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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사도행전(새벽)

누가복음 4:1-15

누가복음 4:1-15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예수님께서는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신 이후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40일 동안 광야에 계셨습니다. 본문의 시공간적 배경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신 후에 성령께 이끌리어 40일간 광야에 계셨고 이스라엘은 홍해를 통과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40년간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이제 영적인 새 이스라엘을 시작하실 예수님께서 성령님께 이끌리어 광야에서 금식하며 사역을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1-2)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성령님은 광야를 피하는 길이 아니라 광야를 통과하는 길로 안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 내신 후에 곧장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광야로 이끄셨으며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살면서 애굽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에 자연스레 익숙해졌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출 4:22)이었음에도 애굽의 법 아래 몇 세대를 걸쳐 생활했기에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의 방식을 처음부터 훈련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약속의 땅은 광야라는 길을 지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연단을 통과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3-4)

광야에서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의 필요를 당장에 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마귀의 시험 내용은 금식 후 주리신 예수님의 상황에 합리적인 요청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쉬운 내용이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었고 충분히 돌들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실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100%의 신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100%의 인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금식 이후에 배가 고픈 상태였고 빈속이 채워졌을 때의 포만감이 얼마나 행복할지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마귀의 말이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내용이었음에도 마귀가 주님을 시험하였다고 표현하고 있음에 주목하길 원합니다. 주님은 창조 질서를 따라 본능적으로 배고픔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본능을 따라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을 따라 살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본능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는 배가 고픈 것을 느껴야 음식을 먹고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거식증은 배고픔을 느끼면서도 먹는 것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병적 증상으로 결국 영양 부족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본능은 우리 몸을 지켜주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본능의 목소리 보다 더 우선적으로 지키고 따라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주님은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단호하게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을 물리쳤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출애굽하였음에도 홍해를 통과한 후 얼마 가지 않아 먹고 마시는 문제로 모세를 원망했고 하나님께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라의 쓴 물을 즉시 단물로 변화시키실 수 있으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모든 이스라엘로 배부르게 하실 수 있으셨지만 의도적으로 마라의 쓴 물을 경험하게 하셨고 허기와 싸우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면 이전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으로 기대합니다. 분명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생명을 얻었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항상 세속적 가치와 기준에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마귀가 제시하는 과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도전하는 것이기 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사소해 보이는 결단을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우리는 당장의 결핍을 채우는 것 보다 더 우선적으로 붙들어야할 것이 있음을 깨닫기 원합니다. 본능은 우리의 몸을 보호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주님의 선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을 따르는 삶은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생명을 얻고 건강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결핍이 있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적으로 채워주시길 호소하기 보다는 자기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5-8)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은 세상의 모든 권력과 영광을 차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5-7)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5절에서 ‘천하 만국’으로 번역 된 헬라어 ‘오이쿠메네’는 동일한 시험 기사를 기록한 마태복음과는 다른 의미의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마태는 모든 피조 세계를 의미하는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누가는 황제가 통치하는 영역으로 번역 되는(눅 2:1) ‘오이쿠메네’를 사용하였습니다. 누가의 의도를 살려 마귀가 예수님께 약속하는 내용을 이해하자면 그것은 정치적인 권력과 영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이쿠메네는 코스모스 보다는 좁은 의미이지만 누가복음의 1차 독자였던 데오빌로를 포함한 로마 시대를 사는 성도들, 그리고 여전히 권력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피부에 와닿는 현실적인 보상입니다. 우리에게도 각자의 영역에서 남에게 통제 당하기 보다는 주도권을 갖고 싶어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권력욕이 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선과 악을 하나님이 정해주신 기준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정하는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할 것을 부추겼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맡겨 주셨지만, 그래서 아담은 마치 신과 같은 권세를 누렸지만, 아담이 기억해야 할 것은 그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 주신 것이며 그가 결코 주인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신명기 6장 13절을 인용하여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연히 내가 누리는 권리라고 생각하고 사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동시에 주님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교훈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지음 받은 그 목적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면에 아담적 탐욕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통제를 받기보다는 우리가 상황과 사람을 통제하고 영향을 끼치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간섭을 불편해하며 적당히 알아서 선택하고 결정하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마귀는 오늘도 우리가 권력과 영광을 차지하고 즐기도록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칭찬을 우리가 가로채 즐기는 모든 행위는 그것이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마귀에게 절하는 것이며 원어적 의미를 살려 표현하면 마귀를 예배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합니다(고전10:31). 우리가 겪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 되시며 우리의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때로 우리가 고난을 만나더라도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시며 피할 길을 내시는 주님(고전10:13)을 신뢰하며 여전히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두 번째 시험을 물리치신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일으키실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을 의미하거나 이 땅의 권력을 정복하는 것이 아님을 발견합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에게 요청 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머무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가, 우리의 오늘과 내일이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겸손히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9-12)

마귀는 세 번째로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시편 91편 11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하신 것처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전혀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시험하였습니다.

(9-11)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이와 같은 마귀의 시험을 언제나 마주합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항상 하나님께서 말씀에 약속하신 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주님은 신명기 6장 1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시라면 이렇게 저렇게 하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쉽게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상황이 전개 될 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기도 합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저마다 기대와 가치 기준으로 하나님을 평가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행동을 구속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대와 상황이 일치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없다.’고 결론 짓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람들은 오늘 마귀가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여 주님을 모욕하였습니다.

(마 27: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죽음을 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에 근거하면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저주 받은 것(신 21:23)을 의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죽을 일도 없겠거니와 나무에 달리는 것은 더욱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며 마치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 속에서 십자가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아무런 도움의 손길이 없었던 그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셨으며 오히려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마귀는 모든 시험에서 참패를 당한 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13).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으로 인해 지치시고 피곤하셨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광야를 통과해 갈릴리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대적하는 과정에서 어떤 초자연적인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셨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이란, 세상을 초월하는 삶이 아니라 혼탁한 세상 속에서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오신 주님에 대한 소문은 사방에 퍼졌고 주님의 가르치심은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14-15)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말로 시험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동일하게 찾아옵니다. 교회 밖에는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공부는 잘하는데 돈을 잘 벌지 못하는 아들은 국가 아들, 공부는 못하지만 돈은 잘 버는 아들은 친구 아들, 공부도 못하고 돈도 못 버는 아들은 내 아들. 공부도 잘하고 돈도 잘 버는 아들은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며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외국계 회사나 공기업에서 일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넘기는 농담에 오히려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우리의 상황이 우리의 기대와 다를 때에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때로는 부족한 물질이, 부족한 건강이, 돌아가는 그 길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고 우리를 낮추사 겸손한 삶을 살아가게 하고 오직 주님만 높이는 삶을 살게 합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주님의 말씀을 머리로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는 은혜를 누리길 원합니다. 낮춤과 섬김의 삶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르길 원합니다. 주님은 단순히 우리에게 시험을 이기는 모범, 십자가를 먼저 지신 모범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는 맏형, 큰 오빠로서 우리의 삶을 붙드시고 우리의 삶에 힘이 되어주셔서 오늘 하루도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을 욕망하던 모습을 회개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우실 것을 신뢰하며 부족함 속에서도 감사를 고백하게 하시고 고난 중에도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 승리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우리는 어떤 경우에 인생이 광야 같다고 느낍니까?
2. 광야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3. 마귀가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말로 시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예수님은 어떻게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까?
5.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마귀의 시험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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