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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전병욱목사

칼럼5

모퉁이돌및 주보 전병욱 칼럼(19)/2001.8.5. 주일
                      "마귀의 본진을 깨는 전략"

  일본은 물가가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생활비가 가장 많이 드는 도시로 항상 동경이 꼽히곤 한다. 그러나 언제나 비싼 것만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도 살 수 있도록 일주일에 하루 정도 매우 싸게 파는 시간이 있다고 한다. 보통 가난한 사람들은 이 시간을 정해 놓고, 똑같은 물건을 거의 반 가격에 사곤 한다고 한다.
  나는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은 영향력있는 존재가 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든 세상에 충격을 주고, 영향을 주어야 한다.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힘이든 영적인 힘이든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있어야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명령에서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가르치는데서 멈추지 말고, 지킬 수 있는 곳까지 가라는 말씀이다.  지키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사용해서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는 한국의 모든 죄의 뿌리가 밤문화에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의 싸움은 실제로 문화싸움이다. 밤문화를 깨고, 새벽문화를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은 마귀의 본진을 깨는 강력이 될 것이다. 일본청년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보다 소심하고, 우리보다 진취성도 없고, 우리보다 개성도 약한 이들이 왜 우리보다 강한가?  우리의 이기적이고, 소모적이고, 죄악의 온상이 되는 문화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밤문화만 깨면, 세상 어디에서도 눌리지 않을 강한 민족이 될 것이다.
  삼일교회 청년들은 장차 이런 꿈을 꾸기를 바란다. 자신이 가진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서 새벽 문화를 만들라. 

* 미래의 꿈과 지침들:
1. 새벽 4시부터 5시까지 할인하라.  전자제품 장사를 하는가? 이 시간대에 최소의 마진만 붙이고 팔라. 아마도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더 큰 수익을 맛볼 지도 모른다.

2. 새벽 4시부터 아침 7시까지는 지하철 요금을 50원만 받으라. 그리고 저녁 9시 이후에는 5,000원쯤 받으라.  이런 결정권을 가질 위치에 놓이면 반드시 시행해 보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밤 9시 이후에는 나돌아 다니지 않을 것이다.

3. 밤에는 일부러 치안을 엉성하게 하라. 그러나 낮이나 새벽에는 철저하게 치안을 강화하라. 그러면 밤늦게는 두려움 때문이라도 다니지 못할 것이다.

4. 텔리비전 제작자들은 밤 9시 이후에는 가장 재미없는 프로들로 채우라. 보는 순간 자도록 만들 프로그램이 최고의 프로그램이다.

5. 인터넷에서도 야밤에 쓰는 글은 쓰레기로 여기라. 야밤에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이렇게 외치라. "너나 잘해!"

  일본의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 한국을 주목하라. 삼일교회를 주목하라. 이 새벽 정신으로 이 민족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강함을 보일 것이다. 아마도 예배의 능력으로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다."  주의 은혜 가운데 이 비전을 볼 날이 속히 올 것이다.

청빈과 청부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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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돌및 주보 전병욱 칼럼(15)/2001.6.24. 주일
                      "청빈(淸貧)사상과 청부(淸富)사상"

1. "청부사상" : 내가 대학 다닐 때는 장길산과 홍길동 류의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사회가 답답하다 보니, 이런 일종의 분배의 영웅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청빈"에 대한 엄청난 경외감이 있다.  예수님도 가난하셨고, 기독교는 가난한 자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청빈만이 옳은 것이고, 나머지 모든 파워나 다수는 악한 것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청빈이 있을 수 있고, 또한 청부도 있을 수 있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바나바는 부자였다. 그러나 주를 위해 헌신한 깨끗한 부자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청지기 의식이다. 이것은 사실상 청빈과 함께 청부를 추구하는 사상이기도 하다. 막스 베버는 이 힘이 자본주의를 창출해 냈다고 분석한다.  주변을 보면, 악한 가난한 사람도 많이 보게 된다. 없는 자의 악도 부지기수이다.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바울은 빌 4:12에서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말한다.  착각하지 말자. 가난과 부요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어찌되었든 주님 앞에 온전하게 서는 것이다. 삼일교회에서 "깨끗한 빈자"와 "깨끗한 부자"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깨끗하면 되는 것이다.

2. "중보기도 열풍" : 스펄전 목사에게는 300명의 중보기도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상 그의 사역을 강력하게 만든 것은 성도들의 중보기도였다. 나는 요즘 효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열매를 거두고,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해 낼 수 있을까? 출18장을 통해서, 우선순위의 중요성, 조직의 중요성, 원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고의 효율은 "기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의 사역의 10배, 100배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교회 안에 100개 이상의 중보기도팀이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가능케 만드는 능력의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에 다니고 있지 않는가!

3. "국군 구국 성회" : 금년으로 3년째 국군 구국 성회에서 말씀을 증거했다. 무려 1만 7명의 장병과 가족들이 참여했다. 이제까지 잊고 있었던 귀중한 동역자들이 생각났다. 그것은 군목 목사님들이다. 이들의 빛없는 헌신이 이런 부흥을 가져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지교회가 군 선교를 돕는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군의 복음화로 지교회가 도움을 받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군에서 헌신하는 군목들과 군종병들을 위한 기도와 후원에 중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충성스런 종들이 존재한다. 이런 귀한 자리에서 말씀을 증거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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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돌및 주보 전병욱 칼럼(11)/2001.5.27. 주일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

1. "누가 더 비전이 있는가" : 여기는 밴쿠버입니다. 라마다 호텔 215호입니다. 새벽에 깨서 제일 먼저 기도하고, 삼일의 식구들을 생각합니다. 멀리 떨어진 거리는 그리운 마음을 더 진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밴쿠버의 많은 사람들은 "교육"을 위해서 이민했다고 말합니다. 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교육받는 아이들과 이곳의 아이들 중 누가 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을까?  나는 "한국의 아이들"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여기는 언어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장의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다소 편안하다는 것이 사람을 속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의 청년들은 희망이 있지 않습니다. 곧 세계를 평정할 저력이 있지 않습니까?  5년 내로 미주를 평정했다는 승전보를 알립시다.

2. "신간 출간" : 삼일교회 7년사를 엮은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가 출간되었습니다. 교계가 어려울 때, 그리고 기독출판계가 어려울 때 낸 책이라 더 긴장이 됩니다. 기독 서점이 살아야 교계가 살아납니다. 서점이 무너지면, 출판도 무너지고, 출판이 무너지면, 좋은 책을 접할 수 없고, 외국에서 비싼 책이 들어와야 합니다. "서점가서, 할인하지 말고 책을 구입"하십시오. 그것이 선교입니다. 이 책은 삼일교회 사역의 진액이 묻어 나온 책입니다. 삼일교회를 알고 싶거나, 또 소개하고 싶을 때 이 책보다 좋은 책은 없을 것입니다. 리더들과 목자들은 필독하기를 권합니다.

3. "팀 개편의 여운" : 지혜로운 사람은 과도기를 빨리 마무리합니다. 일주일동안 새로운 팀과 연락을 주고 받았을 것입니다. 만약 아직도 이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는 아닙니다. 만사가 때가 있습니다. 항상 초반이 중요합니다. 철저하게 준비해서 미래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합시다. 이번 텀부터 "선린 중학교"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깨끗하게 뒷마무리를 잘하는 "기본"이 있는 사람이 됩시다.

4. "강력한 내부구조" : 윈도우 98을 보면, 표지 화면에 몇개의 아이콘이 간단하게 뜹니다. 그것만 클릭하면 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들어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복잡한 운영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윈도우 화면처럼 단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내부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그 내부구조가 무엇입니까? 예배와 기도, 말씀, 사랑 그리고 리더들의 헌신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강력함을 유지하고, 추구하는 멋진 교회가 됩시다.  "삼일교회는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입니다."
여운이 있는 사역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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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돌및 주보 전병욱 칼럼(8) 2001.5.6. 주일
                          "여운이 있는 사역"

1. LA 집회의 틈을 타서, 처음으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갔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이전에 나왔던 영화의 장면들을 세트화시켜서, 추억과 기억을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이었다. 주라기 공원의 한 장면에 사람들을 집어 넣고, 스스로 영화의 주인공이 된 양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실제로 터미네이터 관에서는 괴물의 손이 내 얼굴에 와닿는 것 같았고, 물체가 산산조각이 날때는 실제로 물을 뿌려서 내 얼굴을 적시게 만들곤 하였다. 인공적인 것이지만, 이렇게도 사람을 철저하게 감동시킬 수 있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여운을 파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의 영화로 돈을 벌고, 그 영화에 대한 기억으로 또 돈을 버는 것이다. 상업성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배울 점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 버린다. 우리의 좋은 유산도 너무 쉽게 잊어 버린다. 모든 사역과 인간관계에 여운이 있는 것이 강한 영향력의 비결이라고 생각된다. 탁월한 인간관계를 맺는 분을 보면, 헤어지고 난 다음에 다시 기억할 수 있는 카드라든지 전화가 온다. 그래서 좋았던 과거를 다시 회상하고, 관계의 끈이 끊어지지 않게 만든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대가들의 행동이다. 한 번의 만남을 한 번으로 끝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한 번의 만남을 더 깊은 만남으로 연결시키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삼일 성도들은 이 지혜를 배우기를 바란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여운을 남기라. 전화하라. 카드를 쓰라. 좋은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연구하라. 탁월한 리더가 될 것이다.

3. 여운이 있는 삶은 사역에도 연결되는 것 같다. 외부강사나 선교지를 다녀온 후, 그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된 여운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역사 발전이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매뉴얼을 만든다는 것을 통해서 일종의 기록은 남겼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남기는데에는 실패했다. 기록과 동시에 따뜻한 관계도 남기는 한 단계 성숙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기록하라. 기억하라. 그리고 사진도 찍으라.  그리고 후손에게 말할 수 있고, 전할 수 있는 영적 신화(myth)를 만들라.  우리의 모든 체험이 후손의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4. 지난 5월 1일에 점프 2001이 열렸었다. 짜임새있는 운영과 준비로 말미암아 불편없는 체육대회였다. 스스로가 놀랄 정도의 탁월한 체육대회였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작년에 비해서 어린이들에 대한 배려도 늘었다. 운동장의 아나운서의 코멘트는 전체의 분위기를 살리기에 충분했다. 오늘은 이런 좋은 추억들을 서로 확인하며, 여운을 남기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그의 향기가 있다. 따뜻한 여운의 향기를 남기는 인생이 될 때, 결코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떠날 일이 없을 것이다.
카피는 힘이 없다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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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돌 전병욱 칼럼(6)/2001.4.22
                          "copy는 힘이 없다."

1.  여기는 부산 해운대에 있는 매리어트(Marriot) 호텔 922호이다. 지금  수영로 교회 부흥회 중이다.  수영로 교회는 부산에서 가장 전도가 왕성한 교회 중의 하나이다. 인상적인 것은 모든 교인들이 각종 조끼를 입고, 현장으로 나가서 전도하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현장의 전도가 있는 교회, 그래서 강한 교회인 것 같다. 다른 것은 몰라도 조끼의 편리성은 있는 것 같다. 우리 교회도 이제는 이런 조끼류의 단체복을 맞추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수영로 교회에서 느낀 또 하나의 생각은 이 교회는 전도의 열기는 충천하지만, 주로 다른 교회의 모델을 카피하는 방식을 많이 따랐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온누리 교회의 프로그램을 많이 참조했는데, 요즘에는 삼일교회 모델을 참조한다고 한다.  'me too' 전략도 좋은 전략이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을 카피하고, 'me too' 전략으로 나갔다가, 자신이 최고가 된 다음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1등을 버리고, 다시 안정된 2등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본다. "copy는 힘이 없다. original이 되어야 한다."  어느 한 교회가 확신을 가지고 길을 잘 닦아 두면, 여러 교회들이 따라온다. 이것이 영향력이다. 영향력은 작은 힘으로 큰 역사를 이루는 힘이다.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original이 되어야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담대히 나아갈 때, 영향력이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3. 요즘 새로운 교회 저항세력들이 일어나고 있다. 기독교 안에도 비판세력이 일어나고, 교회 밖에도 교회를 비판하는 세력들이 일어나고 있다. 교회사를 보면, 시기마다 교회가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했었다. 2세기에는 기독론에 대한 도전이 있었고, 그 이후에 삼위일체에 대한 도전이 있었다. 그때마다 교회는 지혜롭게,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극복해 나가곤 하였다. 최근의 도전은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도전인 것 같다. 과거의 강점을 가지고는 미래의 도전에 승리할 수 없다.  이제는 삼일교회 한 교회의 성장만이 능가가 아니다. 한국 교회 전체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 교회 전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에 기독교의 선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초대교회같이 사람들에게 칭찬듣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 교회는  건축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건축에만 매달려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실수이다. 건축과 동시에 가난한 이웃과 소외된 이웃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사회 정의 세력이 되어야 하고, 실제적인 도덕적 세력이 되어야 한다. 선배들의 한계를 탓하지만 말고, 지금부터 우리가 시작하면 된다.

4. 지난 주는 책을 쓰는 일에 집중했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있었다. 책을 쓸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사서하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많이 육체적으로 지쳤다. 회복을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한다. 이번 주에는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서 집회가 있다. 은혜스러운 사역이 되도록 기도를 부탁한다.  미국 여행은 항상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곤 하였다. 아마도 새로운 자극과 여유있는 시간때문인 것 같다. 이번 여행도 삼일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된 영감이 있을 것이다. 기도의 동역을 부탁한다. 삼일의 청년들이 있기에 나는 언제나 행복한 목사이다.

편작의 비밀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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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욱 칼럼(4)/2001.4.2-
                          "편작의 비밀"

  천하의 명의였던 편작에게는 의사인 형이 두 명 있었다고 한다. 위(魏)나라 왕이 편작에게 물었다. "삼 형제 중에 누가 가장 실력이 좋은가?"  편작은 맏형 의술이 가장 뛰어나며 둘째 형님이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위나라 왕은 의아해하면서 편작에게 편작이 명의(名醫)로 소문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편작은 목소리를 낮추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맏형은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환자의 얼굴만 보고도 앞으로 무슨 병이 나타날 것인지를 압니다. 그래서 병도 생기기 전에 미리 치료해 주지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잘 치료해 주어도 병 나기 이전에 치료해 주는 사람들이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둘째형은 큰 형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환자의 병세가 미약할 때 병을 알아내어 치료해 줍니다. 그러나 환자들은 자신이 병이 심각하게 되기 이전에 치료해 주는 그냥 간단한 치료를 받은 줄 알지 중병을 일찍 치료해 준 지를 몰라서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형이나, 둘째 형이 별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위나라 왕은 더욱 궁금해져서 편작이 그렇게도 유명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저는 별로 뛰어난 의사가 되지 못해서 병이 커져서 심한 고통을 느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봅니다. 그래서 중한 병이기에 맥을 짚어야 했고, 또 처방하고 아픈 곳을 도려내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환자들은 자신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고쳐 주니까 그런 나를 보곤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고 믿고 존경합니다. 이것이 삼형제 중에서 가장 실력이 모자라는 제가 명의로 소문난 이유입니다"
  편작의 이야기에서 우선 그의 겸손을 읽을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고 해도 형제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자세는 큰 인물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덕목이다.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은혜를 누리는 사람치고 교만한 사람은 없다. 왜?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편작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간사함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이 은혜로 미리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실 때는 전혀 감사를 모른다. 그러다가 다 죽을 처지가 되어서 건져 주시면, 그때서야 호들갑을 떨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한다. 그러니 진정으로 감사를 아는 종과 깊이 있는 신앙인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 연단이 없을 수 있겠는가?  최고 수준의 신앙인은 평상의 삶을 누리면서 감사가 끊이지 않는 인생이다. 우리의 모든 것을 주신 분이 다 하나님 아닌가? 망가지고 난 다음에 수리하기에 분주한 "수리인생"이 아니라 사전에 감사와 기도, 헌신,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는 "정비인생"으로의 영광을 누리는 삼일의 젊은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정비인생은 새벽무릎이 된다. 정비인생은 주님에게 헌신을 요구하실 때, 사렙다 과부의 드림이 있는 인생이 된다. 정비인생은 작은 일에도 늘 감사하는 감격이 있는 인생이다
사르밧의 기적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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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돌 전병욱 칼럼(2)/2001.3.18-
                        "사르밧의 기적"

  나는 목사로서 몇 가지 부담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 중의 하나가 너무 교인들을 "시달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부담이다. 젊어서 본 교회의 모습은 성도들을 너무 시달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때마다 건축한다고 헌금하라고 하고, 공휴일이면 가족과 함께 쉬고 싶은데 기도원간다고 하고, 어린이날인데도 불구하고 남전도회 모임으로 인해서 아버지를 빼앗겼던 경험이 너무 많았다.  이런 부담감이 교회의 건축이 꼭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확신에 가득찬 모습으로 성도들에게 헌신을 요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부담을 안고, 10일간의 미국 집회의 길을 떠났다.

  미국 집회를 하는 동안 엘리야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는 기회가 있었다. 왕상 17장의 말씀이 나를 뒤집어 놓았다. 그릿 시냇가에 있던 엘리야에게, 시돈에 있는 사르밧의 과부의 집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다.  가난한 과부의 집에 가서 얻어 먹고 살라는 말이었다.  외부 집회를 나가보면, 대접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부자집에서 식사를 대접하면,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왜? 어차피 부자인데, 이 정도 대접한다고 어려움이 있겠는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좀 어렵게 사는 사람이 대접을 하게 되면, 조심스러워진다. 혹시 내가 너무 비싼 것을 주문한 것은 아닌가, 이 분에게 이것이 너무 큰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집으로 가서 먹을 것을 구하라고 명령하신다.  그것도 찌들어지게 가난한 집이다. 과부란 부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과부는 완벽한 궁핍"을 상징한다. 왕상 17:12을 보니,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이 정도의 가난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엘리야를 부자집으로 보내지 않으시고, 가난한 과부의 집으로 보내셔서 공궤받기를 원하셨다. 왜?  이것이 사르밧의 과부에게 임한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한끼 먹고 죽어야 할 집안 형편이었는데, 엘리야에게 먼저 먹을 것을 주는 헌신을 통해서 엘리야도 먹여 살리고, 자신의 온 가족도 평안히 먹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사르밧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삼일교회를 보면, 참 어려운 사람이 많다. 학업에 매달려 있는 가난한 학생들도 많다. 아침의 새벽 기도 이후에 라면을 같이 끓여 먹으면서 허기를 채우는 그런 따뜻한 정을 느끼는  소박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이다.  과연 이들에게 물질의 헌신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 본문이 나에게 주는 호소는 이것이었다. 그들에게도 헌신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회 안에는 일종의 영적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하는 것 같다. 가진 자에게는 교회가 자신있게 헌신을 요구해서 더 크게 쓰임받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가지지 못한 사람은 부담감 때문에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쓰임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나는 이 악순환을 끊어버리기를 원한다.

  나는 믿음의 젊은이들에게 헌신을 요구한다. 사르밧의 과부의 그 마지막 한 덩이의 떡을 요구한다. 예수님께 나아왔던 한 소년의 그 오병이어를 요구한다. 헌신하라. 주님께 헌신하라.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께 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을 맛보게 될 것이다. 궁핍의 사슬을 끊게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공급하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드리라.  엘리야 시대에 그 누구도 과부에게 기댈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그 가난한 과부에게 가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그 과부의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그리고 과부에게 부어주신다.  이것이 사르밧의 과부가 누린 축복이다.  이 축복과 기적이 삼일교회의 모든 연약한 종들에게도 부어지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필립스 부룩스의 말로 끝맺고자 한다.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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