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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전병욱목사

칼럼10

아침 우울증을 깨라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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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우울증을 깨라" (8.26.2004)

1. 아침은 생명의 시간 : 하루 중 아침만큼 싱싱한 시간은 없다. 가장 창조적이고, 의욕적이고, 위로부터의 영감과 능력이 임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사람들은 아침의 사람들이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아침마다 새롭게 느꼈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 3:23) 우리도 하나님의 생명을 아침마다 새롭게 느껴야 한다. 찬송가 358장도 아침의 능력을 이렇게 찬양한다.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낼 때 햇빛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되게 하소서" 아침은 만물을 신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아침형 인간만이 세월을 허송하지 않을 수 있다. 아침형 인간만이 세상의 햇빛이 될 수 있다.

2. 아침은 최고의 컨디션 : 그러므로 성도들은 아침이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아침에 제일 예쁘고, 아침에 제일 의욕이 넘치고, 아침에 가장 영감이 뛰어나야 한다. 이것은 모두 새벽기도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축복이다. 허둥지둥 출근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흐릿한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있을 수 없다.

3. 마귀의 유혹 : 마귀는 아침 잠이 달콤하다고 유혹한다. 밤의 환락을 누리라고 함정을 판다. 심지어 아침에 많이 자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전개하기도 한다. 저혈압이기 때문에, 특정한 질병이기 때문에 아침을 깨울 수 없다고 한다. 모두 근거없는 말이다.

4. 새벽에 벌떡 : 새벽을 호령하는 자가 하루를 점령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벌떡 일어나라. 그래야 하루를 호령할 수 있다. 어슬렁 거리지 말라. 꾸물대지 말라. 단 한번에 일어나서, 마귀에게 외치라. "까불지 마라!"  성도는 육의 양식을 먹기 전에 영의 양식을 먹는 사람이다.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요"(신8:3)  단 1절이라도 성경 읽기 전에는 아침 식사를 하지 말자. "No Bible, No Breakfast"  영의 풍성한 양식이 우리의 삶을 살찌울 것이다.

정신적 변비에서 벗어나자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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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변비증에서 벗어나자"(7.29.2004)

1. 비판의식의 강화 : 최근들어 사회 전반에 비판의식이 강화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경향이 장점보다는 약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의 바탕에 깔려 있는 철학은 '약점을 비판하면, 더 좋은 세상이 온다'라는 확신이다. 약점을 비판하면, 항상 더 나아진다는 것은 반드시 맞는 접근은 아니다. 약점으로 일하지 말고, 강점으로 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2. 완벽주의를 경계하라 : 사람에게 속한 것 중에 100% 옳은 것, 100% 선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개 좋다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이 많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비판의식이 팽배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완벽주의, 결벽주의로 흐르게 된다.  많은 회중이 모여서 교제의 기쁨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얻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모임이란 항상 독을 품게 되어 있다. 돈 문제, 이성 문제, 말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상처를 받은 사람은 곧장 교회가 이럴 수 있느냐고 하면서 반발하며, 성토할 수 있다. 교통사고 난다고 자동차를 안탈 수는 없다. 왜? 사고보다 더 큰 유익을 주기 때문이다.

3. 정신적 변비증에서 벗어나라 : 먹기만 하고 배설이 안되는 것을 변비라고 한다. 요즘 정신적인 변비에 걸린 사람이 많다.  어떤 대상을 보든지, 좋은 것이 있으면 흡수하면 된다. 그리고 좋지 않은 것은 배설해 버리면 된다.  그런데 배설의 시스템을 전혀 모르기에 작은 것도 버리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  배설이 자신 없으니,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다. 배설이 강화되어야 한다. 배설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면 폭 넓게 많은 것을 접하고, 좋은 것은 흡수하고, 나쁜 것은 그냥 배설하는 것을 통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결벽주의가 아니라 세상의 장점을 흡수하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 태도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란다.

정신적 변비증에서 벗어나자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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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변비증에서 벗어나자"(7.29.2004)

1. 비판의식의 강화 : 최근들어 사회 전반에 비판의식이 강화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경향이 장점보다는 약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의 바탕에 깔려 있는 철학은 '약점을 비판하면, 더 좋은 세상이 온다'라는 확신이다. 약점을 비판하면, 항상 더 나아진다는 것은 반드시 맞는 접근은 아니다. 약점으로 일하지 말고, 강점으로 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2. 완벽주의를 경계하라 : 사람에게 속한 것 중에 100% 옳은 것, 100% 선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개 좋다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이 많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비판의식이 팽배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완벽주의, 결벽주의로 흐르게 된다.  많은 회중이 모여서 교제의 기쁨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얻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모임이란 항상 독을 품게 되어 있다. 돈 문제, 이성 문제, 말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상처를 받은 사람은 곧장 교회가 이럴 수 있느냐고 하면서 반발하며, 성토할 수 있다. 교통사고 난다고 자동차를 안탈 수는 없다. 왜? 사고보다 더 큰 유익을 주기 때문이다.

3. 정신적 변비증에서 벗어나라 : 먹기만 하고 배설이 안되는 것을 변비라고 한다. 요즘 정신적인 변비에 걸린 사람이 많다.  어떤 대상을 보든지, 좋은 것이 있으면 흡수하면 된다. 그리고 좋지 않은 것은 배설해 버리면 된다.  그런데 배설의 시스템을 전혀 모르기에 작은 것도 버리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  배설이 자신 없으니,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다. 배설이 강화되어야 한다. 배설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면 폭 넓게 많은 것을 접하고, 좋은 것은 흡수하고, 나쁜 것은 그냥 배설하는 것을 통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결벽주의가 아니라 세상의 장점을 흡수하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 태도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란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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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7.23.2004)

  어떤 성직자가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그 성직자가 손을 들어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며, "바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요. 나 역시 이 짧아보이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도 도착하기에는 멀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의 출발은 머리에서 한다. 그러나 가슴으로 내려가야 파워가 생긴다. 사람을 살린다. 나는 지금 가슴의 사람인가?

1. 예배에서 준비 된 나 : 세상에서는 머리를 써야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가슴으로 서야한다. 진정한 예배는 나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을 털어 놓는 것이다. 그것이 어린아이같이 서는 모습이다. 바리새인의 문제가 무엇인가? 그들은 항상 머리로 나왔다는 것이다. 나의 가슴으로 하나님을 만나는가? 그것이 예배이다.

2. 우리의 공동체 속에서의 나 : 만남이라고 다 같은 만남은 아니다. 동거와 동지가 되는 것은 다르다. 머리의 만남은 동거이다. 공간의 공유일 뿐이다. 그러나 가슴이 만날 때, 동지가 되는 것이다. 가슴으로 주고 받는 교제가 될 때 강력해 진다.

3. 전도할 때의 나 : 머리로 전하는 것은 머리까지 전달되고, 가슴으로 전한 것은 가슴까지 전달된다.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을 내 가슴에 품고 눈물과 함께 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역사적 앙금이 있는 나라이다. 머리로 접근하면, 벽을 깰 수 없다. 가슴의 뜨거움으로 전할 때, 모든 장벽을 넘는 복음의 능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장 지아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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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아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7.15.2004)

1. 나무를 심은 사람 :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작은 책이 있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알프스의 프로방스 지방, 해발 1200미터 이상의 산지에 살았다. 엘제아르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아들을 잃고, 아내를 잃었다. 마침내 개 한마리와 양30마리를 치는 양치기가 되었다. 그가 양을 치던 곳은 원래 숲이 우거진 곳이었다. 그러나 지나친 벌목으로 숲이 사라지고, 샘이 마르고, 사람들이 떠나 죽은 마을이 되었다. 엘제아르는 그 황무지에 떡갈나무 도토리를 심기 시작했다. 30년동안의 나무 심기 작업을 마친 후에 죽은 마을은 숲이 울창한 1만명이 모여 사는 멋진 장소가 되었다. 오직 한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힘만으로 황무지가 숲으로 변화된 것이다.  심는 인생은 위대하다.

2. 아시아 최고의 부흥국가 : 얼마 전에 교회성장학자인 명성훈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아시아 교회 중에 최고의 부흥을 맛보는 곳이 대만의 교회라고 한다. 최근 5년 사이에 두배의 부흥을 경험했다고 한다.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대만 부흥에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미력한 힘이나마 삼일교회의 대만 선교도 기여했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10년 하면, 열매를 보게 된다. 인생이란 흔들 수 있는 깃발을 붙들고, 이룰 때까지 흔드는 작업이다. 가치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붙들고 인생을 걸자.

3.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 지난 주간에는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왔다. 비가 오면, 자전거를 탈 수 없다. 그래서 운동을 많이 못했다. 그런데 이런 발상의 전환을 해봤다. 왜 비오는 날에 자전거를 탈 수 없는가?  그래서 방수복을 입고, 한강으로 자전거를 타러 갔다. 우려와 같이 미끄럽지도 않았고, 브레이크가 잘 기능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기우였다. 오히려 사람들도 없고, 시원했고, 비가 얼굴을 때리니 피부 건강에도 좋았다. 나는 이제부터 비가 오면, 자전거를 타리라!  우리는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일은 별 장애없이 해낼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정신으로 부딪히자.  야성이 살아나고, 풍성한 열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태양을 멈춘 여호수아처럼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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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멈춘 여호수아처럼"(7.2.04)

1. 붙잡힌 태풍 민들레 : 항상 제주선교와 동해 선교는 장마철이다. 많은 태풍을 맞이해야한다. 이번에는 배로 가는 일정이라서 무척 많이 기도했다. 마치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듯이, 태풍을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5일내내 너무 좋은 날씨였고, 선교 돌아오는 다음 날 제주에 태풍이 도달한다는 소식이었다.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날씨조차도 은혜의 제목이 되는 것을 보면, 선교는 좋은 것이다.

2. 기본의 강화 : 이제 삼일교회 선교 역사도 10년이 지났다. 선교 대원 면면을 보니, 모두 새로운 얼굴들이다. 10년전에 메아리치던 가치들이 이제는 희미해진 듯하다. 다시 초창기의 가치를 강조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있어야 할 듯하다. 흐릿해진 신앙과 신념을 강화시키는 것이 그 다음 세대를 세우는 첩경이리라.

3. 선물의 능력 :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고 했던가!  이번 선교에는 정성껏 선물들을 준비해갔다. 이것이 매우 좋은 반응을 보였다.  여자분들에게 가장 갖고 싶은 것들을 물었다. 그랬더니 상당수가 설화수라는 화장품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비싸고, 좋은 것인줄도 몰랐다. 선물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최상의 선물이다. 사모님들이 무척 좋아하셨다. 운동화, 가방, 책자등의 정성이 깃든 선물이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 듯하다. 항상 오지에서 헌신하시는 분들을 마음에서 잊지 말자.

4. follow up : 선교 대원들은 선교를 통해서 열린 마음이 되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을 목도했다. 이제는 기둥과 같은 말씀과 헌신으로 채워야할 때이다. 간사나 리더들은 이제 진짜 신앙의 성숙을 위한 양육의 때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연계된 교회를 1년동안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thanks card를 보내는 것, 연락하고, 인사하는 것을 잊지 말자. 여운이 있는 사역은 대가의 길이다.

예배가 소홀해지면 힘을 잃는다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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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소홀해 지면 힘을 잃는다."(04.5.14)

1. 도미노 현상 : 신앙생활은 상호연관적이다. 그래서 한 부분이 약화되면, 그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인생의 모든 출발은 예배이다. 예배의 약화는 다른 모든 부분의 약화를 낳는다. 예배가 약화되면, 영적으로 약해진다. 영적으로 약해지면, 봉사가 힘들어진다. 봉사가 힘들어지면, 도피하려는 의식이 생긴다. 도피하려는 의식은 자연히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교회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세속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2.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 간사들이 힘들어 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을 힘겹게 감당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왜 그런가? 뿌리는 예배의 약화, 새벽의 약화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뿌리가 약해지니, 줄기가 힘을 잃는 것이다. 원래 성령의 공급하시는 능력을 체험하는 사람은 독수리처럼 창공을 비상하는 존재이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 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30-31)

3. 집중의 능력 : 빠른 시간 내에 회복하는 길은 집중하는 것이다. 찬송 한번을 해도 진액을 쏟아서 하고, 기도를 해도 심장이 튀어나오는 강력한 기도를 하라. 잠에 굴복하는 모습이 아니라 새벽을 호령하는 십자가의 군병이 되라. 다시 우리 앞에 마귀가 굴복하는 영광스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패션오브 크라이스트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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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의 운명적 만남"(04.4.29)

  나는 이 영화를 세 번 보게 되었다. 처음은 미국에서, 두 번째는 한국에서 세 번째는 중국 상해에셔 보게 되었다. 같은 영화라도 장소에 따라서 서로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미국에서의 경험은 영화를 통해서 죽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분위기였다. 관객들은 대부분 예수의 수난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두번 이상은 교회를 다녔고,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미국인이다. 그들은 문화 속에 기독교가 배어 있다. 그래서 오히려 기독교를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같은 내용을 눈 앞에 그림을 그리듯이 표현되는 것을 보고, 다시금 가슴에 불이 붙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반면에 한국에서의 분위기는 문자적으로만 만났던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영상을 통해서 눈으로 보는 충격을 느끼는 듯했다. 예수가 채찍에 맞는 장면이 10분이 넘게 진행된다. 관객들은 거의 신음하는 수준으로 꿈틀댄다. 마지막 손에 못이 박히는 장면, 십자가가 세워지는 장면에서는 소리지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고통이 바로 나의 죄를 대신한 고통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장 회개의 자리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고통만을 너무 강하게 그리고, 왜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역시 그리스도의 수난은 영화만으로는 다 전달되지 못하고, 설교를 통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국 상해에서의 경험은 특이하다. 주로 유학생들 중심의 집회에서 집회 이후에 성금요일 저녁에 단체로 보게 되었다. 이렇게 저작권을 무시하고, 개인 집단에서 영화를 봐도 되는가하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중국이라는 특수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 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작정했다. 중국에서 상연되는 그리스도의 수난은 이미 중국의 많은 교회들이 오랜 기간동안 이겨내온 고난이었기에,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기들의 이야기들이라고 느꼈다. 기독교는 역시 고난을 통해서 순수성이 드러나고, 진정한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난 지수가 제일 높은 중국에서 가장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십자가가 능력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장소가 바로 중국이기도 했다.

2. 수많은 대비들

  이 영화는 주로 대비의 기법을 통해서 메시지를 증거한다.

  첫째 대비는 인간 예수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의 대비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그리기 이전에, 목수 예수가 높은 식탁을 만드는 모습이 나온다. 어머니 마리아가 이런 식탁을 누가 사겠느냐고 할 때, 예수가 어머니 마리아와 물장난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는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요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었음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4세기 이후에 큰 논쟁을 벌였던 기독론을 다루고 있다. 기독론 논쟁, 즉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간명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동시에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임을 증거하고 있다.

  둘째 대비는 자살하는 유다와 회개하는 베드로의 대비이다. 가룟유다는 예수를 판 것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제사장에게 돈 주머니를 돌려주려 온다. 그러나 제사장은 그것을 거부한다. 돈 주머니가 떨어지면서, 동전이 흩어지는 장면에서 물질 추구의 허망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가룟유다는 나무에 목을 메고 자살한다. 반면에 똑같은 예수 부인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회개의 자리로 나온다. 닭소리를 듣고 울부짖는 베드로, 바로 잘못했더라도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이 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대비이다. 천국은 죄없는 자가 가는 곳이 아니라 회개한 자가 가는 곳이다. 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옳지 않다. 왜?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그 죄는 예수의 십자가로 인하여 다 씻겨졌다. 문제는 그 십자가의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돌아오느냐의 문제이다. 죄악에 빠진 세상에게 가룟유다의 길이 아닌, 베드로의 길로 돌아오라는 호소가 담겨있다.

셋째 대비는 우유부단하게 책임회피하는 빌라도와 예수의 대비이다.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함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시비거는 민중들의 요구에 의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만든다. 그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대야에 물을 담아 손을 씻으면서,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무죄하다고 외친다. 빌라도의 대야는 책임회피의 대야였다. 이런 책임회피의 대야가 그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2,000년에 걸쳐서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외우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빌라도는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빌라도의 책임회피의 대야와 대비되며 나오는 것이 예수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대야이다. 주와 선생이 되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을 통해서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셨고, 진정한 힘이란 군림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넷째 대비는 예수의 채찍으로 맞는 모습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모습이다. 예수의 채찍으로 맞는 장면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오래 지속된다. 거의 10분이 넘을 정도의 시간이 채찍에 맞는 장면이다. 채찍 끝의 갈고리에 의해서 살점이 묻어 나오는 장면은 신음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로마 군병의 웃음 소리 속에서 채찍과 함께 살점이 흩어진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예수의 채찍 맞음이 바로 자기 대신에 맞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바로 이 채찍의 고난이 나의 죄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더 가까이 더 강하게 전달한다.

  다섯째 대비는 구레네 시몬과 십자가의 대비이다. 예수는 채찍에 너무 맞아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옆에서 구경하던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한다. 시몬은 거부하다가 피할 수 없으니, 이렇게 소리친다. "나는 무죄하다. 다만 죄인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 뿐이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를 지는 장면과 예수와의 얼굴과 마주치는 장면을 통해서 구레네 시몬은 깨닫게 된다. 예수가 진 십자가는 사실 자기가 져야할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이라는 것을!

여섯째 대비는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는 예수의 모습과 어린 시절 뛰놀다가 넘어진 예수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 넘어졌을 때, 어머니 마리아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제 십자가를 지는 모습 속에서 마리아의 어머니로서의 고통을 묘사한다. 십자가 상에서 제자 요한에게 네 어머니다라고 외치며, 대신 돌볼 것을 부탁한다. 십자가 상에서도 인간적인 요소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라고 여겨진다.

  일곱째 대비는 십자가와 유월절 성만찬의 대비이다. 예수가 왜 고통 속에 십자가에서 죽어야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수는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구약 시대에 사람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짐승의 피를 흘렸듯이, 지금 예수의 죽음은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한 어린양의 대속의 죽음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여러 대비들은 기독교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가 중간에 떠나간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이 영화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이런 일련의 대비들에 대한 의미를 확인하고 보는 것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다.


전문성과 필요가 만나면 환상적인 결과를 낳는다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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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과 필요가 만나면 환상적인 결과를 낳는다."(04.2.27)

1. 장사를 잘하는 법 : 용산에 전자제품을 가러 갔었다. 매장 주인이 믿는 사람이었다. 그의 전문성을 가지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전문성과 필요가 만나니 환상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결국 장사라는 것이 무엇인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전문성을 고객에게 빌려 주는 것이 아닌가? 즉 나의 전문성으로 남의 필요를 도우려고 하면 그것이 사업이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랑이 밑바탕에 깔리지 않으면, 탁월한 사업은 불가능한 것이다.

2.  레오나드 스위트의 글을 보면, 망한 식당의 예를 들고 있다. 맛있어 보이는 커피 집을 어렵게 찾아갔다. 입구에 이런 팻말이 있었다. "점심 먹으러 외출중. 1:30분에 돌아옴"  그 밑에 이런 종이가 붙어 있었다. "가게 팔려고 내 놓음.  목이 좋아 전망있음"  이 가게가 왜 망했나? 배고픈 사람을 섬기기 보다 자기부터 먹고 자기 배를 채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즉 남의 필요가 아니라 나의 필요를 먼저 채우려고 한 점이다. 오늘날의 교회의 연약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교회 밖의 불신자의 필요는 도외시하고, 교회 안의 필요만을 채우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이다." 교회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초신자나 불신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망하는 데는 다 망하는 이유가 있다.

3. 우리는 누구의 필요를 채우는가? : 예수님은 항상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곳에 가 있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죄인의 구원의 필요에 응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남의 필요를 채울 때,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남의 필요를 채울 때, 성장이 있다. 남의 필요를 채울 때 넓어진다. 인간다운 삶의 출발이 남의 필요를 절감하고, 도우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말고, 예수님의 길을 걷는 걸음을 중단하지 말자.

조명이 세상을 바꾼다 전병욱목사 칼럼

2006.09.1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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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세상을 바꾼다"(04.1.13)

1. 성령은 적용의 영 : 엡1장을 보면, 성부는 계획, 성자는 실행, 성령은 적용하는 분으로 설명된다. 우리도 이 원리를 배울 필요가 있다. 특히 성령의 적용하는 능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

2. 통영의 경험 : 충무교회와 숙소 사이에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매일 일정한 거리를 걸어야 했다. 밤에 길을 걸으면서 느낀 것은 약국이나 보석가게는 매우 밝은 조명을 비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밝은 곳에는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이런 경험을 하고, 교회로 들어오니, 교회에는 조명이 거의 없다. 오직 백열전구 하나만 깜박거리며, 수돗가를 비추고 있었다.

3. 교회를 밝은 장소로 : 깨달음은 실천으로 옮길 때 강력해진다. 충무교회에 해 줄 수 있는 일 중에 하나가 조명의 강화였다. 400와트 전구 4개를 장치해서, 4군데를 비추었더니, 대낮같이 밝은 모습이 되었고, 썰렁하던 마당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제를 나누는 것이었다. 물론 10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지만, 얻은 효과는 몇배나 된다고 할 수 있다.

4. 교회는 어두움의 빛 : 성경은 성도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한다. 이런 물리적인 빛을 통해서 어둠을 비추는 빛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지 빛을 비추는 사명이 중요하다. 빛은 소란하지 않다. 다만 스스로 빛으로 서있으면, 어둠을 이기게 되어 있다. 계속되는 선교 사역을 통해서 빛으로서의 사명을 계속하도록 하자. 하나님이여, 삼일교회 선교를 축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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