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39-53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과 이어진 담화를 가지신 후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습관을 따라(39-46절)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습니다. 왜 감람산에 가셨겠습니까? 기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왜 새벽에 예배당에 나옵니까? 또는 왜 새벽에 일어나 각자 처소에서 인터넷으로 참석합니까? 특별한 사정이 있어 참석하는 분이 계시겠지만 대부분은 습관에 따라 참석하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특별한 사정으로 기도하기 위해 참석하였더라도 계속 참석하다 보면 새벽기도가 습관이 됩니다. 신앙생활에는 좋은 습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 하나님과 독대하는 홀로의 시간을 갖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 감람산에 갔습니다.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주님께서 감람산에 도착하셔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 유혹이 많기 때문입니다. 유혹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 세상에는 유혹이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이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유혹에 빠져 살아가면서도 유혹에 빠져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여기 왜 기도하러 왔습니까? 각자 기도 제목을 두고 기도하기 위함이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빠지지 않아야 할 기도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일상의 삶 가운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주님께서 하나님과 독대의 시간을 갖고자 제자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이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편안한 자세로 기도하는데 익숙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의자나 방석이 없었기 때문에 무릎 꿇고 기도하셨겠습니까? 기도자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기도하느냐에 따라 기도 자세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간절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할 때는 비록 무릎을 꿇지 않더라도 몸의 자세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주님의 기도의 핵심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내 생각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며 기도할 수 있지만 그 기도의 마지막은 주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내 원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내가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죄인들을 대신해서 희생 제물이 되셔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는 힘이 듭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신 뜻 사이에서 내적 갈등이 일어날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힘이 듭니다. 힘든 과정을 거치지만 힘이신 하나님께서 기도에 힘을 더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셔서 주님께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에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기도하십시다.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께서 하나님의 힘을 받아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아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더욱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기도하실 때에 땀이 핏방울처럼 땅에 떨어지는 간절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와서 기도한다고 하지만 주님의 기도를 생각해 보면, 우리의 기도가 힘쓰고 애씀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돌아오셨을 때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제자들이 잠든 이유를 슬픔 때문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왜 슬픔에 잠겼겠습니까? 그것은 감람산에 오기 전에 주님으로부터 제자들 중 한 명이 주님을 팔아넘길 것(21절)과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할 것(34절)과 주님이 불법자와 동류로 여김을 받을 것(37절)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이런 걱정으로 슬픔에 지쳐 잠들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마치 학생들이 평소에는 눈이 초롱초롱하다가 시험을 앞두고 공부할 때에 긴장감으로 지쳐 잠이 잘 오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잠든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감람산에 오셔서 먼저 하셨던 말씀,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와 같은 말씀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우리가 새벽에 일어나지 않고 좀 더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새벽에 잠을 설쳐가며 기도 시간을 갖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어떤 이유보다도 주님의 가르침대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이것까지 참으라(47-53절)
47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기도를 마치신 후 한 무리가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였습니다.
48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위해 어두운 밤에 무리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리고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그를 측은히 여기시는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왜 거짓과 탐욕의 입맞춤을 하느냐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49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무리를 본 제자들이 자기방어 차원에서 주님께 말했습니다.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사람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자기방어를 위해 상대에게 무력이나 언어로 공격을 가합니다. 자기방어가 정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면 행동을 하기 전에 주님의 뜻을 먼저 심사숙고해야 하겠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여쭈었지만 주님의 답을 듣기도 전에 자신들의 뜻대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50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제자 중 한 사람의 행동은 주님의 뜻과 달랐습니다. 자신의 원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신 예수님과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여쭈기는 하였지만 주님으로부터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에 기도하러 왔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여쭈기만 하고 판단은 자신이 하지 않는지 돌이켜 보십시다. 하나님께 여쭈었다면 듣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한다는 것은 내 뜻을 말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듣고 깨달아 순종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주님은 자기방어를 위해 대적자를 공격하는 것조차 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귀가 떨어져 피를 많이 흘려 고통 중에 있는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주님께서 만져 낫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참으로 놀랍고 위대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하실 말씀을 하셨습니다.
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무리는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선동꾼이나 강도 정도로 알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성전에 있을 때에는 왜 체포하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행동의 이중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정의로운 일은 이중적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불의한 일을 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여론을 의식합니다.
주님께서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단의 권세가 잠시 허용된 때임을 알리신 것입니다. 어둠의 권세는 의인을 박해하고 방해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박해와 방해를 값진 희생과 구원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때입니다. 이 세상에 불의가 판을 치더라도 낙망하지 마십시오. 어둠이 득세하는 때인 듯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때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셔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죽기까지 치밀하게 구원 역사를 이끌어 가신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을 괴롭히는 어둠의 권세를 심판하실 것임을 잊지 마십시다.
우리는 어둠의 권세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러기 위해 주님의 가르침대로 기도하십시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원대로, 오늘 하루 일상의 삶을 시작하기 전에 이를 두고 기도하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도 후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나더라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면 자신의 뜻과 다르더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과정임을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을 만나 배신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 상황을 받아들이며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순종하셨듯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둠의 때를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오며 어둠의 권세가 사라질 것임을 믿게 하시옵소서. 어둠의 때에 되돌아보지 말아야 할 것을 되돌아보거나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진리와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며 오늘 하루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예상치 못한 일, 불의한 일을 만날 때 그 일을 수용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부터 올 수 있겠습니까?
2. 어떤 신앙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좋은 신앙 습관을 위해 실천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3. 내가 속한 공동체에 가룟 유다의 입맞춤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대응 방식은 어떻습니까? 주님처럼 대응하실 수 있습니까?
4. 어둠의 권세가 지배하는 때에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새벽기도 > 누가복음(새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23:1-12 (0) | 2022.12.21 |
---|---|
누가복음 22:54-71 (0) | 2022.12.21 |
누가복음 22:24-38 (0) | 2022.12.21 |
누가복음 22:14-23 (0) | 2022.12.21 |
누가복음 22:1-13 (0) | 2022.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