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베냐민을 만나다
곡식을 구입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갔던 요셉의 형제들은 기근이 지속되자 막내 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시점이 지난 상황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형제들의 막내를 데리고 와야만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 놓은 상태였지만 아버지 야곱은 막내아들 베냐민의 동행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심해지자 넷째아들 유다는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만 식량을 살 수 있다고 간곡히 말씀드려 베냐민의 동행을 허락받았습니다. 마침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동생 베냐민이 요셉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16절입니다.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요셉이 동생 베냐민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2년 전이었습니다. 베냐민이 갓난아기일 때 헤어졌기에 청년이 된 동생의 얼굴을 알지 못한 요셉은 형제들을 보자마자 베냐민부터 찾았습니다. 그리고 무리 중 가장 젊은이를 베냐민으로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동생이 눈앞에 있지만 요셉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청지기에게 점심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습니다. 마치 잔치를 하듯 짐승을 잡도록 명령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만난 기쁨을 드러내지 않고 먼 길을 온 형제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시켰지만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하는 요셉의 형제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8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요셉의 형제들은 기근에 곡식을 구하러 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터인데 자신들처럼 이방의 한 가문 사람들을 총리 집으로 안내하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첫 번째 곡식을 구입하고 난 이후 발생했었던 일, 즉 자신들을 정탐꾼으로 보았던 일과 곡식 자루에 자신들이 지불했던 돈이 발견된 일, 그래서 시므온이 포로로 잡히게 되었던 일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신변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청지기를 향해 변명하기 시작합니다. 19절에서 22절입니다.
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뿌리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아온 요셉의 형제들은 지난번 일에 대해 변명하며 자신들을 변호하기 바빴습니다. 총리의 집 가까이 오자 형제들은 자신들이 총리의 집에 억류되거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청지기를 ‘내 주여’라고 부르며 자신들에게 죄가 없음을 변명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은 요셉의 청지기는 불안으로 짓눌려 있는 사람들을 향해 23절에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청지기의 답변을 통해 그도 요셉의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자신의 집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철저히 훈련했음을 암시합니다. 예상 밖의 사람 청지기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요셉 형제들을 안심시키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계십니다. 청지기는 요셉의 형제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하며 인질로 잡혀있던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데려왔습니다. 비록 인질이었지만 매우 평안한 생활을 해 왔을 시므온은 형제들과 반가운 만남을 가진 후 해를 당할까 염려하는 형제들을 안심시켰을 것입니다. 이때까지 시므온도 총리 요셉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청지기는 형제들을 요셉의 집으로 안내한 후에 발을 씻게 해 주었습니다. 당시에 손님을 접대하던 관례가 발을 씻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청지기는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그들의 발을 씻게 하며 평안으로 유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타고 온 나귀까지 챙겨주었습니다.
마침내 정오가 되자 요셉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6절입니다.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형제들의 절을 받고있는 요셉이 열 일곱 살 때 꾸었던 꿈이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애굽으로 팔려와 종살이하고, 옥살이하는 동안 기억하지 못했던 오래전 꿈은 요셉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렇게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요셉이 꾸었던 꿈 이야기는 형제들의 시기를 받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요셉에게는 힘들고 고단하고 억울한 삶이었지만 한 인간의 일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일생을 하나님의 섭리로 이끄셨습니다.
형제들의 안부를 물은 후에 요셉은 자기를 가장 사랑해 주셨던 아버지의 평안을 물으며 생존해 계심을 확인하였습니다. 130세에 이른 아버지 야곱이 살아만 계셔도 좋겠다는 소망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 라헬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바라보았습니다. 29절입니다.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요셉은 베냐민을 ‘소자’라고 부르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었습니다. ‘소자’는 문자적으로 ‘아들’ 또는 ‘손자’, ‘아이’, ‘소년’이라는 뜻이지만 손아래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유일한 친형제인 베냐민을 친근감에 겨워 그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냐민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전한 요셉은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마음이 북받쳤다는 것은 심장이 녹아내릴 정도의 고통, 창자를 스스로 태우는 듯한 고통을 드러낼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심장이 녹아내릴 정도의 괴로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요셉은 급히 울 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만의 공간인 안방으로 들어가 울었습니다. 요셉의 울음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진한 그리움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주체하기 힘들 정도의 마음을 진정시킨 요셉은 음식을 차리라 명령합니다. 31~32절입니다.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시종들은 세 개의 상을 차렸습니다. 요셉을 위한 상과 요셉의 형제들을 위한 상, 그리고 배식하는 애굽 사람들을 위한 상입니다. 이렇게 상을 따로 차린 이유는 애굽 총리 요셉의 신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고, 애굽 사람들은 애굽 종교를 숭배하지 않는 이방인, 특히 히브리인과는 식사를 같이 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히브리인이 사육한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짐승을 잡을 때 사용한 도구나 식기조차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각자 자신들을 위해 차려진 상 앞에 앉았는데 요셉 앞에 앉은 형제들의 자리가 나이 순서에 따라 자리가 정해진 것을 보고 서로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33절입니다.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형제들이 서로 이상히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연히 배치된 자리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정확한 순서였기 때문입니다. 아직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요셉의 의도된 행위였지만 형제들은 애굽 총리가 점을 잘 치는 사람이거나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 정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상황은 이상했지만 정탐꾼으로 몰리거나 자신들을 노예로 삼으려는 상황이 아닌 지극한 환대에 그들은 즐거운 식사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요셉은 자신의 음식을 다른 형제들보다 베냐민에게 다섯 배나 더 나눠주었습니다. 요셉의 이러한 행동은 실제로 베냐민에게 더 많은 음식을 먹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손님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표하는 고대 근동의 상징적인 풍습이었습니다.
요셉이 베냐민에게 다섯 배나 더 많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보고도 형제들은 어린 시절 요셉 자신에게 보였던 시기심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학자들 중에는 요셉이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형들이 아직도 형제간에 우애하지 못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요셉이 베냐민을 더 환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형제들에게서는 더 이상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마시고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34절입니다.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본 요셉은 편애받던 자신을 팔아넘기던 형제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회개하고,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했음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총리 요셉의 인생도 순탄한 인생이 아니었지만 기근에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까지 오게 된 형제들 역시 고단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현재 한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지난 행동을 심판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기회를 틈타 휘두르려고 칼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샬롬을 살아가고 있는 요셉을 보며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샬롬, 평화의 사람으로 살 것을 주님께서 부탁하고 계십니다. 오늘 내가 평화를 구현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통해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드리는 오늘이길 소망합니다.
기도
요셉은 형들의 시기심으로 인해 노예로 팔렸고, 종살이하던 집에서 한순간에 감옥에 갇히며 옥살이를 해야만 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들이 눈앞에 있음에도 요셉은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평화의 사람으로 오늘 우리앞에 서 있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도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샬롬, 평화의 사람으로 하루를 살아내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힘주시고, 은혜 베풀어 주셔서 가식이 아닌 진실한 모습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내 삶 한 부분에 두려움과 근심이 떠나지 않고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2. 애굽 총리의 집 문 앞에서 자신들을 변호하는 요셉의 형제들을 묵상해 보고 오늘 내가 나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변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3. 주님께서 나를 위해 대신 지불해 주신 값에 대해 묵상해 보십시오.
4. 요셉의 환대의 범위와 나의 환대의 범위를 묵상해 보십시오.
5. 절제된 요셉의 모습을 보며 내 삶에서 절제가 더 드러나야 할 영역은 어디, 누구, 무엇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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