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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누가복음(새벽)

누가복음 9:37-48

누가복음 9:37-48
찬송가 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내 아들을 돌보아 주소서(37-43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일을 혼자 하지 않으시고 열두 명을 제자로 삼으신 후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일을 시키실 때에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위가 잘 실행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37-43절은 이와 관련된 사건입니다.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이튿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 산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을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던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에 큰 무리가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께 절규하며 자신의 외아들을 돌보아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몸상태를 예수님께 알려줍니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귀신으로 인해 그 아들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귀신이 그 아들의 몸을 제어할 때에는 경련을 일으키고 몸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는 귀신이 아주 떠났다는 뜻이 아니라 귀신의 제어가 한동안 멈춰 아들이 경련하며 상하게 되는 일이 소강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들에게 이러한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기에 아버지는 아들이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요구했었습니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제자들은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은 그 아들을 고쳐주지 못하였겠습니까?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이 사건의 병행구절인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왜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마17:19下)라고 질문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종합해 보면 믿음의 기도가 없었기에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이미 그 능력을 받았지만 믿음의 기도가 부족해서 그 능력이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아들이 고침을 받지 못했던 이유가 제자들의 믿음만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아들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간청할 때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도와 주시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하는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아들의 아버지 역시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는 제자들, 아이의 아버지, 그리고 당시 사람들 모두였습니다. 손뼉도 마주칠 때 소리가 나듯이 주님의 역사하심은 고침을 받을 사람과 가족, 그리고 중보기도하는 사람 모두의 믿음이 일치할 때 나타납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공동체의 문제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본인의 믿음의 문제는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양쪽 모두의 문제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는 말씀을 듣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귀신은 아이의 몸에서 나가길 원치 않았기에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갈 때에 아이의 몸을 제어하며 저항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힘들게 데리고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주님께로 데리고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주님을 모르고 세속적 가치관에 의해 몸이 제어된 사람이 주님께로 갈 때에는 강한 내적 저항감에 부딪칩니다. 불신 가족이나 지인을 주님께로 인도하려고 해 보면 어렵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어려운 과정을 잘 이겨 그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한다면 그 사람의 문제는 해결을 받습니다. 우리는 아들의 아버지처럼 세속적인 가치관에 제어를 당하고 있는 사람을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로 인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목격한 후 ‘힘이신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갑작스럽게 자신의 수난 예고를 말씀하십니다.

장차 사람들의 손에(44-48절)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뜬금없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44절의 ‘이 말’은 무리의 말이며 ‘이 말’은 무리가 귀신을 내쫓은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위엄을 칭송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제자들에게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을 칭송했던 그 사람들이 나중에 예수님을 배반하여 십자가 죽음으로 넘길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말씀을 듣거나 보고는 예수님을 칭송할 수 있겠지만 믿음의 시련을 직면하면 언제라도 예수님을 배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주님을 믿고 따르며 칭송한다고 해서 나중에 주님을 배반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주님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마음속 깊이 주님을 경험하지 않으면 이 무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 역시 주님을 깊이 알지 못하는 무지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이해하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한계성을 다음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크냐(46-48절)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수난 예고를 들었음에도 제자들은 정치적 메시아가 이룰 왕국을 꿈꾸었으며, 그 왕국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마음으로 서로 누가 큰지를 두고 변론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변화되지 못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제자들의 이런 행동을 보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 어린 아이 하나를 옆에 세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결론은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역설의 진리를 알려주셨습니다. 어린 아이를 영접함이 주님을 영접함이고 주님을 영접함이 곧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온전한 인격체로 여기지 않았던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사람이라면 비록 자신이 사회적으로 작은 자로 취급받는 위치에 있을지라도 주님의 시선에는 큰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 역설의 진리를 깨닫고 자리 다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잘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높아지려고 할수록 인생은 허무해지고 비참해집니다. 이 땅에서 인생은 금방 지나갑니다. 짧은 인생을 권력과 명예를 위해 사람들과 다투는 것은 영생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에 자신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영접하는, 작은 자로 살아가십시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하신 말씀의 숨으로 오늘 하루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힘이신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능력을 받았지만 믿음의 기도가 약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가 되지 않도록 날마다 하나님 말씀의 숨으로 호흡하고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질병과 세속적인 가치관에 눌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하나님 말씀의 숨을 쉬게 하는 주님의 통로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높은 자리에 마음을 두지 않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 자신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영접함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작은 자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무리 중 한 사람의 아들이 귀신이 들렸습니다. 제자들이 이를 해결해 주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예수님께서 귀신에 의해 제어를 당하고 있었던 아이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그 문제를 주님께로 가져가면 문제의 해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로 문제를 가져가는 과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3. 무리가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보고 주님을 칭송하였지만, 훗날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음의 십자가로 넘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4. 제자들은 누가 크냐를 두고 변론했습니다. 제자들이 높아지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과 높아지려는 마음과의 상관관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5. 힘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면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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