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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나무목교회

[스크랩] 내가 누구관대 (행 11:1-18)

교회의 노회 가입이 가을(2009년)로 연기되었습니다.

기존의 질서 위에 얹혀서 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개척한 교회가 노회에 가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교단 총회에서 개척교회의 목사들의 사례비를

최저 월 120만원을 해줘야한다는 결의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전국에 개척교회가 엄청나게 많은 것과

또 그런 사례비를 보조할만한 노회의 재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돈도 없으면서 개척교회를 지원한다고 형식적인 생색만 낸 것입니다.

그냥 대외적으로 교단이 장로교의 장자교단으로서 위신만 세우고 만 것입니다.

행정적으로 목사를 책임지는 것은 총회가 아니라 노회이기 때문에

그 여파가 노회에 고스란히 밀려든 것입니다.

 

기존에 가입해 있는 개척교회를 돕기에도 벅찬데

새로 들어오는 개척교회까지 돕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 가지 새로운 조항들을 까다롭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 교회 같으면 일 년 결산액이 3천만 원을 넘어야하고

개척한 후 일 년을 경과해야만 한답니다.

아직 우리는 개척한 지 일 년이 안 되었기 때문에 노회 가입은 가을로 연기된 것입니다.

원래 노회에 가입을 하고 노회의 주관으로 창립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 교단의 일반적인 관행이었는데 이젠 그렇게도 못할 것 같습니다.

창립예배는 우리 교회가 알아서 들여야만 하는 겁니다.

때문에 5월이나 6월에 우리끼리 창립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왜 갑자기 노회 가입의 이야기를 서론에 하느냐면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드러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자유롭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존의 질서들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게 했더니

이것이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자기들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할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찌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들의 노골적인 비판과 비난에 대해서 오늘 베드로가 길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데 감히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신앙생활은 아주 심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 앞에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순종하는 그것 외에 다른 것이 또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순종하고 따르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어떤 것을 순종하고 따르느냐는 겁니다.

어떤 것을 하나님의 하신 말씀으로 듣고 따르느냐는 겁니다.

순종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대원칙이 있어야만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이런저런 길과 방법과 형식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원 뜻을 저버리고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 세상에 대변화를 주고 엄청난 지각변동이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사실 이 때의 상황으로 볼 때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따지고 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때만 해도 하나님은 자기들만의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진다는 생각을 할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이건 수천 년 내려온 그들만의 고유한 영적인 질서였습니다.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이라고는 하지만

감히 이방인 주제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그들만의 전통적인 무게가 짓누르고 있던 시절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인 자신들이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과

한 상에 앉아서 먹고 마신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 속에서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바로 그런 엄청난 짓(?)을 해버린 것입니다.

할례 받은 이스라엘의 성도들에게는 정말 천지가 개벽할만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충만한 베드로는 정말 놀랍도록 정확하게 설명의 말씀을 전합니다.

자신의 어떤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어떻게 알게 하시고 행하게 하셨는지를 담대하게 설명을 합니다.


15-16절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단순히 베드로 개인의 의견이나 생각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하신 것처럼,

또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어야만 할 올바른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태도입니다.

베드로가 여태 알고 있고 지키고 있던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서는

절대로 고넬료에게 세례를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세례뿐만 아니라 아예 고넬료의 집에 가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행하신 일이었고,

또 주께서 말씀하신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따르고 행한 것이라는 겁니다.

자기들에게 가능하던 일은 다른 이에게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기에 더더욱 그렇다는 겁니다.

거기에 뭐 다른 말이 필요합니까?

 

그러나 뭐가 문제냐면 자기들은 은혜로 받은 것을

남들에게는 뭔가를 요구하면서 행세를 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만원버스에 간신히 올라 타보셨습니까?

그러면 어렵게들 버스에 올라타는 남들의 입장도 헤아릴 줄 알아야만 합니다.

항상 보면 어렵게들 올라타게 된 승객들이 더 야단입니다.

앞 정거장에서 간신히 올라탄 승객들이 다음 정거장에서 버스 기사가

사람을 좀 더 태우려고 하면 그만 태우라고 야단을 합니다.

자기도 좀 전에 그 기사 분이 문을 더 열어줘서 간신히 탔으면서도 꼭 그럽니다.

 

자기가 혜택을 본 것을 남이 보는 것은 싫은 것입니다.

자기는 자기의 노력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자기보다 나중에 받는 사람들도 뭔가 노력과 수고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남들에게 관대해지질 않습니다.

자기가 받은 것 이상으로 더 엄격해지고 냉정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겁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거라면 자랑할 게 없는 것입니다.

남과 내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꼭 잘난 척을 하는 겁니다.

나는 잘 나서 구원받은 것이기 때문에

뒤에 오는 자들은 자기들의 잘난 것에 대한 뭔가의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베드로의 이야기는 뭡니까?

자기 잘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하신 일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자기들의 생각에 이방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이 들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는 도무지 뭐라고 대꾸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후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의 실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것을 자랑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경력이나 실력, 연륜, 권위, 기득권 등이 다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통과하고

남은 자기들 실력으로 들어오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까?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입한 개척교회를 돕는다 하면

그것이 자기 돈으로 돕는 자기일이라고 착각을 하는 겁니다.

내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겁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자기들이 한다고 착각해서 판단을 합니까?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이방인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잘났다고 나서서 막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오늘 베드로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내가 누구관대” 그걸 막느냐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앞에 순종할 뿐인 겁니다.

때문에 우리는 아무도 판단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구원은 누구에게도 임하고

은혜는 누구나 다 받는 것이고

응답은 누구에게나 역사하시는 겁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내가 나서서 할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구원받는 역사에 관한한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 45:21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때문에 우리는 그 누구도 다 받아들일 수 있고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이의 견해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각 사람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를 자기의 틀 안으로 가두려고 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있는 그대로를 누리는 신앙이어야만 합니다.

 

남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신앙이 아닙니다.

반대로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더 엄격한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려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신앙이어야만 합니다.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는 그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실천하고 사는 믿음이어야만 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들의 편 가르기가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 앞에 각 자의 처지와 형편과 환경에 따라서

최선을 다해서 섬기는 삶이어야만 합니다.


고전 1:22-25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우리 나무목교회에는

 저부터 우리 모든 성도들이 어떠한 기득권도 없고,

인간적인 잘남도 없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만 가득한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이 땅에 과연 그런 교회가 있을까 싶어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 나무목교회가 온전하게 쓰임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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