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요 선교사인 바울의 삶은 한마디로 고난과 시련의 파도타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사도 바울은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토록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을 다했는지 참 궁금합니다.
바보상자라고 하는 텔레비전에서도 가끔 신앙적으로도 좋은 프로그램을 방송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저는 SBS의 생활의 달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에서부터 엄청나게 큰 일 들까지,
자기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가장 최고인 분들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 보니까 달인라고 인정을 받는 분들의 공통점이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적극적으로 즐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큰일이든지 적은 일이든지, 힘들던지 어렵든지에 관계없이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일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주자주 회개합니다.
저도 말씀을 준비하고 설교하는 것을 즐겨야만 하는데
아직 그 정도의 내공이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목회는 성경말씀을 잘 찾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어야 하는 겁니다.
설교준비가 즐거운 겁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달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바울은 즐길 줄 아는 사도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빌 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 바울이 이처럼 어떤 형편과 처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는 복음의 사도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너무 쉽게 판단을 해버립니다.
사도 바울은 워낙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믿음이 뛰어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담대하게 감당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복음을 담대하게 잘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남다른 위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동역자들의 위로가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5절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을 찾아 온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 쳐다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듣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위로 또한 아주 중요합니다.
내 입장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중요합니다.
내가 위로를 받아야 하는 입장으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를 통해서 위로를 받아야만 할 상대방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위로를 받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를 주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라와 디모데의 위로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려운 길, 힘든 길, 외로운 길에 서서 복음을 들고 달려가는 바울의 입장에서
실라와 디모데의 위로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인간적인 위로에 감사하기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그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는 바울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동역자들의 위로에 인간적인 감사보다는 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제대로 받은 모습입니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것은
역시 사람은 위로보다는 핍박을 더 많이 준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토록 사랑했던 자기 동족 유대인들이 끝까지 복음을 반대합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지독한 면이 나타납니다.
옷에 묻은 먼지를 떨어내며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에 대한 종료를 선포합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사역을 멈추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제 복음 전파 사역의 대상자를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완전한 자유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더 이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6절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사실 가만 보면 인간적으로 가까울수록 더 힘들게 하는 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도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보다 오히려 훨씬 더 못한 형제들, 친척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발목을 잡혀 있을 수 없어 담대하게 복음의 지경을 더 넓혀 나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자신에게 예정하셨던 사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생각해봐야할 대목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책임지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아닙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겁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도 즉시 사역의 대상을 바꿉니다. 어디로 갑니까?
7절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갑니다.
그의 집이 회당 옆에 있습니다.
굳이 회당 옆에 디도 유스도의 집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 이유가 뭡니까?
예전 같으면 사도 바울은 회당으로 갔을 것입니다.
회당에 가야 유대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공적인 장소인 회당에서 개인적인 장소인 집으로 바뀐 것입니다.
유대인의 장소인 회당에서 이방인의 장소인 집으로 바뀐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사역에 있어서 더 이상의 위로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안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회당에 가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을 텐데 이젠 그렇게 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유대인들의 불신에 질려 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어떤 메시지도 유대인들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는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진정한 위로가 주어집니다.
아주 근본적인 위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로부터 주어집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집니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습니다.
먼저는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집과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합니다.
8절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물론 이 정도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그간 전해왔던 것에 비하면
그렇게 만족할만한 큰 내용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 발걸음을 옮겨서 복음을 전하니까
즉시 열매가 나타나도록 해주셔서 바울의 걸음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 주시는 겁니다.
눈앞에서 열매가 나타나도록 하셔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용기를 주시는 겁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회당을 버리고
일반 집으로 들어간 바울에게 잘했다는 표시로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온 집과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게 하시는 겁니다.
이런 위로가 바울을 더 열심히 섬기는 복음사역자가 되도록 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직접 환상 가운데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9-10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유대인들에게 옷을 떨며 큰소리를 친 바울의 마음을 하나님이 알아채신 것입니다.
큰소리를 쳤지만 여전히 불안한 현실 때문에 두려워하는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강한 위로를 주시는 겁니다.
고린도 안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으니까
염려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위로를 주시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아직도 복음을 들어야만 하는 백성들이 남아 있는 겁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백성들이 있습니다.
왜 나무목교회를 이곳에 세우십니까?
아직도 나무목교회를 통해서 구원받게 하실 남은 백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강한 자신감을 갖고 든든하게 서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도 보세요.
주의 위로의 말씀을 듣고서 고린도에 무려 일 년 육 개월 동안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원래는 고린도에 있을 계획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가 주어지니까 담대해 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재미가 있는 겁니다.
나무목교회의 목사인 저는 절대 기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기죽지 마세요.
우리 주변에도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귀한 영혼들이 충분히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즐거움을 주실 겁니다.
그러자고 우리 나무목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종들에게는 언제든지 용기와 위로를 주셨습니다.
우리 나무목교회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마음을 갖고 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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