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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35:1-15

창세기 35:1-15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벧엘로 올라가자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나기 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의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31:13). 하나님의 말씀대로 외삼촌 집에서의 타향살이를 마감하게 된 야곱의 우선순위는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세겜에 자기가 살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해 우릿간을 지었다고 증거합니다(33:17).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에 정착한 야곱에게 딸의 강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히위 족속 하몰에 의해 야곱의 딸 디나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자 야곱의 아들들은 피의 복수를 이행했습니다(34:26). 야곱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음으로 경험하게 된 딸의 강간 사건과 아들들의 피의 복수극이 마쳐진 후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시금 벧엘로 부르셨습니다.

(1-7절)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야곱에게 사인을 보내셨지만 야곱은 그 사인에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1절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때 절망적인 현실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을 명하십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으로 도망치던 때에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았던 것을 상기시키시면서 다시금 그곳에서 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결국 정신을 차린 야곱은 가솔들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괴롭고 외로웠을 때 하나님의 손길을 강하게 체험했던 장소인 벧엘로 올라가자고 선포합니다. 벧엘은 야곱이 가장 진실되고, 간절한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했던 서원의 장소입니다. 야곱이 가솔들에게 선포한 내용을 2절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야곱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자신은 물론 가솔 모두가 선행해야 할 일을 이야기 합니다. 첫째, 이방 신상을 버리고, 둘째, 자신을 정결케 하고, 셋째,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선언합니다. 이방 신상을 버리라는 것은 낯선 신들과 관계를 끊으라는 의미입니다. 형상화된 신상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배척하는 모든 세력과 사상까지도 끊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은 자기 부친의 드라빔을 몰래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디나 일로 인해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성을 노략했을 때에 이방 신상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것을 결심한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지니고 있든, 자신도 모르게 지니고 있든 모든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알게 또는 모르게 우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가 우상이 될 수도 있고, 재물, 명예가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건강이나 미모가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 내게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우상이 있다면 단호히 버려야 합니다.

두 번째로 야곱은 가솔들에게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은 몸과 마음이 정결해야 함을 야곱이 강조합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순종을 상징하는 행위입니다.

마지막으로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는 것은 출애굽 직후에 모세에게도 내려진 명령이었습니다. 이 명령은 영적, 도덕적 정결 상태를 외형으로도 나타내라는 의미로, 회개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의복은 사람의 신분과 삶의 양태를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의복을 바꾸라는 것은 곧 현실의 삶과 신분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삶으로 전진하자는 것입니다.

자신은 물론 가솔들을 정비한 야곱은 벧엘로 올라갈 것을 선포합니다. 3절입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야곱은 자신이 당한 고난의 날에 친히 응답하시고, 온갖 괴로움 속에 있던 자신과 동행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약속드렸던 제단을 쌓으러 올라가자고 선포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벌인 피의 복수극으로 인해 두려움 속에 처해 있었으나 그가 신앙을 회복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야곱과 동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야곱과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들이 아무도 없었다고 5절 하반절에서 증거합니다.

마침내 야곱의 일행은 벧엘에 이르러 제단을 쌓고 그곳을 이름하기를 ‘엘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벧엘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벧엘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현존과 만났고, 현존하시는 하나님께서 야곱과 동행하시겠다고 언약해 주셨습니다. 홀로 외로이 벧엘에서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야곱은 20년이 지난 오늘 다시 가솔들과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8절) 벧엘로 회귀하는 야곱 이야기 중간에 리브가의 유모인 드보라의 죽음 소식을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8절입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가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어쩌면 이 구절은 없어도 무방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드보라의 죽음 소식을 전하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실 정도로 드보라의 삶이 아름다웠음을 알게 해 줍니다. 유모 드보라는 밧단아람에서부터 시집가는 리브가를 따라 헤브론 이삭의 집으로 왔던 사람입니다. 어떤 이유로 드보라가 야곱과 줄곧 함께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녀의 삶을 지켜보고 계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모를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습니다. 알론바굿은 상수리나무를 의미하는 단어와 눈물을 흘리다는 의미의 단어가 합쳐진 말로 눈물의 상수리나무, 통곡의 상수리나무라는 뜻입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의 죽음은 야곱에게 의미가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불효자였던 자신을 평생 그리워하던 어머니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이어 주던 마지막 고리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이 든 유모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묻어나오던 야곱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장사하는 의미였기에 야곱에게는 의미 있는 장례 일정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그가 족장이든, 유모이든 어떤 신분이었느냐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삶을 살아가므로 우리의 마지막이 모든 이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겨질 수 있도록 가꾸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드보라의 죽음을 통해 교훈 얻게 됩니다.

(9-15절) 야곱이 다시금 하나님을 의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이스라엘임을 강조하시면서 약속의 상속을 재확인해 주셨습니다. 10절에서 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야곱을 먼저 만나주시고, 브니엘에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벧엘에서 야곱의 이름을 재확인시켜주고 계십니다. 야곱도 응답으로 돌기둥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드리며,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15절). 같은 장소에서 하나님과 두 번의 만남을 경험한 야곱이 고백하기에 적합한 고백이었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전능의 하나님 되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번성의 복을 야곱에게 동일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야곱의 인생길에 언제나 동행하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야곱을 잊지 않으시고 다시금 믿음의 후손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야곱이 드렸던 것과 같은 고백을 하나님께 드렸던 언약의 장소가 있으십니까? 어느 인생길에 서 있을 때 그런 경험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하는 때는 우리가 행복하고, 평안한 때이기보다 야곱처럼 쓰라린 고난의 시기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하든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가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갈 때 우리의 고백도 야곱의 고백처럼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만약 주님과의 관계에 회복이 필요하다면 야곱처럼 주님과 만났던 언약의 장소를 다시 기억해 내시길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와 친밀히 만나기를 원하고 계신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기도
벧엘을 기억하도록 야곱의 인생을 인도하신 하나님, 닭 울음소리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도록 베드로를 인도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현재 주님과 회복이 필요한 여정을 지나고 있다면 이전에 주님과 친밀히 만났던 언약의 장소를 다시 기억하게 하옵소서. 주님과 다시 만난 그 자리가 바로 회개의 자리이며, 회복의 자리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의 삶이 하나님 사랑의 증인으로 더 아름답게 확장되는 복된 날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내가 지닌 우상이 있는지, 스스로를 정결하게 할 부분이 있는지, 바꾸어 입어야 할 의복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묵상해 보십시오.
2.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고 요청할 가족과 친지는 누구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3. 나의 주변에 드보라처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람은 누구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4.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해 주신 언약의 말씀이 무엇인지 살펴보시고, 그 언약의 말씀이 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5. 나는 오늘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고백할지 묵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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