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하나님의 지혜로 바로의 꿈을 해석한 요셉은 노예 신분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로의 임명이 있었고,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의 결혼을 통해 요셉의 지위는 더욱더 공고해졌으며, 마침내 7년 대기근의 해결사가 됩니다. 그러나 요셉이 총리가 되어 수많은 백성을 구원하는 이런 이야기들은 결코 요셉 개인의 흥망성쇠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온 나라를 구원하시기 위한 과정 가운데 요셉을 통해 일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본문은 굶주려 죽어가던 온 나라와 백성들이 요셉을 통해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애굽에 7년 풍년이 듬(46-49절)
(46-47)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이방으로 팔려온 이후 13년 동안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비록 종과 죄수로서 참혹한 고난의 기간이었지만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가정 총무로 있을 때에는 재정이나 행정 등의 실무를 익힐 수 있었고,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감옥에 있을 때에는 애굽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의미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다루어 가실 때 그것이 때로는 연단이고 훈련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단과 훈련은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기간이지만 그 순간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연단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통로가 되었으며, 삼십 세에 총리가 되기 전 기반을 닦아주었습니다.
요셉은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애굽의 온 땅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요셉의 해몽대로 일곱 해 동안 엄청난 풍년을 이루게 됩니다.
(48-49)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요셉은 7년 이후에 다가올 대흉년에 철저히 대비했습니다. 눈앞에 소출이 심히 많다고 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각 성 주위의 밭에서 거둔 곡물의 오분의 일을 그 성들 안에 저장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저장한 곡식의 양은 앞으로 극심한 흉년이 온다고 해도 적어도 7년 동안 먹어야 할 양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따라서 풍년 기간 중에 해마다 모아 둔 곡식은 애굽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 이웃 나라까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생명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한편 가나안에 있는 야곱의 가족들은 앞으로 대대적인 기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가족들을 생각하사 7년의 흉년 기간 동안 그들이 먹을 곡식을 요셉을 통해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미리 예비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허락해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완벽한 타이밍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십시다.
요셉이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음(50-52)
(50-52)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요셉은 풍년의 때에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통해 두 아들을 얻게 됩니다. 장자의 이름은 므낫세이며, 뜻은 ‘잊게 하는 자’ 입니다. 요셉이 과거에 겪었던 고난과 아버지의 집에서 겪었던 모든 아픔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잊게 되었다는 의미로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잊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고난과 상처 받았던 경험들을 기억에서 지워버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노예로 있을 때나, 죄수로 있을 때나, 그리고 총리가 되었을 때나 늘 한결같이 동행해주셨던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과거의 고난과 상처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가 너무나 끔찍해서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면 결코 ‘잊어버리다’라는 뜻으로 자녀의 이름을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자녀를 그 단어로 부르다보면 오히려 잊고 싶었던 과거가 떠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과거에 깊게 패인 마음의 상처는 인간의 힘으로 지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껏 우리의 인생을 사랑과 은혜로 다루어 오셨다는 것과 앞으로도 그렇게 다루어 가실 것을 진정으로 믿을 때 상처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 과거의 아픔과 고난으로부터 해방된 날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그 어떤 날보다 감격스러운 날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만난 날입니다. 죄에 눌려있었고, 세속적인 가치관에 포로가 되어있었으며,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로 신음하던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오사 자유와 은혜를 선포해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이 땅만 바라보던 우리의 눈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었으며, 상처로 얼룩진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옭아맨다고만 여겼던 고난과 상처는 오히려 복음을 더욱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게 해주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고난과 상처로 엎드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충만한 은혜의 해를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었는데, 뜻은 ‘기름진 땅’ 혹은 ‘두 배의 창성함’입니다. 장남 ‘므낫세’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사랑으로 다루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둔 이름이었다면, 차남 ‘에브라임’은 애굽 땅에서 자신을 지키시고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현재에 초점을 둔 이름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과거의 고난을 극복하게 하신 하나님을 잊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현재의 은혜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52절에서 애굽을 ‘수고한 땅’으로 표현합니다. 사실 단순히 수고한 땅 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고생과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고생을 딱 그 정도로만 요약합니다. 수고를 통해 성공을 이룬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수고를 드러낼 수 있을 만큼 드러내며 업적을 자랑합니다. 그 이유는 수고와 성공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며 그것만을 위해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아지는 것을 목적삼은 적이 없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있을 때에나, 감옥에서 죄수로 있을 때에나, 요셉은 자신과 동행하시는 주님을 신뢰했으며 하나님을 목적 삼았습니다. 요셉은 총리가 된 지금도 하나님을 목적 삼고 있으며 하나님께 둔 시선이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오직 번성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만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수고와 업적들이 있습니다. 주위에서 인정해 줄 때면 더 드러내고 싶고 더 높아지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때 그 마음이 유혹임을 분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만 드러내며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기억하십시다.
애굽에 7년 흉년이 시작됨(53-55)
(53-54)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요셉의 해몽대로 칠 년간의 풍년이 그치고, 이어서 칠 년간의 흉년이 찾아오게 됩니다. 흉년이 시작되면서 작물과 땅이 파괴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심각한 기근에 허덕이게 됩니다. 54절에서는 각국에 기근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칠 년간 찾아온 대기근은 애굽 땅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고대 근동 지방 전역에 대대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대기근으로 인해 수많은 자들이 삶의 희망을 놓아버린 채 굶주림 속에 죽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먹을 것이 풍족한 땅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애굽이었습니다. 이는 흉년의 때를 준비하게 하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그 말씀에 순종하여 풍년의 때에 곡식을 거두어 모은 요셉의 성실함의 결과였습니다. 풍년의 때에 흉년을 준비한 요셉과 좋은 일기만 계속되던 시대에 홍수를 준비한 노아는 모두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말씀을 철저하게 믿고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은 노아에 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노아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심판에 대비하면서도 전파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고 이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살았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이 땅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풀의 꽃과 같은 세상을 부여잡고 영원한 생명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럴 때 낙심하기보다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세속적 가치관에 눈멀어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자들에게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얻고 누린다 해도 주님이 부재한 죄인에게는 진정한 안식과 영원한 생명이 없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대를 향해 은혜의 해를 선포하신 예수님을 드러내며 영원한 안식은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55)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애굽에는 양식이 있었지만, 백성의 손에 있던 것이 아닌 각 성읍 창고에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바로는 식량에 대한 모든 재량권을 요셉에게 주었는데, 요셉의 해몽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며 더욱더 그를 신뢰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저장해 둔 곡식을 각국 백성에게 판매함(56-57)
(56-57)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요셉은 흉년을 대비하여 저장해 두었던 모든 창고를 열고 곡식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애굽 백성에게만 기회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기근으로 죽어가던 각국 백성도 양식을 얻을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백성이든 주변 국가의 백성이든 오직 요셉에게 나아올 때 양식을 얻을 수 있었고 요셉에게 부여받은 곡식을 통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흉년에 대비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과 각 나라 백성을 구원코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보며 영적 대기근을 겪고 있는 자들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애굽 백성이 요셉에게 찾아가지 않고는 양식을 얻을 수가 없었듯이, 영적 대기근을 겪고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신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요셉은 값을 받고 양식을 내어주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값없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또한 요셉은 이 땅에서의 생명을 구원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양식인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7년 간의 풍년 이후 7년 간의 대기근이 왔듯 눈 앞에 보이는 풍요로움도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잠시뿐인 안개와 같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향해 모든 것을 내어줄 것처럼 유혹해도 주님이 부재한 곳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참된 만족과 기쁨도 영원한 생명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으며 진정한 안식 또한 주님께 나아갈 때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아무런 자격 없는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도 주님 없이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알기에 주님을 찾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심으로 은혜의 해를 더욱더 선명하게 누리는 저와 교우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을 위해 요셉을 고난의 길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아무런 자격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은혜를 잊고 세상이 주는 만족과 유익에 마음이 빼앗겼음을 자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은혜의 해를 전파하심으로 영원한 희년을 누리게 하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기 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 된 각자의 삶을 통해 은혜의 해를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목적은 무엇인가요?
2. 므낫세의 뜻은 무엇이며, 그때 요셉이 했던 고백은 무엇인가요?
3. 요셉이 풍년의 때에 흉년을 대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4. 기근을 겪고 있는 모든 백성이 요셉에게서만 양식을 얻을 수 있었던 장면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떠오르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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