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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전병욱목사

칼럼8

문화는 교회를 풍요롭게 한다."(03/7/3)

1. 두 인격의 괴리 : 제주 선교 둘째날 거의 1시간에 걸쳐서 형제들이 나와서 찬양하는 시간이 있었다. 처음에는 건전한 형제 순으로 나왔다. 그러나 분위기가 관용적인 분위기이고, 뜨거워지자 교회에서는 숨기고 있던 자아들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의 이원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자기의 본 모습을 보이는 "커밍 아웃"하기 시작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의 삶과 세상의 삶이라는 이중적 구조에 익숙해져있다. 그래서 쉽게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2. 신앙생활이 피곤한 이유 : 바람피우는 사람은 피곤하다. 왜? 두가지 가치와 잣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멘텔리티가 신앙인에게도 나타난다. 세상과 교회라는 두가지 세계 속을 살아간다. 그래서 바람 피우는 사람의 피곤함이 신앙인에게 있다.  원래 신앙은 신나고 즐거운 것인데,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3. 두 인격의 일치 : 표출된 "끼"를 긍정적인 복음으로 연결시키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기쁨이 충만해졌다. 이제 우리 교회의 사명은 바로 이것이다. 젊은이들 속에 숨겨져 있는 문화를 끌어내어 복음으로 재해석하고, 그들의 문화를 무기로 삼아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문화는 교회를 풍요롭게 한다. 뿐만 아니라 잃은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이기도 하다.

상놈은 예수를 믿어도 상놈인가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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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놈은 예수를 믿어도 상놈인가?"(03/6/13)

1. 기본 자질을 갖춘 선발 : 사도행전 강해를 하면서 고넬료를 살피게 되었다. 흥미있는 것은 로마제국 당시의 군대 지휘관 선발과정이었다. 당시 로마군은 자원군이었고, 충성심이 강하고, 군사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군대였다. 규정에 따라 백부장이 되려면, 우선 말과 행동에 신중한 사람이어야 하며, 끈기가 있고, 섣불리 싸움을 시작하지 않으며, 사방으로 포위되어도 끝까지 버틸 용기를 가지며,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특이한 것은 기본적인 약속과 질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2. 기본 자질과 신앙의 관계 : 성경은 고넬료의 이런 성실한 자세가 그대로 신앙적 컬러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바라본다. 기본 자질이 그대로 신앙의 행태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말이다. 베드로를 맞을 때의 예의와 일단 믿고 난 다음의 철저한 충성성이 이것을 설명해 준다.

3. 기본 자질이 없는 사람과 신앙의 관계 : 문제는 고넬료 같이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이 신앙을 가질 때는 쉽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즉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신앙을 가질 때, 그 기본이 회복되느냐의 문제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실 교회가 다루기에는 너무 방대한 부분이고, 습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4. 기본이 없는 현실 : 분명히 신앙은 있는데, 모인 자리의 뒷정리를 하지 않고 간다. 지나가다가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린다. 주보가 떨어진 것을 보고도 집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축도를 마치기 전, 먼저 나가는 것이 부끄러운 줄 모른다. 화장실에서 한 줄로 설 줄 모른다. 아무데서나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든다. 특새 기간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는데를 새치기해서 들어가는 몰염치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신앙은 심겨졌지만, 이런 상놈의식은 변화되지 않는다.

5. 신분에 맞는 행동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왕같은 제사장이다. 기본이 무너지면, 덕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진 힘을 사용하기가 힘들다. 집안에서 받지 못한 가정교육을 교회에서 해야 하는가? 이제 서로 말해주고, 늦게라도 고치도록 하자. 적어도 가정교육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충고받았을 때, 겸손히 받아들이는 수용성을 기르도록 하자. 그러지 않으면, 영혼히 구원받은 상놈이 되리라!

시벽기도의 긴 줄에서 받는 은혜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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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의 긴 줄에서 받는 은혜"(03/6/5)

1. 내 존재가 상대에게 중요 : 어떤 형제가 자기는 새벽 1부에 나오는 것이 매우 좋다고 했다. 나는 당장 "새벽빵"때문이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1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2부를 기다리는 긴 줄 때문이란다.  그 긴줄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날 정도의 감격을 받는다고 한다. 설교에는 은혜를 못받아도 긴줄에서는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나의 존재가 남에게 새 힘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왜 부흥하는 교회에서는 신앙의 성장이 쉬운가? 장작이 모였을 때 잘 타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상대의 불길이 나의 불길을 살리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나의 새벽기도가 나를 살릴 뿐만 아니라 남을 살린다. 사명감 가지고 새벽을 지켜야 할 일이다.

2. 기다림도 좋아요 : 이 형제가 또 연락을 해 왔다. 이제는 새벽 2부에 나온다는 것이다. 왜? 줄서서 기다리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셔란다. 길게 줄서서 기다리는 몇분의 시간은 특별한 교제의 기쁨을 선물한다는 것이다. 서로 기다리며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짧은 시간이 자기에게는 그 어떤 경험보다 짜릿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다리게 만들 때, 우리는 그때를 기도의 때, 또는 깊은 교제의 때로 해석하면 된다. 역시 믿음은 탁월한 해석을 낳는다.

3. 동판에 새기고 싶어서 : 어떤 자매는 98년에 삼일교회에 왔지만, 새벽기도는 5일도 참석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교육관 신축이 있고 나면 동판이 걸릴 생각에 나올 마음이 생기더란다. 새벽예배 오는 것의 단점은 예쁘게 화장하고 치마를 입고 오지 못한다는 것이란다.왜? 주로 늦어서 유치부실에서 드리는데 바닥에 앉으려니 치마가 불편하기 때문이란다. 삼일째 되는 날, 알람 소리를 듣고 자고 싶은데, 룸메이트가 작심삼일이다라는 말에 걸려서 4일째 나왔단다. 이런 고백이 하루를 더 나오게 만드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다. 매 순간 그 다음의 순종을 다짐하면, 돌이키면 엄청난 일들을 이룬 승리자로 서 있게 될 것이다. 2주째의 장정에 도전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자.


아름다운 사람 이지선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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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이지선"(03/4/25)

1. 잠자는 교회 : 교회를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로 묘사하곤 한다.  교회는 세상 바깥이 아닌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 위에 떠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세상 위에 떠있지 않고, 세상과 같으면 침몰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과는 다른 것이다. 교회의 능력은 "다름"에 있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가 세상과 정말 다른가?  다름을 찾을 수 없는 나의 모습, 나의 교회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다.

2. 잃은 가치를 회복케 하는 이지선 자매 : 이지선 자매는 온 몸에 55%의 화상을 입었다.  욥의 고난이 이 보다 더했을까?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고난을 경험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주제가 무엇인가? 그가 보여주는 삶이 무엇인가? 사랑을 말한다. 따뜻한 가정의 사랑, 서로 품는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림같이 보여준다. 우리는 그에게서 용서를 본다.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본다. 얼굴을 못 봐서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서 축복이라는 말에는 고개를 들 수 없다. 또 기쁨이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절대 기쁨이다. 감사가 있다. 다리 근육을 목으로 이식했더니, 털이 붙어 있어서 바람결을 느낄 수 있게 됨을 감사한다고 한다. 이것은 감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찬송이다.
  이지선 자매 한 사람이 잠자는 교회가 할 일을 다하는 것 같다. 제도권 교회가 하지 못한 일을 과거에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인 선지자들이 감당했다. 나는 그에게서 선지자의 위용, 선지자의 따뜻함을 느꼈다. 진정한 교회와 성도의 모습은 무엇인가? 바로 이런 세상과 다른 가치를 보여주고, 증거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목소리를 낮추고, 이런 삶을 살자.

3. 사스 공포 : 중국 홍콩과 광동에서 시작된 괴질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다. 접하기만 하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고 한다. 원래 기독교의 특징이 바로 이 괴질같은 것 아니었던가?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행 24:5)  성도와 만나면, 기쁨이 전염되고, 성도와 만나면 감사가 전염되는 진정한 복음의 염병이 되기를 바란다. 이지선 자매를 만난 사람들이 감사의 사람, 기쁨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는 진정 복음의 염병임에 틀림없다.


영화 시카고가 보여주는 기준의 위기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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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카고가 보여주는 기준의 위기"(03/4/18)

  금년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시카고'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위기를 고발하는 듯, 또는 현대의 위기를 합리화시키는 듯한 아슬아슬한 접근을 한다.  이 영화는 우리 시대의 기준이 무너진 모습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뿌리없는 가식의 세계 속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케 한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한계들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득을 얻을 수도 있을 듯하다.

1. 자기 합리화에서 내 탓으로 : 현대의 논리는 모두 "전가의 논리"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네게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사람을 죽여 놓고도 그것이 내 책임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책임이라고 뒤집어 씌운다. 책임 전가의 역사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 가인에게로 올라간다. 모든 것을 내 책임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죄의 회개로부터 시작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현대의 기준의 위기를 깨는 길은 "죄의 인정", "책임감의 회복"에 있다.

2. 포장에서 진실로 : 온통 진실은 없고, 포장뿐이다. 재판에서 변호사가 하는 일은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어떻게 포장하고, 어떻게 꾸미는가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뿌리를 인기나 언론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인정(Coram Deo)에 두어야 한다. 사람들의 평가, 언론에 드러난 모습은 항상 미화, 과장되기 마련이다. 과시의 접근이 아니라 진실의 접근에 더 많은 힘을 기울이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배는 수면 아래가 더 무거워야 전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배 중앙에는 밸러스트가 있다. 포장은 수면 위를 무겁게 하는 것이다. 수면 아래의 삶은 진실의 세계이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서는 것이 현대의 기준의 위기를 깨는 길이다.

3. 분열에서 연합으로 : 서로 적대적인 록시와 벨마가 마지막 장면에서 힘을 합쳐서 잃었던 인기를 회복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물론 연합의 목적이 인기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는 너무 가벼운 면이 있지만, 그래도 연합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인기만을 위한 연합에도 힘이 있다. 하물며 선한 일을 위한 연합에는 얼마나 강력한 힘이 드러나겠는가?  윈윈 전략은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 현대의 위기를 깨는 힘은 분열에서 연합으로 가는 길이다. 팀으로 일하는 법을 배우라. 세상이 두려워 떨 것이다.

사랑의 동기가 아니면 말을 삼가라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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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동기가 아니면 말을 삼가라"(03/4/9)

  금년으로 4년째 고신의대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있다. 지금 4학년은 입학과 함께 부흥회를 같이 하는 동기가 되었다. 고신 의대에 오면, 항상 성산 장기려 박사의 은은한 향기가 남아 있어 좋다. 송도의 바닷 냄새와 장기려 박사의 잔잔한 인격과 신앙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간호대학 학장실에 걸려 있는 장기려 박사의 붓글씨가 매우 인상적이다. 그의 신앙과 인격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1. "사랑의 동기가 아니면 말을 삼가라" - 백성과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없으면 선지자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없는 말들을 쏟아낸다. 그래서 더 많은 상처들이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백성이 잘못될 때, 더 마음 아파하는 자세로 외치는 자이다. 자식의 아픔을 더 아파하는 아비의 마음으로 외치는 자이다. 요즘은 말이 흔한 시대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말의 절제, 말의 성령의 기름부음을 구할 때이다. 사랑없이 하는 말은 상처를 주고, 결코 유익이 될 수 없다. 사랑의 가슴을 가지고 말하자. 그렇지 않으면 입에 자갈을 물리자.

2.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하라" -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 이 말보다 어려운 것은 없다.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왜? 말은 쉽지만, 그 말을 할 때 다가오는 손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직이란 용기의 문제이고, 희생의 문제이다. 오버하지 말고, 진실만을 말하는 훈련을 해야할 것이다. 헤로도투스의 역사를 보면, 페르시야가 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페르시야 사람들은 소년들을 훈련시킬 때, 세가지를 집중적으로 훈련 시킨다고 한다. 첫째, 말타기, 둘째, 활쏘기, 셋째, 진실 말하기. 특징적인 것은 진실 말하기이다. 진실 말하기에 무슨 훈련이 필요한가? 아니다. 이것보다 힘든 훈련의 길은 없다. 페르시야는 진실을 바탕으로 했기에 강한 군대였다.

3. "문제의 책임은 내가 져야지" - 리더십의 최고의 덕목은 책임감이다. 무책임 사람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책임의 무게 중심을 자신의 가슴에 둔 사람만이 일을 이루어낸다. 책임전가의 논리는 마귀의 논리이다. 민족의 문제를 가슴에 품고, 나의 인생을 집어던져 구해내는 진정한 신앙인, 애국자를 기대한다.


견딜수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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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03/4/3)

1. 두려움의 무게 : 인생을 살다보면, 두려움을 필할 수 없다.  웬만한 삶의 어려움은 그냥 견딜만 하다. 그러나 어느 한계가 지나면, "나의 존재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두려움이 밀려온다. 나의 존재가 감당이 안될 때가 있다. 살아 있는 것이 부담일 때가 있다.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두렵고, 짐이 될 깨가 있다. 존재의 무게가 나를 누를 때가 있다.

2, 두려움을 이기는 친밀함 : 그 어떤 두려움도 마찬가지이다. 그 두려움을 주는 존재보다 더 강한 존재와 내가 친밀함을 느낄 때 해결된다. 사람들이 연대, 동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두려움 자체와 싸우면 안된다. 두려움보다 더 큰 존재인 하나님과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작은 두려움은 사람끼리 친밀함으로 해결된다. 혼자 있으면 두려움에 빠진다. 그때 아빠가 있으면, 엄마가 있으면, 친구가 있으면 해결된다. 그러나 큰 두려움은 그런 식으로는 안된다.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해결될 수 있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시 25:14) 그래서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길이다. 친밀함이 두려움을 이기는 길이다. 친밀함의 능력을 사용하라.

3. 친밀해지는 길 : 나의 모든 사정을 아뢰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아이와 친밀함을 느끼는가?  자기 사정을 아뢸 때이다. 전학 온 친구. 오늘 영화 본 이야기... 친밀은 과묵이 아니다. 아이가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고자 할 때,  배신감을 느낀다. "너는 부모도 없니" 그런데 우리가 왜 아뢰지 못하는가? 여러차례 세상에 속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말하다가 당한 피해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맞다. 사람에게 아뢰서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항상 이용당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하나님은  내 이름을 아시고, 내 이름을 부르신다. 내 사정을 다 알도록 말씀을 드리라. 그러므로 성도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제목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우리의 사정을 아뢰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하나님은 내편이 되어서 들어주신다.

내가 상인들을 만나기를 좋아하는 이유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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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인들을 만나기를 좋아하는 이유"(03/3/26)

1. 상인들과의 만남이 왜 특별한가? : 한 동안 잘 알지 못했다. 상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실제적으로 남는 것이 많은 대화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길들이 보이곤 했다. 그러나 학자들이나 그와 비슷한 직종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뭔가 화려하기는 한데, 공허한 점이 있었다. 도대체 이런 대화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가?

2. 사실을 가지고 말하는 상인 : 상인들과의 대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들은 항상 대화의 화제를 "사실"(fact)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들이 혼재한다. 대개 학자들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 자체를 부인한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한다할지라도 자신은 양심상 인정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그래서 항상 당위, 선호도, 편견에 의해서 대화가 진행된다. 반면에 상인들은 좋든 싫든 철저하게 사실에 바탕을 둔 분석을 한다. 왜? 사실이 아니면, 절대로 경제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3. 스스로를 돌아보며 : 사실의 근거가 없으면, 어떤 주제의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사실만을 붙든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을 무시한 논의는 탁상공론이 될 수 있다.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학자들을 통해서 꿈과 이상에 대한 자극을 받으라. 그러나 상인의 시각에서 사실을 분석하라.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잣대로 가치(value)를 평가하라. 아마도 이런 형태의 접근이 가장 분석적이고 지혜로운 접근이 되리라.

진짜 사랑을 해보셨습니까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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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랑을 해보셨습니까?"(03/2/27)

1. 사랑은 숭배가 아니다 : 많은 사람이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의 힘을 과시한다. 그리고 굴복하기를 원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힘을 과시하고, 아버지는 자녀에게 힘을 과시한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연약함을 나누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사회적 지위를 들고 나오지 않는다. "삼일교회 담임목사이며, 10여권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자격증이 몇 개이며..." 이렇게 나가는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랬다면, 아이가 "아빠, 어디 아파?"라고 되물을 것이다.

2. 사랑과 힘은 반비례 : 사랑과 힘은 반비례한다. 그래서 진짜 사랑하면 지게 되어 있다. 두 사람 가운데 좀더 사랑하는 사람이 좀 덜 사랑하는 사람에게 끌려간다.  사랑하기에 무력해진다.  솔로몬의 재판을 보라. 아이 하나를 두고 두 여인이 싸운다. 솔로몬이 명령한다. 아이를 둘로 나누라!  이때 진짜 어머니가 포기한다. 진짜 어머니가 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을 통해서 솔로몬은 진짜 어머니를 찾아낸다. 왜? 사랑의 본질은 힘과 반비례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신화는 성공이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패배하신 하나님을 보여준다. 사랑 때문에 패배하신 하나님을 제시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진다. 왜?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진다.

3. 지는 것을 통해서 얻는 생명 :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에서 이기고, 승전가를 부르기 보다는, 지는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사실은 내가 너를 더 사랑하는거야라고 되새기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다. 이 새 봄에 이런 성경적인 사랑을 시작할 사람들은 없는가?

항상 젊음을 유지하는 법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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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젊음을 유지하는 법" (03/2/14)

1. 자신을 받아들이라 :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가식적인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생명을 잃은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다. 왜 사람들은 "나이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지나친 욕심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40대인데, 20대같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결코 행복이 아니다. 속이는 것이다. 이것은 화장술이 아니라 분장술이다. 본인도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상대도 진정한 인격으로 그를 대하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거대한 쇼에 불과한 것이다. 과거 이집트 사람들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미이라를 만들었다. 미이라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죽으면 썩어야 한다. 그런데 썩지 않게 만들었으니, 괴이한 일이다. 나이드는 것을 억지로 막으려는 사람을 보면, 미이라를 보는 섬득함이 있다.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2. 젊음의 유지 : 젊음이란 외모가 아니라 정신으로 유지할 수 있다. 마음이 젊으면, 누구에게나 힘을 느낀다. 그것이 진정한 젊음이다. 더글라스 맥아더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믿음만큼 젊고, 당신의 의심만큼 늙는다. 당신은 당신의 희망만큼 젊고, 당신의 절망만큼 늙는다."  우리가 젊음을 유지하는 것은 믿음과 희망이라는 말이다. 좀더 젊어지고 싶은가? 그러면 믿음을 심으라. 희망을 심으라. 그 속에서 청춘의 터져나오는 젊음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3. 생명의 아름다움 : 성경은 우리가 나이가 듬에 따라서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했다.(고후4:16) 피부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생명의 아름다움을 누리라는 뜻이다. 감정이 사라지고, 희망이 사라지고, 믿음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늙고 있는 것이다. 젊음이란 생명의 주입이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희망으로 뛰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헬렌 켈러의 말을 기억하자. "태양을 주목하는 사람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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