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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45장 1-15절

 창세기 45장 1-15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형들을 품은 요셉 (1-15)


요셉을 잃고 슬퍼했던 아버지에게 같은 고통을 줄 수 없다며, 막내 베냐민 대신에 기꺼이 자신이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애원하는 유다의 진심어린 간청과 아버지가 자신을 잃고 얼마나 슬퍼하셨는지를 알게 되자 요셉은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합니다(1). 그는 시종들을 모두 무른 후에 울었는데 바로의 궁정에서도 들릴 정도였습니다(2). 요셉의 울음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요?

첫 번째는 그가 형들에게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3)라고 묻는 것으로 보아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폭발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형들이 데려온 베냐민을 보고 얼마나 반가워했습니까! 유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죽을 줄 알고 슬퍼한 아버지를 생각하니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 울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에 감정이 복받쳐 울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게 하기 위해 베냐민을 볼모삼아 사건들을 전개시켰고, 형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아버지와 동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고, 요셉은 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목 놓아 울었습니다.

요셉은 놀라서 어찌할 바 모르는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4b-5) ...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분명히 형들이 나를 애굽에 팔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주시려고 나를 먼저 애굽에 보내신 것이기에 걱정하지 말고 자책하지 말라고 합니다.

(6-8)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흉년은 앞으로도 5년 동안 계속 될 것인데, 이 기근 속에서도 이스라엘의 생명을 보존하고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번성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형들을 통해 나를 이곳에 먼저 보내셔서, 나를 애굽의 총리로 세워주셨다는 놀라운 간증을 합니다. 대단한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을 죽이려 했고, 노예로 팔아넘기고, 아버지에게 거짓으로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아버지를 상심하게 했던 형들을 어떻게 이렇듯이 용서할 수 있을까요! 만약 요셉이 복수에 눈이 멀었다면 이스라엘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침략한 러시아를 향해 전세계가 비난하고 다양한 제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폭력은 문제 해결에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없고, 더 심각한 갈등과 피해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나라, 특히 러시아가 폭력을 멈추고, 평화적 대화를 통해 전쟁이 종식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발탁된 것이 30살이었고, 7년의 풍년 후에 온 지면에 흉년이 들었고, 흉년 2년째에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에 온 형들을 만났습니다(6). 17살에 애굽에 팔려왔으니, 그는 약 22년 만에 형들을 만났습니다. 요셉은 단박에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22년 만에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마주한 요셉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잊어버릴 지라도,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일을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요셉은 지금 당시 최대 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총리였습니다. 요셉은 사소한 이유를 대서라도 히브리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놓았고, 절도죄로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이 요셉임을 드러내지 않고 그들을 떠보았습니다. 이처럼 요셉이 형들을 단죄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창세기 42장 9절에 의하면, 요셉은 자신 앞에서 엎드려있는 형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어린 시절에 꾼 꿈, 즉 형들이 묶은 곡식 단이 자신의 곡식 단에 절하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 생각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 앞에서 엎드려있는 형들을 보고나서야, 하나님의 자신을 향하신, 이스라엘을 향하신 섭리하심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과거 자신이 꾼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살았다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는 자신 앞에 엎드린 형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단죄하는 복수의 화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이루기 위해 다음과 같은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9-11)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요셉은 앞으로 5년 더 남은 흉년을 대비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고센 땅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워두었습니다. 그런데 고센은 살기 좋고 편안한 애굽의 유명 도시가 아니라, 애굽 본토와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그가 왜 고센을 이스라엘의 임시 정착지로 택했는지는 46장 또는 47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고센 땅으로 이주하는 결정을 속히 내릴 수 있도록, 형들에게 애굽에서 자신이 어떤 영화를 누리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아버지에게 잘 전달하라고 합니다(12-13). 말을 마치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안고 울며 다시 만난 기쁨을 나누었고, 형들과도 입 맞추고 안고 울면서 형제간의 사랑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셉을 수식하는 대표적인 표현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다”(창 39장)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이 표현이 나타나는 시점은 야곱이 애굽의 보디발 장군 집에 노예로 팔려왔을 때입니다. 그는 믿음의 집안에서 태어나 믿음의 자녀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한 번도 하나님과 관련된 표현이 나타나지 않다가, 그가 노예로 팔려왔을 때 비로소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그가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했음에도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형제간에는 당연히 다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이 17살에 불과한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깊은 구덩이 속에 던져버렸다가 미디안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넘기고 아버지에게는 요셉이 들짐승에게 죽었다고 거짓말 했습니다. 즉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 속에서 형들에게 오만방자하게 행동했고, 그 결과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깊은 구덩이 던져버린 사건은 그의 인생에 터닝포인트(turning point)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집에서 아름다운 채색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광야의 흙구덩이 안에서 발가벗겨진 흙투성이의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죽음 앞에서 자신의 실체를 자각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내려놓은 그는 더 이상 오만 방자한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요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해서 그의 삶이 평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애굽의 총리가 되도록 역사해주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의 총리로 세워주신 이유를 총리가 된지 9년째,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만나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을 이 기근으로부터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 모든 순간에 걸쳐 역사하셔서 자신을 이 자리에 세우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사실 앞에서 요셉에게는 더 이상 형제를 향한 원망을 할 수 없었고, 형제를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유는 야곱의 후손인 유다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하심은 당연히 우리를 통해 주님을 모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뜻을 이루시고자 주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각자 삶의 자리에 보내셨습니다.

이 시간 뒤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 삶의 모든 순간 역사하셨음을 믿으십니까! 힘든 순간, 고통의 순간, 기쁨의 순간, 슬펐던 순간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고,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삶의 자리에서 부모님과 형제, 자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아끼는 복된 시간들로 채워가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요셉과 동행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주관해주시고, 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섭리하심을 깨닫지 못해서 주님을 원망하거나,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는 어리석기 그지없음을 용서해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께서 직접 세워주신 자리임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우크라이나 전쟁이 속히 평화적으로 종식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도록 분별의 지혜를 허락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요셉이 형제들 앞에서 대성통곡한 이유는?
2.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하게 된 이유는?
3.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까?
4.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5.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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