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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마 사람 세상 사람 / 행16:35-40

제 아는 목사님 한 분이 어느 회사가 세운 교회의 목사입니다.

 그 교회는 회사의 사장님인 장로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그 교회를 의무적으로 다녀야만 합니다.

사장님이신 장로님이 그렇게 고집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사장님은 모든 직원들을 아주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하십니다.

직원들을 위한 복지시설도 제법 잘 갖추고 있고,

회사를 근무하는 여건도 직원들에게 잘한다는 여느 회사 못지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직원들이 그 회사에 오래 있으려고 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길게 있어야 3-4년이고, 평균으로는 1년 정도입니다.

심지어는 3개월도 안 있고 나가는 직원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회사를 다니려면 교회를 다녀야 한다는 조건 때문입니다.

직원들 중에는 원래 그리스도인들도 있지만

교회는 전혀 다녀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장님은 전도와 선교의 사명으로 이 회사를 세운 것이라고 하면서

직원들의 교회출석을 의무화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교회의 운영에도 깊이 개입을 해서 담임목사를 좌지우지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만 고집을 한다는 겁니다.

 

자 이런 의견을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이 사장님의 이런 자세를 헌신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무식한 짓이라고 해야만 할까요?

 

하나님은 이 분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받으실까요?

예상 외로 이런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자기 돈으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에 대해서 이런저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그것을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 정말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간수의 집으로 왔던 사도 바울 일행에게 감옥의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서

이제 석방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바울의 대응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니들은 사람을 잘 못 건드렸다는 겁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빌립보의 사람들이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로마사람입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이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한마디로 빌립보의 주둔군이요, 점령군입니다.

주둔군이나 점령군의 행동은 그 어떤 경우에도 처벌의 대상이 되질 않습니다.

처벌을 한다고 해도 그냥 시늉만 할 뿐입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독립국가요, 자주국가라고 해도

여전히 미국의 도움을 받는 나라입니다.

특히 국방력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직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때문에 미군들이 이러저런 말썽을 일으키고, 범죄를 해도

한국의 경찰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법률적으로는 범죄 한 미군을 한국의 경찰이 조사를 해서

검찰이 기소를 하고 재판부가 형을 결정 할 수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요식행위일 뿐입니다.

심지어는 살인을 한 미군들도 버젓이 풀려날 수 있는 그런 나라입니다.

미국의 한마디에 그냥 바로 설설 기는 겁니다.

 

 

오늘 빌립보에서의 바울에게 행한 행동 역시 그렇습니다.

감히 점령국의 시민을 함부로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시민인 바울을 재판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때려버린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냥 풀어준다고 하니까 사도 바울이 화가 난 모양입니다.

자기들이 직접 와서 사과를 하고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자기는 당당한 로마시민이라는 겁니다. 그랬더니

그 상관들이 직접 와서 사도 바울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자 그럼, 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로마의 시민임을 굳이 밝혔을까 하는 겁니다.

혹시 그가 로마 시민임을 나타내고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구실을 삼으려고 한 건 아닐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런 의도는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상관의 명을 받고 찾아온 아전들이나 나중에 직접 찾아온 상관들에게

복음을 전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의 위치나 배경, 출신, 학벌, 돈 등이

전혀 구실이나 도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사도 바울은 굳이 상관들이 와서 자기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가 굳이 로마시민인 것을 드러내야할 필요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회사를 만들어 사장이 되고, 사장의 지위를 이용해서

굳이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우리 식의 믿음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시민이라고 하는 자신의 절대적인 신분을 통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로마시민임을 굳이 밝히는 이유는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욕심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분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강요하는 어리석은 열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는 조그마한 근거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40절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위로하고 가니라”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된 루디아의 집에 가서

그 곳에 있는 형제들을 위로했다는 겁니다.

무엇으로 위로를 했을까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사도 바울처럼 옥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 형제들에게 자신들의 믿음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란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로마 시민의 신분인 자기의 믿음이 형제들의 믿음과 같다는 것으로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의 형제들에게 너희들이 로마 시민이면서

예수를 믿는 것에 조금도 어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도 로마 시민이라는 겁니다.

결코 없어서,

힘들어서,

살기 고달파서 믿는 예수가 아니라는 겁니다.

로마 시민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신분이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는 겁니다.

 

로마시민에게도 예수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필요하고,

예수를 믿고 살아야만 삶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 시민의 신분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로마 시민이라도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분과 지위에 만족하고 살지 말고 예수를 영접하고 살라는 위로와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로마 사람도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방법을 인간적인 잣대나 기준에 의지해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쉽게 쉽게 하려는 구원의 역사가 아닙니다.

 

로마 사람이라고 별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로마사람이라는 독점적인 지위를 통해서

더 많은 해와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임을 경고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로마 시민이라고 하는 지위를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나누려하기보다는

더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마음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사장 장로님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사장이라고 하는 독점적인 지위를 통해서

직원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길을 가야만 합니다.

사장으로서의 권한이나 직무의 자격보다는

예수 믿는 섬기는 자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더 급선무입니다.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잘 받아주는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줘야만

사장이라고 하는 독점적인 지위에서 오는 직원들의 부담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 하는 방법은 내가 너희들을 고용했으니까

너희는 내 말을 그 어떤 조건에서도 다 들어야한다고

강요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고, 또 부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많이 논란이 되었던 미션스쿨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학교보다 더 엄격하면서

사랑의 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복음을 빙자한 종교적인 횡포입니다.

강제로 예수 믿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척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척 하던 사람들이 더 많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미션스쿨이면 정말 사랑이 넘쳐야만 합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에 관심을 제대로 두어야만 합니다.

학생들의 어려움이나 아픔이나 고통을 헤아릴 줄 알아야만 합니다.

미션스쿨이라면서 똑같이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 수만 늘리려고 애쓰고,

세상적인 기준이나 관점에서의 교육만 고집하니까

복음에 대해서 더 반발하는 겁니다.

더 어려운 길로 가려고 하는 미션스쿨이 되어야만 합니다.

일반의 학교들과는 전혀 다른 교육방법과 교육목표와 교육비전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학생들이 예수를 볼 수 있습니다.

 

아까의 사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타의 회사와는 다른 모습으로 경영을 해야 합니다.

직원들에 대한 이해가 남달라야만 합니다.

직원을 이윤달성의 도구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이해하는 것부터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려면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그 힘든 것을 마다하지 않고 가야하는 것이

십자가의 길에 들어선 성도의 당연한 태도입니다.

직원들이 사장님을 생각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의 자세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로마 사람인 것을 당당하게 선포하고 나가는 것은

이제 로마 사람이라는 절대적인 신분을 위지해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힘들어져도 그 지위를 포기하고

복음을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다짐입니다.

자기는 어떻게 되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기쁨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고전10:31-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고전 9:18-23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로마 사람이건 세상 사람이건 구원받아야할 사람들입니다.

저들을 구원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인간적인 자격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려고 하기 보다는

같은 사람으로서 선하게 접근하고, 기꺼이 희생의 삶을 나눠주고,

저들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복음의 사자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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