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야곱은 고단했던 타향살이를 마치고 자신의 고향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야곱의 고단한 인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세겜 성읍에 거주하던 야곱에게 일어난 험악한 세월(창 47:9)의 한 부분을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땅의 딸들을 보러(1-4절)
(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야곱이 라반의 집에 거하면서 얻은 자녀 중 딸로는 유일한 디나는 본문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후의 내용에서 그녀는 이름 없는 주인공,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주인공에 불과합니다. 이후 그녀는 야곱의 딸, 누이, 소녀라고 불릴 뿐 그 누구에게도 이름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레아가 야곱에게서 낳을 딸'이라고 디나를 소개합니다. 이는 추후 디나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에 대해 복수의 칼날을 펼친 시므온과 레위가 그녀의 친오빠라는 점을 상기시켜주기 위함입니다. 또한, 디나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에 대해 야곱이 왜 분노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힌트가 되기도 합니다.
야곱이 세겜에 정착한 어느 날 디나가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그 땅의 딸들'이라는 표현은 창세기 안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결코 그 땅의 딸들에게서 찾지 않았으며, 이삭도 야곱의 아내를 가나안 사람의 딸들에서 찾지 말 것을 당부하며 라반에게로 보냈습니다. 디나는 그 땅의 딸들이 아름다워 보였고,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구별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잠시 내려놓고,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던 그녀는 자신의 발걸음을 평생 후회하게 될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2)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야곱의 가족들이 정착하고 있던 곳에는 히위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몰의 아들이며 추장이었던 세겜은 디나에게 결코 해서는안되는 행동을 범합니다. 세겜의 행동을 문자적으로 표현하면 '그녀를 보고, 그녀를 붙잡고, 그녀를 눕히고, 그녀를 강간했다'입니다. 이 4개의 동사를 연달아 사용하며 세겜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포악한 사람인지를 고발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세겜으로 인해 야곱의 딸 디나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세겜의 행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3-4)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3절과 4절만 보면 세겜이라는 한 남자와 디나라는 여인의 로맨스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세겜의 포악성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서 증거하는 결혼에 대한 말씀 즉,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에 대한 역순이 일어났습니다. 욕망이 사랑에 앞서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폭력이 자행되는 곳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이 온전해 질 수 없습니다. 세겜은 디나를 '그 소녀'라고 표현하며 아버지께 결혼을 성사시켜 주기를 부탁합니다. 디나의 의견은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세겜에게 결혼의 이유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 전부였습니다.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한 여인을 짓밟는 죄악된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사람의 포악성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의 반응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5-29절)
(5)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세겜이 디나를 더럽혔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의 반응이 매우 이례적입니다. 아들들이 돌아오기까지 침묵하는 야곱의 모습이 추후 요셉의 옷을 집어들고 통곡하는 야곱의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 야곱은 아버지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 즉 슬퍼하고 분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잠시 후 자신의 두 아들인 시므온과 레위에게 분노합니다. 야곱이 분노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레아의 딸이 아닌 라헬의 딸이었다면 야곱의 반응이 달랐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야곱의 이러한 우유부단한 태도와 편향된 사랑은 추후 자녀들 간의 갈등으로 번지게 되는 불씨가 됩니다.
(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야곱의 아들들, 즉 디나의 오라버니들은 모두 슬퍼하고, 크게 화를 냈습니다. 이들의 분노가 정당했음을 지지해 주듯이 성경의 기자는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을 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부끄러운 일'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매우 심각한 도적적, 윤리적 기준을 범하는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즉, 어떤 경우에라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디나에게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야곱의 아들들은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8-12)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남자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은 침묵하는 야곱과 분노하는 야곱의 아들들을 향해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에게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 혹은 아들의 잘못에 대한 후회와 상대방에게 마음 깊이 용서를 구하는 태도입니다. 그 어디에도 사과의 표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앞서 디나에게도 동일하였습니다.
하몰과 세겜의 말과 행동에서 그들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세겜은 사교술이 전혀 없는, 다혈질적인 사내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그 소녀를 원했고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지 지불하겠다고 말합니다. 디나의 몸값을 지불하겠다는 세겜의 시도는 야곱의 아들들에게 누이를 창녀처럼 대하고 있다는 인상만 심어주었습니다.
그에 비해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교활하며 처세술이 뛰어나 보입니다. 자칫 깊은 갈등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기회로 삼고 서로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몰은 서로의 딸들을 주어 통혼할 것과 함께 어우러져 살자고 제안합니다. 하몰은 자신의 처세술로 이 위기를 기회를 바꾸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지만, 그는 야곱에게 기업을 주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야곱의 두 번째 침묵 합니다. 하몰의 제안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었음에도 거절하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야곱의 아들들이 나섰습니다.
(13-14)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야곱의 아들들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제안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누이 디나를 더럽힌 자들을 향해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노를 넘어 복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수의 도구, 속임수의 도구로 할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주신 것은 그와 그의 후손이 온 열방에서 따로 분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를 반대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겜과 합하기 위해 할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 복수에 눈이 먼 야곱의 아들들에게 속임수의 도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20-23)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그들의 성읍 문에 이르러 그들의 성읍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 그들이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데려오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
하몰과 세겜은 야곱의 아들들의 제안을 좋게 여겼습니다. 세겜 지역은 야곱 일행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 얼마든지 있었기에 이 일로 얻게 될 경제적인 이득까지 생각해보면 꿩 먹고 알까지 먹는 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몰은 야곱 집안과 교류하고자 하는 진짜 이유인 세겜과 디나의 결혼 이야기는 말하지 않고, 교류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만을 강조합니다. 세겜 사람들은 하몰의 말을 듣고 '호박이 덩굴째 굴러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굴러온 호박이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쓴 호박일 줄은 몰랐습니다. 야곱의 재산을 소유하려 했으나 오히려 자신의 생명과 모든 소유를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5-27)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야곱의 아들 중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를 받아 고통 속에 있는 세겜 사람들을 몰래 찾아갔습니다. 이들이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행한 지 삼일째 되는 날에 찾아간 것은 세겜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이때에야 비로소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때가 할례로부터 오는 고통이 최고조에 달해서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의 요청대로 할례를 받아 움직이지 못하는 세겜 사람들을 모두 몰살시켰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사람을 죽이는 비열하고 잔인한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을 몰살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야곱의 아들들은 모두 약탈에 나섰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증표를 속임수의 도구로 사용하며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고, 약탈이 자행하는 야곱의 아들들의 모습에서 더 이상 자신의 누이를 더럽힌 자들을 향한 바른 분노의 결과라고 보이는 어려워 보입니다.
옳으니이까(30-31절)
(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야곱은 뒤늦게 아들들의 만행을 알게 되었고 노발대발 야단을 쳐보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야곱은 본문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합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화가 난 것은 세겜 사람들을 속여서도 아니고, 그들을 죽이고 약탈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바른 행동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야곱이 화가 난 이유는 딱 한 가지, 이 일로 인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생명이 위협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에서의 군대를 두려워했던 야곱이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의 군대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3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본문은 아버지 야곱을 향해 아들들이 던진 질문으로 마무리합니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라는 질문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정당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니 우리가 여동생의 복수를 행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무책임함을 비난하는 말로도 이해됩니다.
함께 살펴본 창세기 34장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어디에도 하나님은 등장하지 않으시며, 그 누구도 주어진 상황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지만 결국 그들의 삶에 맺은 열매는 부끄러움 뿐이었습니다.
오늘날 누군가는 야곱의 딸 디나처럼 잠시 눈을 돌려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가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겪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세겜처럼 육신의 정욕을 앞세워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다른 사람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또 누군가는 하몰처럼 위기를 기회로 여기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협상하며 다른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합니다. 또 누군가는 야곱처럼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기에 불의에 대해 침묵하며, 뒤로 숨지만, 자신의 안전이 위협되면 불같이 화를 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야곱의 아들들처럼 분노가 복수로 이어져, 하나님의 약속을 속임수의 도구로 삼고,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며,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여깁니다.
큰소리치며 굳건한 베드로가 닭 울음소리에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결코 자신의 힘으로 주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던 것처럼, 오늘도 겸손이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야곱과 그의 가족이 약속의 땅에 무사히 도착했으나 그 누구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백성 다운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속할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결코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정당화하기에 바쁜 우리를 말씀으로 일깨워주시기에, 어떠한 삶의 자리에 놓일지라도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사랑의 증인으로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무고한 사람들을 향한 폭력이 여전히 이 땅에 만연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그 열매를 복수와 부끄러움 뿐입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는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통곡하며 회개함으로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교만하고 완악하며, 연약하고 나태한 우리를 말씀으로 일깨워주셔서 부끄러운 열매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맡겨진 삶의 자리를 채워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야곱의 딸 디나처럼 평생 후회할 잘못된 발걸음은 나에게 없었는지 묵상해 보세요.
2.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목적 삼은 세겜과 하몰의 결과는 어떠했나요?
3. 편향된 사랑과 자기 안위를 중요하게 여겼던 야곱이 디나의 소식에 어떻게 반응했나요?
4. 분노를 넘어 속임과 복수, 살육과 노략에 빠진 야곱의 아들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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