당부하여’에 해당하는 원문을 보면, 명령의 의미가 있습니다. 명령과 같은 아버지의 당부는 아들에게 가나안 땅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삭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첫째 며느리로 인해 근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창26:35).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은 가문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한다는 측면도 있었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형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곧 가정의 평화로 이어짐을 잊지 마십시다.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밧단아람’은 직역하면 ‘아람의 평야’라는 뜻입니다. ‘밧단아람’의 대표적인 성읍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났을 때 머물렀던 ‘하란’이 있습니다. 이곳에 아브라함의 형제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 아내를 맞이하라고 한 것은 자신이 거기서 맞이한 아내 리브가처럼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아내를 맞이하라는 뜻이었습니다.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전능하신 하나님’에 해당하는 원어는 ‘엘 솻다이’입니다. 야곱과 그의 후손이 생육하고 번성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약속,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약속을 아들 야곱에도 임하길 바라는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으로 주신 땅, 현재 이삭과 야곱이 거류하고 있는 땅을 차지하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삭과 야곱이 그 시점에서 머물고 있는 땅은 누구의 땅이었겠습니까? 이삭의 축복의 말을 보면, 그 시점에서 그들이 머물고 있는 땅은 그들의 온전한 소유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3절 하반절에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로 번역된 원문은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미래에 있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완료형으로 표현한 것은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미래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완성된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또 주목할 점은, 여러 족속에서 ‘여러’에 해당하는 원어는 ‘카할’인데, ‘회중’ 또는 ‘총회’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70인역 성경에는 이 단어를 신약시대 ‘교회’를 의미하는 ‘에클레시아’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삭의 축복은 야곱의 12지파와 그들의 후손들의 번성을 넘어, 신약시대 믿음의 후손인 교회까지 확장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복, 번성의 ‘산 증인’입니다.

5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야곱이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습니다. 라반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에서가 본즉(6-9절)

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에서는 자신의 받아야 할 축복을 야곱이 가로챘다고 생각하여, 야곱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지만, 부모님이 야곱을 외가로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맞이한 아내가 부모님에게 심려를 끼쳤음을 알았습니다. 7절 하반절에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는 단순히 기쁨을 주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에 해당하는 원어는 ‘나쁜’, ‘사악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불신자와 결혼을 합니다. 불신자와 결혼을 할 때는, 믿는 자가 불신 배우자를 끝까지 책임지고 주님께로 인도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명감이 없으면, 온전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에서는 부모님이 야곱에게 당부한 말씀을 듣고, 깊은 성찰을 통해, 가정을 바로 세우기에 힘써야 했었는데, 다시 한번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에서는 이미 결혼한 아내 2명이 있었는데,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은 바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있는 아내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맞이하였더라’로 번역한 원어는 성적 타락이나 이방인과 결혼할 때 등 나쁜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에서의 이러한 행동은 부모님에게 더 큰 근심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자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일을 알았다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바른길로 돌이켜야 합니다. 부패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어렵습니다. 먼저 부패한 마음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뉘우침입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10-15절)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0절부터 마지막절까지는 야곱이 하란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당부에 따라 브엘세바를 떠나 밧단아람의 하란으로 발걸음하였습니다.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졌다고 하는데, 그곳은 야곱이 집을 떠나 유숙한 첫날 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그곳을 의미하는 벧엘은 약 90km 정도 거리입니다. 걸어서 하루에 도달하기 힘든 거리입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었습니다. 야곱이 한 돌을 베개로 삼고 잠을 잤습니다.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하나님께서는 계시의 전달 방편으로 인간의 꿈을 사용하셨습니다.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 한 것으로 보아 사닥다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통로였습니다. 사닥다리는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닥다리 위쪽인 하늘 위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자면, 첫째는 ‘땅을 주겠다’(13절) 둘째는 ‘네 자손을 번성하게 해 주겠다. 그래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도록 하겠다’(14절) 셋째는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15절)입니다.
첫째,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둘째, 자손의 번성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오늘날 성도들을 포함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셨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출입을 영원히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엘 솻다이’ 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16-22절)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이 잠이 깨어 고백했던 말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특정 지역에만 계신 줄 알았습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신개념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삭막한 빈 들에도 계실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소부재(無所不在) 하신 이유는 ‘엘 솻다이’ 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되자, 그가 했던 반응과 고백이 다음 구절입니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두려워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어디든지 계시는 분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다 지켜보실 수 있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말과 행동을 포함해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고 바르게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곳이 좋은 건축재료로 만든 집이 아닌 ‘빈 들’이었지만,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고 하늘의 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님들이 지금 집이 없어 ‘빈 들’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 있는 곳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십시오. 지금 있는 곳이 하나님의 집임을 야곱처럼 깨달으실 것입니다.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후 했던 일은, 첫째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둘째는 서원을 했습니다. 20절부터 22절까지 서원의 내용이 마치 조건부 서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하나님께서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다시 조건을 걸어 서원할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서원에 해당하는 원문을 보면, 그것은 조건이 아닌 소망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를 원하고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길 원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잘 섬기겠습니다. 벧엘을 거룩한 장소로 삼겠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죽음의 위협을 피하여 도망하는 난민처럼, 빈 들에서 유숙하는 자처럼 어려움 속에 있을지라도 사닥다리 위에 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드십시다. 그럴 때 마귀가 천하만국을 보여줄지라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지금 있는 곳이 하나님의 집이고 하늘의 문임을 기억하고 ‘엘 솻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며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빈 들에서 초라하게 유숙하는 자와 같은 저희에게 사닥다리 되신 예수님을 통해 저희를 만나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닥다리 위에 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천하만국의 영광에 유혹되지 않고 오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말씀하신 약속의 땅을 향해, 저희가 인생길을 걸어갈 때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엘 솻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당부했던 말이 무엇입니까? 왜 그 말을 했겠습니까?
2. 불신 배우자 또는 불신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3.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한 당부를 에서가 듣고, 했던 행동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 야곱이 눈을 들어 사닥다리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소통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5. 야곱이 하나님께 했던 서원을 오늘날 나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부족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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